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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별밭, 2022), 2022 타이완 금정상 수상작
▲ <옛날 옛날 기차가 작은 섬에 왔어요> (작은별밭, 2022), 2022 타이완 금정상 수상작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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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작은 섬에 커다란, 아주 커다란 "위대한" 기차가 왔다. "덜컹덜컹 치익~ 덜컹덜컹 치익~." 규칙 제1조, 규칙 제2조… 작은 섬에 나타난 기차는 규칙만 잘 지키면 지금보다 더 잘살게 될 거라고 외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은 바로 기차에 실려 사라진다. 위대함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 모임에 참여한 사람... 사람들은 하나, 둘씩 점점 더 많이 기차에 실려 갔다. 

먼 훗날 공원에 멈춰 서 있는 기차를 보며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그 "위대"했던 기차와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차에 대항했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를 지금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에게 담담히 말해준다.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는다면, '위대한 기차'는 다시 돌아올 거야."  - <옛날 옛날 기차가 작은 섬에 왔어요> 중

<옛날 옛날 기차가 작은 섬에 왔어요>는 타이완의 지난 역사를 소재로 한 그림책이다. 타이완은 여행지로는 친숙한 곳이어도 그 역사의 면면은 익숙하지 않은 나라일 것 같다. 대만, 타이완, 중화민국... TW, ROC... 국호와 약칭부터 헷갈리고, 우리처럼 일제강점기를 거쳤음에도 왜 일본 친화적 정서가 있는지, 중국과 얽힌 현대사는 무엇이 분쟁의 원인인지 그 역사를 알기가 쉽지 않다.

특히 중국과는 최근까지도 분쟁이 국제뉴스로 이슈화되고 있지만 어지간히 관심을 두고 살펴보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조금만 살펴보면 우리 정치사와 닮아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계엄령, 독재, 민주화 운동… 우리 현대사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등장하는 말들이 타이완의 현대사에서도 등장한다. 심지어 '2.28'이라는 너무나 익숙한 날짜까지. 

우리에게 2. 28은 '2.28 민주운동 기념일'이다. 2.28 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맞서 일어난 민주운동으로 이후 3·15 마산의거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며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뿌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타이완도 2월 28일, 격변의 날을 보냈다. 일본 제국이 물러가고 타이완에 들어온 중국 대륙의 국민정부는 타이완 본성인들의 기대와 달리 부정부패와 서로에 대한 이해 결여로 갈등이 심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1947년 2월 28일, 담배 노점을 하던 린장마이라는 여인을 정부의 단속반과 경찰이 강압적으로 폭행했고 항의하는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며 급기야 한 학생이 경찰이 쏜 총에 맞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전국적으로 항쟁이 격화되며 무자비한 진압과 학살이 이어졌고 계엄령까지 선포된다.
 
하나, 둘씩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기차에 실려 갔다.
▲ <옛날 옛날 기차가 작은 섬에 왔어요> 본문 중 하나, 둘씩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기차에 실려 갔다.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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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타이완의 2.28 사건 후 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통치를 펼칠 당시 사람들이 함부로 모일 수도, 생각을 나눌 수도, 체제를 비판하거나 반대할 수도 없이 집회, 결사, 언론, 출판의 자유를 잃고 '백색테러시대'라 불리던 시기를 겪었던 과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 억압의 통치 시기는 1987년까지 무려 40여 년간 지속되었다고 하는데 이후 많은 이들의 피와 희생으로 민주화를 이룬 타이완은 추모와 반성의 공간을 짓고 피해자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책은 타이완 출판계 최고 권위를 가진 금정상 수상작으로, 2021년과 2022년 볼로냐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작가 황이원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혀서는 안 되는" 사람들과 역사를 '기억'하고자 지은 책이다.

어떤 역사는 끊임없이 되새기고 짚으며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대함'으로 위장한 권력이 어떤 규칙을 외치며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폭력적이고 반 인권적인 규칙을 외치는 "위대한 기차"가 들이닥치면 가장 먼저 생사를 위협받는 건 작고 힘없는 존재, 민중이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2월 28일이 다가오는 때라 그런지 우리 역사의 장면들이 저절로 겹쳐 떠오른다. 독재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맞섰던 그 옛날 대구의 학생들을 떠올려본다. 타이완의 작가 황이원의 염원처럼 "기억을 기억"하기 위해. 

옛날 옛날 기차가 작은 섬에 왔어요

황이원 (지은이), 박지민 (옮긴이), 섬드레(2022)


태그:#옛날 옛날 기차가 작은 섬에 왔어요, #섬드레출판사, #작은별밭출판사, #그림책추천, #작은별밭그림책시리즈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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