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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페친이 공유해준 은유 작가의 칼럼 '그날의 눈은 나를 멈춰세웠다'를 읽었다. 글이 너무 좋아 이 작가는 누구지? 싶어 검색도 해보고 페이스북 친구신청도 했다.

그리고 작가가 글쓰기 교실을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되어 냉큼 등록까지 했다. 그렇게 나는 은유의 메타포라 4기 학인이 되어 19번의 수업에 참여하고 글을 썼다. 이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 3년 후 메타포라 7기 수업도 신청해 참여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은유 작가의 팬이 된 나는 2023년 첫 책으로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만났다. 책에는 2011년부터 최근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글쓰기 교실을 열어 학인들을 만나온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책에 담긴 질문들이 하나같이 생생하다. 정말 글쓰기를 배우고 싶고, 배웠고, 계속 쓰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 궁금해하는 질문과 이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우면서도 사려깊은 대답이 빼곡하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겉표지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겉표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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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글쓰기의 최전선>과 <쓰기의 말들>을 냈기에 또 글쓰기 책을 내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이번 책을 읽어보니 약간의 중복이 있더라도 글쓰기 책은 매번 새로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가 삶을 닮았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시간이 쌓이고 내가 조금씩 변화하듯 글쓰기도 그런 거니까.

글쓰기란 무엇이고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 합의된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질문을 자신의 '쓰는 삶'과 연결지어 긴 이야기를 한다면, 어느 작가든 생의 특정 시기마다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다른 책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작가의 삶이 달라진 만큼 다양하게 인용해주신 문장들 또한 정말 좋았다(책에서 인용된 <아빠의 아빠가 됐다>와 <분노와 애정>이라는 책은 꼭 읽어보고 싶다).

책에서 작가가 좋은 책이란 "도망가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책"(214p)라고 했는데 이 책이 나에게 그랬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메타포라 수업을 두 번이나 신청해서 들었고 책을 좋아해 곧잘 읽고 리뷰 쓰는 것도 좋아한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 기사로 채택된 적도 몇 번 있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반응을 해줄 때마다 큰 행복을 느낀다. 글쓰기가 너무 좋아 정말 즐겁게 썼고, 어떻게든 잘 쓰고 싶었던 마음이 한없이 커졌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1~2년 전쯤부터 그런 마음이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나를 더 괴롭혔던 것 같다. 정문정 작가는 자신의 이상과 실력의 간극을 견디려면 자기가 만든 걸 참고 봐줄 비위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에겐 그 비위가 없었던 것 같다.

아예 글쓰기를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메타포라수업을 한참 열심히 들을 때의 그 의지는 지금 다 사라졌고 글쓰기를 사랑했던 그때 내 모습은 흐릿하다. 그래서 작가가 이 책에서 글을 잘 쓰는 것보다 하루를 잘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글쓰기를 사랑했고, 잘하고 싶었나? 그건 삶을 잘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건과 감정들 중 내게 오래 남는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질문하고 그것을 객관해서 한 편의 글을 쓰는 일. 그건 삶을 잘 살기위해 필요한 일이었는데 글을 '잘' 써보겠다고 몸부림 치는 게 1순위가 되니 삶이 괴로워졌다. 글쓰기라는 수단을 목적으로 삼으니 나 자신의 부족함만 보이고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괴로워, 읽기만 하자!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렇게 편하고 즐거울 수가!라며 자위해 왔는데 은유 작가의 신간이니 읽지 않을 수가 없어 이 책을 읽었고 결국 도망가고 싶은 현실을 또 직시하게 되었다. 나는 글쓰기를 너무 사랑하고 읽는 것 만큼이나 쓰는 일을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 글을 견디는 비위는 어떻게 하면 기를 수 있을까. 이 책에 그 질문이 없어서 아쉽다고 생각하던 찰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있었다.
 
"저는 가진 걸 내어주는 마음 그리고 돌려놓는 마음으로 책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맨몸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것을 얻고 경험하고 누리고 죽잖아요. 사랑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성취하고, 상처받고, 상처 주고, 일어서고, 살아가다 소멸하죠. 저마다 치열한 세상살이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습니다.

삶에서 얻은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죽기 전에 글로 엮어 세상에 내어놓는 것, 세상에서 받은 것 중 쓸 만한 것을 추려서 돌려놓는 게 책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죽으면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 자양분이 되어 나무가 되고 열매가 되듯이, 내가 삶에서 얻은 배움과 지혜도 환원하는 게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281p

"글쓰기란 자기 관점을 세우고 그걸 부수고, 남들의 생각을 좇는 게 아니라 내 생각에 몰입하고 그걸 다시 의심하고. 그렇게 내가 변해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쓸수록 옹졸해지고 피폐해지기보다 품이 넓어지고 진실해진다면 우리의 글쓰기는 삶의 선물이 되겠죠." - 288p

사랑으로 써야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다보면 내 삶이 변화한다. 내가 가진 좋은 것을 나누려는 마음이 내 글의 부족함을 견디는 힘이 된다. 그걸 믿어야 한다. 부디 새해에는 글쓰기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삶의 선물이 될 글쓰기를 기대하는 내가 되기를. 계속 쓰려는 사람들에게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권한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 계속 쓰려는 사람을 위한 48가지 이야기

은유 (지은이), 김영사(2023)


태그:#은유, #은유의글쓰기상담소, #글쓰기 , #글쓰기상담, #글쓰기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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