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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세 하고 계세요?"

일본에서 비영리법인 '패어트래블재팬(FairTravelJapan)'을 설립하고 얼마 안 되어 처음 참가한 비영리단체 네트워크 모임에서 누군가 던진 질문이었다. 비영리법인의 고민은 늘 비슷하다. 도움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재원이 부족한 상황. 소규모 단체라면 더욱 그렇다. 비영리법인을 세우고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사업의 재원을 찾는 것이었다.

다양한 일본 재단이나 조성금(지원금) 프로그램에 도전했지만, 일본에서는 '실적'이 없으면 좀처럼 지원 대상이 되지 못했다. 신뢰기반 사회에서 한 번도 거래를 하지 않은 곳과는 거래를 새로 시작하지 않는 일본 비즈니스계 특징이 비영리 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여러 차례 벽에 부딪혀 재원 마련의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네트워크에서 만난 한 비영리 담당자는 내게 고향세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고향세는 일반 국민들에게 기부를 받는 것이지만, 세액공제 혜택과 답례품 제공 등 일반 기부보다 혜택이 많아 공감이 되는 내용이라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일본 고향세는 지자체가 모금 주체가 되어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이다. 기부자들은 100%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데, 개개인의 소득과 부양가족에 따라 그 상한이 정해진다. 대체로 급여의 10~20%선까지 전액 공제된다. 더불어 지역 특산품 등을 답례품으로 받을 수 있다. 지자체는 그 재원을 지역과제를 해결하는데 활용할 수 있어 1석3조인 제도이다. 
 
진세키고원의 NGO 피스윈즈재팬의 유기견 보호 고향세 모금 GCF 페이지. (일본 고향세 모금 민간 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 페이지 한글자동번역)
 진세키고원의 NGO 피스윈즈재팬의 유기견 보호 고향세 모금 GCF 페이지. (일본 고향세 모금 민간 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 페이지 한글자동번역)
ⓒ 일본 후루사토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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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어트래블재팬이 위치한 히로시마현 진세키고원에서 이미 '피스윈즈재팬'이라는 비영리단체(NPO)가 고향세를 통해 유기견 보호 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연간 모금액은 평균 50억~60억엔 수준으로 일본 내에서도 굉장히 큰 규모다.

피스윈즈재팬은 전세계 36개 국가 및 지역에서 재해·분쟁 지역의 긴급구호, 의료 지원, 재해 후 복구 등의 사업을 운영 중인 단체인데, 일본 국내에서는 히로시마를 중심으로 유기견 보호 사업을 진행한다. 사업 시작 3년 만에 유기견 살처분율을 제로(0%)로 만드는 성과를 달성했다. 고향세를 통해 매년 4억~5억 엔에 이르는 자금을 고향세로 확보하고 있다. 이는 전체 예산의 40%를 차지한다.

4개 군이 통합하여 인구 약 8천 명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산골 동네에서 피스윈즈재팬과 같은 비영리단체가 성공적으로 고향세를 모금하고,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고향세도 한국 고향사랑기부제와 같이 지자체가 모금 주체가 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의 경우, 고향세를 운영하는 각 과정마다 전문성을 가진 민간과의 적극적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진세키고원은 인구소멸 위기 지역으로 지역 활성화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진세키고원은 고향세를 적극 활용했다.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단체들이 공공, 민간 플랫폼에 프로젝트를 올리고, 모금을 할 수 있도록 지정단체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고, 빠르게 선정했다. 자격을 얻은 단체들은 언제든지 지자체에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손쉽게 모금함을 개설할 수 있다.

현재 고향사랑기부금제도는 행정안전부가 직접 '고향사랑e음'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하여 모금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총무성은 직접적으로 모금에 가담하지 않는다. 제도 자체가 지역의 활성화를 위한 것인 만큼, 지역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다양한 민간플랫폼이나, NGO 등의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하여 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길을 열어두었다.

과도한 제재 없이도, 총무성은 고향세가 답례품 경쟁으로 치우치지 않고, 지역활성화로 잘 이어지도록 중심을 잡고, 지역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총무성의 '고향기업가 지원 프로젝트'이다.
 
일본 총무성의 고향 기업가 지원 프로젝트. (일본 총무성 고향 기업가 지원 프로젝트 설명 페이지 필자 번역)
 일본 총무성의 고향 기업가 지원 프로젝트. (일본 총무성 고향 기업가 지원 프로젝트 설명 페이지 필자 번역)
ⓒ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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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키고원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민관이 협력하여 일반사단법인의 형태로 '진세키고원창생챌린지기금'을 만들고, 고향세와 지방재원을 활용하여 기금을 조성했다. 이 기금으로 지역에 창업하여 지역활성화를 도모하는 기업가들에게 무이자로 최대 한 사업체당 2천만 엔을 5년 거치, 5년 분할상환의 조건으로 빌려준다.

진세키고원은 여기에 더해 총무성에서 운영하는 '고향창업가 지원 프로젝트'를 매칭하여, 챌린지기금을 활용하는 기업체에 추가 자금확보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각 사업가가 기부목적을 기부자들에게 알려 공감을 얻고 기부를 받는 GCF(Government Crowd Funding) 형태의 고향세 모금함을 열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고, 목표금액을 달성할 시, 최대 100%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가적으로 매칭하여 보조하는 방식이다.

GCF란 '지정기부' 형식의 정부가 주도하는 크라우드펀딩으로, 답례품 중심의 고향세가 아닌, 기부목적에 따라 기부자들이 용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고향세의 한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진세키는 '도전의 마을'이라는 별칭을 얻을 수 있었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독특한 창업가들이 마을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며 다양한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결국 성공의 주요 요인은 지자체가 민간 단체들이 고향세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은 위탁운영을 맡기는 등 민간과의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우리나라 소멸위험지역은 113곳이다. 전국 228개 시군구의 약 절반 수준이다. 고향사랑기부제를 시행한 지 이제 막 두 달이 되었다. 열악한 지방재정을 보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하는 제도 목적을 달성하려면, 민관협력이 그 길이다.

태그:#고향사랑기부제, #일본고향세, #지정기부, #민관협력, #공감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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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 지역재생 관련 경험 10년차 활동가. 현재 일본 히로시마현 진세키고원에 거주하며 일본 고향세를 활용하여 소멸위기지역의 지역활성화 사업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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