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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의 한 도로. 가로수를 거의 벌목 수준으로 전지를 해버렸다.
 합천군의 한 도로. 가로수를 거의 벌목 수준으로 전지를 해버렸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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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시의 가로수는 이미 도로 위의 이런저런 수많은 시설물과 '경합'하고 있다. 철만 되면 지자체는 송배전선과 '경합'하는 가로수 가지들을 사정없이 강전정해버리거나, 신호 체계에 혼선을 준다고 수십 년 된 가로수들을 아예 제거해버린다.

지역사회는 한술 더 뜬다. 건물 가린다고, 뭐가 차에 떨어진다고, 알레르기 생긴다고, 벌레 많이 생긴다고, 낙엽 치우기 귀찮다고,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가지가 너무 크고 무성해서 우범지대화될 우려가 있다"고, 상가도 학교도 아파트도 일반 주택도 자기들 앞의 가로수를 무참히 자르고, 자르고, 또 자른다.

'가로수시민연대'라는 이름을 걸고 지난 3년 활동해본 결과, 이 모든 '경합'으로 인한 과도한 가지치기라는 나쁜 관행은 관련 법제도, 행정체계, 지역사회 주민들의 인식 이 세 가지를 조금씩만 개선해도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

농촌지역 가로수들의 사정은 더더욱 딱하다. 특히 길 양쪽으로 논밭이 맞붙어 있는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가로수가 거의 몸통에서부터 '가지치기'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농촌의 가로수는 농작물 수확량과 '경합'해왔다. 농민들이 가로수 그늘로 인한 일조량 감소가 작황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크게 오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렬 가로수의 나무 그늘 자체가 그 가로수에 인접한 논밭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품종과 입지 조건 등에 따라 차등은 있겠지만 농작물의 생산량은 단순히 일조량뿐만 아니라 기온, 강우, 습도, 관리 상태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받는다. 물론 소폭의 일조량 감소로 인한 미미한 영향이야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로수는 환경오염 저감, 녹음 제공, 수원 함양, 에너지 절감, 자연생태계의 연결성 유지 등의 여러 공익적인 기능을 가지므로, 우리 사회가 정말로 합리적인 사회라면 이익 형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에게 끼쳐질 그 '미미'한 영향이, 과연 지역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게다가 우리와 똑같이 살아있는 가로수들을 '제거'해버려야 할 만큼 큰 것일까? (가지들을 전부 강전지해 제거해버리면 나무가 사는 데 꼭 필요한 생명 활동인 광합성을 할 수 없으므로, 나무를 제거해버리는 것이나 똑같다.)

관련 지자체 조례도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과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법률유보와 비례 원칙을 준수만 한다면 개인의 토지재산권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제37조 제2항)한 우리나라 헌법의 근본 정신에 발맞춰 개선되어야 한다. 신안군의 '가로수에 의한 농작물 등 피해보상 조례'는 가로수 그늘이나 낙엽, 가로수 방제를 농작물 '피해'의 원인처럼 명시해놓고 있는데, 이는 완전 거꾸로 뒤집힌 사고이다. 낙엽은 쌓여 썩으면 토양에 좋고, 가로수 병충해 방지를 위한 약제 살포 역시 작물에도 이로운 미생물 농약을 쓰면 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가로수로 인한' 문제는 '가로수의 잘못된 식재와 관리로 인한' 문제나 마찬가지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합천군 쌍책면의 '몸통치기'된 가로수들도 사진을 보니 가로수에는 단 한 뼘의 '수목보호구역(tree protection zone: 원래대로 자라 풍성한 수관을 가졌다면 그 수관의 면적만큼의 땅, 즉 낙수선 아래의 둥근 면적)'도 주어지지 않았다(관련 기사 : 가지 다 잘린 합천군 가로수...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가로수가 나무답게 자랄 충분한 시공간을 가로수에 보장해주는 것 – 도시에서든 농촌에서든 가로수의 수간만 남기는 '몸통치기'보다는 훨씬 더 손쉽고도 합리적인 해결책이다.

태그:#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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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레베카(김인심). 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사회생태체계 연구방법론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중이다.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 [시민사회신문] 객원기자, 연간지 [강과 사람] 편집위원으로 일했고, 현재 강화에너지자립모임, '가로수시민연대' 등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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