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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날인 4월 22일 공주 60+기후행동 선언 추진위원회가 공산성 입구인 연문광장에서 '어슬렁 기후행동] 집회를 열고 있다.
▲ 4월 22일 지구의날 공주 60+ 기후행동 선언 집회 지구의 날인 4월 22일 공주 60+기후행동 선언 추진위원회가 공산성 입구인 연문광장에서 '어슬렁 기후행동] 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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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년은 반성합니다."
"우리부터 이제까지와는 좀 다르게 남은 삶을 살겠습니다."
''우리는 기후비상행동이 필요한 어떤 곳이든지 찾아가 웅성웅성 기후행동을 벌일 것입니다."


충남 공주의 공산성은 연간 수십만 명이 찾아오는 관광 명소입니다. 북쪽에 금강을 끼고 있고 성 안에 큰 우물이 있어 천혜의 요새이기도 합니다. 백제가 망할 때 나당연합군에 의해 수도인 부여가 함락되자 의자왕이 공산성으로 피신해 와 내부 배신으로 항복할 때까지 저항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 22일은 제53회 지구의 날이었습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이 맺어진 날이기도 합니다. 벌써 8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온실가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양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작년인 2022년 11월 7일 이집트에서 개최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세계 정상들이 각국의 미흡한 대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새로운 협약 마련을 촉구했겠습니까.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고까지 극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기후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멈춰 세우자고 절박하게 호소하기 위해 충남 공주의 보수-진보 노년세대 150여명이 뭉쳤습니다. 기후재앙 앞에서는 보수고 진보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보수와 진보가 극한으로 대립하고 대화와 소통 자체가 거의 사라진 한국 현실에서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신간회 운동과 해방후 좌우합작 운동 이래 21세기 한국 최초의 노년세대 연대 운동일 것입니다.
공산성을 집회 장소로 선정한 것도 이대로 가면 단순히 대한민국 국가가 망하는 게 아니라 인간 세상 자체가 사라지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상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올해 4월 22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아침 9시 30분, 공산성 입구인 연문광장에 60세 이상 노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최창석 전 공주시 문화원장, 주진영 공주시 지속협 사무국장, 안연옥 전 공주시 관광협의회장, 지수걸 전 공주대 교수, 조성일 공주참여연대 이사장 등 '공주 60+기후행동선언 추진위원회' 주축들은 일찌감치 집회장에 나와 있었습니다.

장길수 공주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이사장은 얼마 전 수술을 받아 불편한 몸임에도 벌써 집회 장소에 나와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 최고령자인 94세의 윤석조 전 기미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 회장도 지팡이를 집고 걸어 들어왔습니다.

공주 60+ 기후행동선언 추진위원회는 지난 2월부터 선언 발표를 준비해왔습니다. 각각 보수와 진보로 분류되는 60세 이상 원로들 명단을 작성하고, 연락을 분담해 일일이 취지를 설명하면서 서명을 받았습니다. 선언문도 여러 차례 서로 다른 이견을 조율해 가면서 다듬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50여 명이 선언에 동참한 것입니다. 나태주 시인, 조석준 전 기상청장 등도 흔쾌히 이름을 올렸고 보수 인사로 알려진 김광종 해병전우회 충남연합회장도, 진보로 분류되는 이근업 공주시농민회장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글민체 대가인 김성장과 공주 동호인들이 손 붓글씨로 공주 60+ 기후행동의 구호를 쓰고 있다
▲ 공주 60+기후행동 선언 구호 쓰기 한글민체 대가인 김성장과 공주 동호인들이 손 붓글씨로 공주 60+ 기후행동의 구호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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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약 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공주 60+ 기후행동 선언 집회가 열렸습니다. 지수걸 전 공주대 교수의 모시는 말씀에 이어 최창석 전 공주시 문화원장과 김효숙 공주시 꽃 시낭송회장이 돌아가면서 한 단락씩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서명에 동참한 150여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습니다. 150여 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날 집회에 나오신 분들 중에서도 서명자 명단에 미처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2022년 1월 19일 출범한 '60+ 기후행동'의 박병상 상임공동대표는 서울 집회 때문에 참석은 못하고 연대사를 보내왔습니다.

이날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손글씨로 구호를 적는 퍼포먼스였습니다. '한글 민체(民體)'의 대가인 서예가 김성장 등 공주의 한글 민체 동호인들이 화석연료로 만든 현수막 대신 광목과 종이 박스에 손 붓글씨로 "기후재앙에서 우리 손주들을 지켜냅시다", ''두번째 지구는 없습니다" 등의 구호를 썼습니다. 즉석에서 만든 구호인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우자"를 쓸 때는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공주 60+기후행동 선언식 참가자들이 손 붓글씨로 직접 쓴 현수막과 종이 박스 피켓을 들고 공산성을 오르고 있다
▲ 어슬렁 기후행동 공주 60+기후행동 선언식 참가자들이 손 붓글씨로 직접 쓴 현수막과 종이 박스 피켓을 들고 공산성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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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붓글씨로 쓴 현수막과 종이박스 피켓을 들고 천천히 '어슬렁 기후행동'을 선보이면서 공산성 위를 걸어 올라갔습니다. 아직 오전이어서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은 구호를 보고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물어보기도 하면서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공주 60+ 기후행동 선언문은 일반 사회단체 선언문과는 그 내용과 기조가 전혀 다릅니다. 대부분의 사회단체 선언은 대체로 규탄, 반대, 퇴진, 철회 등의 용어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이날 공주 60+기후행동 선언은 "우리 노년은 반성합니다"라고 먼저 고개를 숙이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려온 물질적 풍요가 청년들의 미래를 망쳤습니다. 물려받은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게 해서 물려주는 것이 노년의 의무이자 책임임을 인정하며, '기후 행동의 맨 앞'이 되겠습니다"라고 반성과 성찰을 전제로 한 실천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31년 전인 1992년, 185개국 정상과 대표단이 모여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을 맺을 당시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평균은 357ppm이었습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당시에는 처음으로 400ppm을 넘어 섰습니다.

2023년 3월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의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421.00ppm으로 1년 전인 2022년 3월 평균 418.81ppm보다 2.19ppm이나 또다시 늘어났습니다. 이처럼 온실가스 배출은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2020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전세계 정부 대다수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구두선에 그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저 회의에 이은 회의만 하면서 끊임없이 '기후위기 중얼중얼'만 되풀이 할 따름입니다. 한국 정부는 한술 더떠 오히려 감축 목표치마저 축소하면서 거꾸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정부가 못하면 대한민국의 주인인 주권자가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화의 주역이자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 또한 지고 있는 노년 세대가 기후비상행동에 나선 것은 그러므로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은퇴 후 뒷방 문을 열고 나와 길거리에 선 그 실천 자체가 기후지옥 열자를 멈춰 세우는 행동에 청장년 세대와 연대하겠다는 간절한 의사 표시입니다. 아직 기후비상행동의 사회단체가 없는 공주 지역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슬렁 기후행동으로라도 '맨 앞'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공주 60+ 기후행동 선언식 참가자들이 공산성에 올라 구호를 외치고 있
▲ 어슬렁 기후행동 공주 60+ 기후행동 선언식 참가자들이 공산성에 올라 구호를 외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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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수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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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민주적 대안언론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역사와 노동과 생태 문제에 관심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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