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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22년 연말 아이의 겨울방학을 맞아 친정에 내려갔다. 친정엄마와 오랜만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서울에 사는 게 꽤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유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고 책도 같이 읽고 나누는 자리에서 그들을 통해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공부하게 되어 좋다고 했다.

그런데!! 너는 책도 많이 읽고 지성인도 많이 만나면서 왜 성격은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며 인성은 도저히 발전할 수 없냐는 엄마의 말에 순식간에 감정이 상했다.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이런 성격은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며 간접경험으로 굉장히 노력하고 있지만 향상이 어렵다고 모질게 되받아치곤 바로 후회했다. 엄마는 본인 역시 부모의 사랑 같은 건 뭔지도 모르고, 받아본 적이 없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조용히 읊조렸고 우리는 그렇게 입을 다물었다.

엄마와의 대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정기적으로 그들에게 배우고 웃고 감동하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데 왜 인성은 그대로일까? 인성은 내 변명처럼 정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이 모양 이 꼴일까? 도대체 내 성격과 인성은 어느 정도길래 부모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인 걸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인성은 내가 생각해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딱 별로다. 다시 말해 남이 잘 되면 질투 나고 돈 없으면 짜증 나고 내 스스로가 못났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바닥이다. 다 잘 하고 싶고 잘나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피나는 노력을 할 에너지도 타고난 복도 없어 남 탓을 잘하고 감정이 앞선다. 이렇게 내 인성을 순순히 인정하니 종종 타인들의 인성 운운하던 내가 떠올라 헛웃음이 난다.

명리학을 조금 공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023년 사주풀이를 해보니 운이 좋지 않다. 계묘년인 올해는 나에게 무슨 일이든지 조심해야 되며 건강도 크게 우려되는 해이다. 사주의 흐름을 무시하지 않는 편이라 새해부터 울적해진다. 올해는 뭔가를 이루고 싶었는데... 달라지고 싶었는데... 사주 때문에 일이 안 풀린다고 생각하니 모든 의욕이 크게 상실된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낯설지 않다. 40여 년 살아오면서 매년 비슷한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했던 거 같다. 연말에 끊임없이 봐야 하는 유명인들의 눈물 어린 시상 소감을 듣다보면 뭐 하나 한 거 없고 이룬 거 없이 흘러간 나의 1년이 허무했다.

이상하게 자꾸 쓸쓸하고 야릇해지는 마음에 억지 결심을 짜내서 내년에는 사업 확장, 책 출판, 다이어트, 영어 정복 등 매년 똑같은 굳은 다짐을 하지만 이런 것들은 오히려 내 안의 죄책감을 키워냈다.

어차피 매년 만족스럽지도 못했고 특히 올해는 뭘 해도 안 된다는데 식상한 목표 따위는 집어치우고 그놈의 인성이나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미친다. 그런데 도대체 인성이 정확히 뭔지도 몰라 사전부터 찾아보아야 했다.

인성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성질이며, 학문적으로 인성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인성은 사람에 따라서 인간의 본성으로 쓰이거나, 성격이나 인격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지(知)·정(情)·의(意)를 모두 갖춘 전인(全人, Whole Person)의 특성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거나, 인문주의적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무시무시한 인성의 정의를 읽고 노력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여기까지 글을 쓴 것도 아까우니 겁먹지 말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련다.

어차피 인성이란 사람과 연관되어 있으니 우선 관찰하는 습관과 친절을 연습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려 깊다는 것은 관찰을 잘하고 친절하다는 말이다. 이것을 나 스스로에게도 적용해 나를 관찰하고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올해는 주위 모든 사람들을 귀하게 보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집중하는 것을 해보려 마음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떨결에 유치원에서 학부모 반장도 되었는데 계획을 실행하기에 환경도 나쁘지 않다. 왠지 이러다가 올해도 이상하게 바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2023년은 나의 인성을 위해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해 정(情)을 쓰자는 거창하고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 언제나 상대방에 대한 불쾌함에 초점을 맞추는 나의 고질적인 천성도 이번 기회에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로 결심으로 세우니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새해가 나에게 밝아온다. 나쁜 운이 오히려 나를 쉬어가게 하는 여유를 주는 것도 같다. 명리에서는 운이 나쁜 시절에는 제대로 자신을 낮추고 몸을 사리고 공부하라고 한다. 이런 시기에는 움켜쥐려 할수록 모든 것이 도망가 버리니 오히려 가볍게 나누고 남을 많이 도우라 했다.

2023년 계묘년! 나에게 인성이 생겨 '고유한 사람의 성품'이라는 뜻밖의 복이 오는 건 아닌지 혹시 모를 기대를 하며 새해를 담담하게 맞이하련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 기재하였습니다.


태그:#인성, #계묘년, #새해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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