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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산청에서 열린 ‘김우명달 할매길 걷기와 묘비 제막식’.
 3월 11일 산청에서 열린 ‘김우명달 할매길 걷기와 묘비 제막식’.
ⓒ 함께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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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선의 딸이었던 나는
조선의 아리따운 꿈이었던 나는
나라를 빼앗긴 힘없는 식민지 백성이 된 나는
내 나라를 집어삼킨 제국의 성전에 바쳐졌어.


11일 경남 산청군 금서면 지막리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우명달 할머니 무덤 앞에서 김종우 시인이 낭송한 '김우명달·김옥순, 2007년 3월 어느 날 꽃상여 타고 훨훨'이라는 제목의 추모시 일부다.

김 시인은 '함께평화'(공동대표 이성락·임미루) 회원들과 함께 이날 김 할머니 묘소를 참배했다. 함께평화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6년 만에 '김우명달 할매길 걷기와 묘비 제막식'을 열었다.

김우명달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만주에서 모진 고통을 겪다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산청에 살았던 할머니는 나이 89세인 2007년 3월 12일 이웃 마을사람들이 태워주는 꽃상여를 타고 하늘나라로 갔다.

산청 사람들은 2020년 8월 14일 산청청소년수련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김우명달 할머니와 함께 또 다른 산청 출신 피해자인 고 김옥순 할머니를 기리며 성금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던 것이다.

함께평화는 평화의 소녀상에서 무덤까지의 구간을 '김우명달 할매길'이라 이름 붙이고 이날 함께 걸었다. 또 이들은 무덤을 새로 정비하고 "복수초꽃 닮은 당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새긴 묘비석도 세웠다. 묘비석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기부를 해서 제작되었다.

이날 묘비 제막에는 김 할머니의 조카인 장재호(산청)씨가 참석했다. 장씨는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같은 고통을 당했다"며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같이 참석한 최보경 교사(간디고)는 "행사에 기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준 제자들이 고마웠다. 앞으로 이 땅에 다시는 이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현수 학생(간디고 2년)은 "최근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외교 정책에 분노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찾아보다가 우연히 오늘 '김우명달 할매길 걷기' 행사를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다"며 "저희들과 같은 작은 행동이 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최세현(산청)씨는 "복수초가 지천으로 핀 지막골에서 김우명달 할머니의 16주기에 맞춰 묘비석 제막 행사를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한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며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에 작지만 의미있는 울림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했다.

한 참석자는 "산청에 살며 말만 들었는데 할머니의 묘소에 와서 보니 마음이 새롭고, 할머니의 아픔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무엇보다 노래도 함께 부르고 아이들이 함께해서 할머니께서 더 기뻐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미루 대표는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만주 봉천으로 끌려가 그 모진 고생을 하고 정작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숨어 살아야 했던 김우명달 할머니셨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에 화병이 날 지경인데 이렇게라도 두 손 불끈 쥐고 산청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팽미란 진보당 산청지역위원장은 "산청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된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며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에 오늘의 작은 울림이 큰 외침으로 세상에 퍼지길 바란다. 할머니께서는 모진 고통과 아픔으로 사셨는데, 복수초의 꽃말처럼 영원한 행복을 누리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김종우 시인은 "김우명달 할머니께서 별세했을 때 보도했던 <오마이뉴스> 기사에다 할머니의 생가를 답사하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말을 토대로 시를 썼다"며 "무엇보다 할머니께서는 생전에 금낭화와 복수초꽃을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어 시에 살렸다"고 했다.

김 시인은 "일제에 의해 희생당하고 고통받다 일본으로부터 아무런 반성과 사죄도 받아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한 넋을 기리는 진혼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했다.

마지막에 참가자들은 모두 "피해자를 무시하는 굴욕 협상 윤석열 규탄한다"고 외쳤다.

다음은 김종우 시인의 추모시 전문이다.

김우명달·김옥순 2007년 3월 어느 날 꽃상여 타고 훨훨

그 길은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었어

어느 날 조선의 딸이었던 나는
조선의 아리따운 꿈이었던 나는
나라를 빼앗긴 힘없는 식민지 백성이 된 나는
내 나라를 집어삼킨 제국의 성전에 바쳐졌어

나라를 팔고 일제에 부역하던 무리의 딸들이
서 있어야할 자리에
순이 숙이 영이
죄 없는 식민지 민중의 딸들이 끌려가 서 있었어

그곳이 만주 봉천이었는지
먼 북쪽 일본군 나남사단 주둔지 막사였었는지
아니면 남양군도 밀림 한 가운데였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너무 끔찍했으니까

참, 오랜 세월을 참아냈지
어느 날은 그 끔찍한 나날들이 팔순이 넘은 나를
칭칭 감고 놓아 주지 않았어
그래서 뜰에 금낭화를 심고 이름 모를 꽃들을 심어
나비를 부르고 벌을 불러 모아
내 마음에 박힌 아픈 상처의 흔적들을 씻고 또 씻었어
그게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으니까

그래, 가끔 생각이 났지
그 끔찍한 나날들 속에서도
내 눈물을 받아 머금었던 풀들이
꽃이 되고 나비가 되어
위안소 여기 저기 환하게 피어 났었어

난 그 꽃을 보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던 날
집 담장 아래 빨갛게 피어 있던 봉선화를 본 듯
그 꽃들에게서 고향의 향기를 맡았어
그리고 그 꽃들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됐지
꼭 돌아가야 했으니까

아, 마치 어제인 듯 아프고 아프기만 하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려고 해
내가 끌려갔던 그 날로
아니, 내가 끌려갔던 그 날의 그 앞날로 돌아가려 해
파란 하늘이 눈부신 오늘이 바로 그 날이야

그동안 참 고마웠어!
다들 안녕.

 
3월 11일 산청에서 열린 ‘김우명달 할매길 걷기와 묘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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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일본군 위안부, #김우명달 할머니, #함께평화, #산청, #김우명달 할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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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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