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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아내와 함께 오른 앞산 정상에 서다.
 2023년 아내와 함께 오른 앞산 정상에 서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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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주말과 이번 설 연휴 기간, 아내와 함께 연속해서 대구 앞산(658.7미터)을 찾았습니다. 앞산에는 두 개의 봉우리가 더 있습니다. 각각의 봉우리는 산성산과 대덕산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봉우리를 대표해 앞산은 이들을 통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앞산, 흔하고 성의 없어 보이는 이름이지 않나요? 앞산은 동네 뒷산, 앞산 할 때 그 앞산이지 않습니까? 어딜 가도 앞산은 다 있습니다. 동네 앞에 있는 산은 다 앞산이기 마련이니까요.

대구를 대표하는 산인만큼 앞산이라는 이름이 더욱 무성의하게 느껴집니다.

일제에 의해 창씨개명 당한 성불산

대구 앞산에는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앞산의 원래 이름은 성불산(成佛山)입니다. <대구읍지/산천 2권 1899년, 1907년>에 "성불산은 대구부의 남쪽 1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기(官基)의 안산(案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까지는 성불산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이 성불산이라는 이름이 일제에 의해서 바뀌게 됩니다. 성불산이 졸지에 전산(前山), 즉 앞산으로 개명을 당한 것이지요. 말하자면 우리 민초들처럼 창씨개명당한 것입니다.
 
앞산의 유래. 원래는 성불산이 일제에 의해서 앞산으로 바뀜
 앞산의 유래. 원래는 성불산이 일제에 의해서 앞산으로 바뀜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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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의 설명 자료에 따르면 일제는 경술국치 후 땅이름을 퇴색시켜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코자 1914년 전국에 걸쳐 행정구역 개편을 실시하였고, 1912~1917년 조선지형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 땅이름을 사용하기 편리하거나 단순한 이름으로 바꾸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성불산이 앞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이처럼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 기도는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제 이름을 되찾아주어야 합니다. 이름 되찾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앞산이 뭔가요? 성불산이라는 멋진 이름을 놔두고 왜 앞산을 고집해야 한단 말인가요? 지금이라도 제 이름으로 불러줘야 할 것 같습니다.

성불산 마애불의 유래
 
대구 성불산(앞산) 마애불. 영남대로를 굽어보고 있다
 대구 성불산(앞산) 마애불. 영남대로를 굽어보고 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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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불산에는 이름에 걸맞은 불교 유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마애불입니다. 마애불은 성불산의 남쪽 사면의 큰 너럭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대구서 청도 밀양으로 넘어가는 영남대로를 굽어보고 있는 바로 그 위치입니다.
   
마애불은 2007년 대구 앞산터널 반대 싸움을 열심히 벌였던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유적입니다. 대구박물관 학예 연구사에서 조선 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는 고증도 받았습니다.

지역의 한 향토사학자는 "조선조 임진왜란 등을 겪으면서 왜구들의 만행에 치를 떨었던 조선의 민초들이 외세에 의한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영남대로를 굽어보는 곳에 이 마애불을 새기지 않았나"하는 해설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앞산 마애불이 굽어보고 있는 영남대로.
 앞산 마애불이 굽어보고 있는 영남대로.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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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마애불 말고도 성불산에는 절도 많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 설화와 관계가 깊은 은적사와 안일사를 비롯해 대덕사, 임휴사, 백련사, 장안사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불산의 핵심은 마애불일 것입니다. 아직 마애불에 대한 제대로 된 학술적 조사와 명확한 유래 등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2007년 당시로부터 15년이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대구시와 해당 구청인 수성구청의 무관심이 너무 아쉬울 따름입니다. 지금은 겨우 안내 표지만 두 개가 만들어져 있을 뿐입니다. 

성불산 마애불을 찾아서
  
마애불을 만나기 위해 원래는 용두골을 주로 이용했습니다만, 앞산터널 공사로 용두골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장안사 코스를 주로 이용합니다. 장안사 코스도 고산골에서 장안사로 이어지는 앞산 자락길을 이용하면 더 좋습니다.
 
등산로에서 만난 반갑고 아름다운 팻말. 마애불 가는 길
 등산로에서 만난 반갑고 아름다운 팻말. 마애불 가는 길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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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또한 고산골에서 올라 자락길을 통해 장안사를 지나 본격적인 등산을 한 후 마애불을 만났는데, 장안사 언저리 등산로에서 반가운 표식을 찾았습니다. '마애불 가는 길'이라고 쓰인 아름다운 팻말을 말입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그 팻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천천히 산을 올랐습니다. 산을 오르는 곳곳에 돌탑들이 눈에 띕니다. 무슨 소원인지 그 각각의 간절함이 모여서 작은 탑을 이룬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행인들의 간절함들이 모여서 이룬 작은 탑. 이런 돌탑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행인들의 간절함들이 모여서 이룬 작은 탑. 이런 돌탑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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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빼곡이 자리잡은 능선길. 이 소나무 능선길을 따라 마애불에 이른다.
 소나무가 빼곡이 자리잡은 능선길. 이 소나무 능선길을 따라 마애불에 이른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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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른 지 40분~50분 정도 지나면 능선에 다다릅니다. 능선길엔 온통 소나무 천지입니다. 안개와 더불어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소나무 능선길을 가다 보면 다시 한번 마애불 팻말을 만나게 되고, 가던 길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큰 너럭바위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남쪽 사면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날 마침 불자 한 분이 마애불 바로 옆에 위태롭게 앉아 열심히 치성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치성을 드리러 올라오는 불심이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에도 불구하고 마애불 앞에서 치성을 드리고 있는 한 아주머니 불자.
 비가 오는 궂은 날에도 불구하고 마애불 앞에서 치성을 드리고 있는 한 아주머니 불자.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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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저에게 "병이 깊어 어찌해도 소용이 없어 이 마애불을 찾기 시작했다" 하면서 "치성을 드린 덕분에 그 병이 다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본인뿐만이 아니고 "이 부처님께서 벌써 많은 이의 병을 고쳤다"고도 했습니다.

영험한 부처님이란 것이지요. 매주 올라온다는 이분의 지금 소원은 "이 일대 땅을 매입해 유명한 갓바위 같은 기도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위적인 기도처를 만드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그 정성만은 높이 살 만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기쁜 일이 있거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 마애 부처님이 왕왕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종종 이 부처님을 찾았더랍니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처음 찾은 만큼 가정의 화목과 평화를 빌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처럼 앞산이 아닌 성불산에는 경주처럼 이름난 마애불은 아니지만, 소박한 마애불이 있습니다. 2023년 새해 널리 찾으셔서 불자 아주머니처럼 영험한 기운으로 소원성취 이루기를 소망해봅니다.
 
마애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마애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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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환경단체인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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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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