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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대구지하철중앙로화재참사 2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참사 수습 과정에 참여한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초대 이사장·장안대학교 총장이 추도사를 했다. 다음은 추도사 전문이다. [편집자말]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가 지난 18일 열린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모습.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가 지난 18일 열린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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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현장 수습 과정에 대구 시민사회 대표의 일원으로 참여한 후 20년 동안 재난 피해자들 곁에 서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를 맞이하여 저 하늘의 별이 되신 희생자 영령들의 넋을 기립니다. 그동안 슬픔을 함께 나누며 지지와 연대를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집니다.

20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렀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 가족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꿈은 안전한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 엄청난 일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이러한 소망과 꿈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슬픔을 삼키라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울음을 멈추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저 하늘에 별이 된 우리의 영령들께 정말 부끄럽습니다. 영령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거듭되는 재난 참사를 겪고 있는 이 부끄러운 현실에 대해 영령들께 머리를 조아려 용서를 구합니다.

기억해야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2003년 2월 18일 발생한 화재로 불탄 대구지하철 1079호 내부 모습. 대구시민안전센터에 전시돼 있다.
 지난 2003년 2월 18일 발생한 화재로 불탄 대구지하철 1079호 내부 모습. 대구시민안전센터에 전시돼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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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재난의 '예방-대비-대응-회복'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이 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던 한 사람이 지하철 전동차에 불을 질렀습니다. 지하철 전동차 내장재는 불쏘시개였습니다.

불가마가 된 중앙로역 맞은편에서 승객을 가득 실은 전동차가 진입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불은 옮겨 붙었고 대부분의 희생자는 그 전동차 안에서 나왔습니다. 시민도, 도시철도 종사자도, 누구도 이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훈련도 돼 있지 않았습니다. 위기를 관리할 시스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민의 생명과 도시의 안전을 지킬 정부는 없었습니다.

여러분 소름 끼치지 않습니까? 똑같은 패턴이 대구 지하철에서도, 세월호에서도, 이태원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회복'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재난 참사의 회복은 그것으로 인한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입니다. 깊고 깊은 우리의 상처는 정신 심리 임상요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체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사회적으로 그 의미를 함께 새기고, 사회적으로 이 희생을 헛되지 않도록 하자는 각오를 함께 다지고,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안전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야 이 상처가 아무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참사의 기억과 마주하고, 고통스럽지만 우리의 고통을 기록하고, 추모탑을 만들고, 추모 공원을 조성하려는 이유입니다. 이 참사를 사회적으로 기억해야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습니다.
      
2015년 대구지하철 참사 12주기 추모식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은 참사 후 처음으로 '250만 시민을 대표하여' 사과를 했습니다. 대구시장의 사과는 당연한 것이었고, 때늦은 것이었지만 감동적이었습니다. 대구시장은 '과거를 잊은 도시에게 미래는 없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재구성하여 미래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 후 참사를 사회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에 참사 현장을 보전해 '기억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참사 피해자들이 함께 하는 2.18 안전문화재단을 만들었습니다. 팔공산 추모공원 문제도 지금 답보 상태에 있습니다만, 상가연합회와 대구시가 단계적 이행 로드맵을 약속하여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갈 길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만시지탄이나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기억-치유-성장-참여
 
대구지하철참사 21주기 추모식이 18일 오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진행된 가운데 한 희생자 가족이 추모탑 옆에 묻혀 있는 자녀의 이름 앞에 꽃을 꽂은 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대구지하철참사 21주기 추모식이 18일 오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진행된 가운데 한 희생자 가족이 추모탑 옆에 묻혀 있는 자녀의 이름 앞에 꽃을 꽂은 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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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있는 안전상징 조형물. 이곳엔 지난 2003년 2월 18일 지하철화재참사로 인해 사망한 19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만 추모탑으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있는 안전상징 조형물. 이곳엔 지난 2003년 2월 18일 지하철화재참사로 인해 사망한 19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만 추모탑으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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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동안 해 왔고, 앞으로 하려는 것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기억하기입니다. 다시 떠올리면 힘든 기억이지만 우리는 기억과 마주서야 합니다. 당당하게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겨낼 때 우리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치유입니다. 이 참사의 사회적 의미를 새기며 희생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치유의 본질이고 핵심입니다.

셋째, 성장입니다. 재난참사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식을 해야 우리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입니다. 재난피해자들이 안전한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기 위해 안전 가치의 실천에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재난 피해자들이 '기억-치유-성장-참여'를 통해 안전사회의 실천 주체로 우뚝 서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재난피해자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실 것을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지난 20년 동안 대구 지하철 참사에 보내주신 연대와 지지에 감사의 인사를 국민 여러분께 전합니다. 사실 재난 참사를 기억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진보, 보수를 넘어서는 가치입니다.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는 자유, 민주, 복지보다도 더 근본적인 가치라고 하겠습니다. 생명과 안전 없이 자유, 복지, 민주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대구지하철참사 재난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격려는 그동안 보수·진보, 여야를 넘어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자 시기부터 사고현장 수습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꼬박꼬박 추모식에 참여해 추도사조차 사양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함께 하는 전해주었습니다. 민주노동당, 정의당은 시종일관 저희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자리를 지켜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지지와 연대에 힘을 얻어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안전한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초대 이사장/장안대학교 총장

태그:#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도식,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재난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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