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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국정과제 점검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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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건강보험에 대한 정상화가 시급하다"라고 밝혔다. '정상화'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지난 정부에서 실시한 문재인 케어에 대한 사실상 폐기 선언이라고 분석했다. 세세한 내용이 바로 체감되지는 않았지만 그간 우리가 보장받던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축소되거나 폐지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여러 가지 내용 중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초음파의 과잉 이용에 대해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정확히 귀에 꽂혔다. 올해 초까지 남편의 항암치료가 이어졌고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 경과를 살피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초음파 촬영은 필수다.

암환자를 둔 우리 가족에게 여러 가지 치료와 검사는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대대적 손질 시사와 함께 나온 "정상화란 도덕적 해이가 다른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걸 없애고 보험제도를 다시 정의롭게 만들겠다는 뜻"이란 윤 대통령의 설명은 혼란을 줬다. 

그동안 우리가 받은 혜택이 '도덕적 해이'였는지,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왔던 건강보험 산정특례 제도도 손볼 수 있다는 말에는 걱정이 앞섰고, 앞으로의 치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막연한 두려움도 느껴졌다. 

남편의 갑작스런 투병

남편이 암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돈 걱정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홈쇼핑 채널에서 보험가입을 독려하며 드는 여러 사례를 언급하지 않아도, 암이 한 가정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경고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생사가 걱정되는 상황에서 돈 생각을 한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애써 돈걱정을 지우려고 노력했던 순간도 있었다. 

수중에 돈이 있고 없고를 따질 여유도 없이, 대장암 확진에 이어 수술을 예약했다. 예약 접수 당시 병원에서는 당연한 절차처럼 건강보험 산정특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신청을 대행해 주었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던 시기에 서류에 사인하며 처음으로 국가의 의료 혜택을 나도 적용받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건강보험의 중증질환자 산정특례 제도가 갑자기 병마와 싸우게 된 가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수술비를 정산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확인할 수 있다. 수술 뒤 병원에서 중간 정산 금액을 통보했을 때, 1500만 원 정도의 수술비 중 우리가 부담한 금액은 300만  원 정도였다. 가장 크게 들어갈 것 같았던 수술비가 생각만큼 엄청나지 않다는 것, 건강보험의 혜택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에 크게 안도했다. 수술비 자체만 놓고 보면, 본인 부담금이 전체 진료비의 20% 정도였던 것 같다.

이후의 12회차에 걸쳐 진행된 항암 치료는 거의 정확하게 총진료비의 5% 정도를 부담했던 것 같다. 4일 입원하고 치료받고 나오는 비용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돈 걱정 없이 치료에 집중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CT(씨티)는 빠짐없이 계속 찍었지만 MRI(엠아르아이)는 한 번도 촬영하지 않았다(지난 영수증을 보고 확인했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요 없는 과잉 진료는 우리 경우에는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 같고, 병원에서도 따로 검사를 권유하지 않았다. 

꽤 괜찮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윤석열 정부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제고 방안'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건강보험 지속 가능성 제고 방안" 규탄 기자회견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윤석열 정부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제고 방안'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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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돼 의료비 걱정 없는 복지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비급여의 급여화, 취약계층 의료비 부담 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가 입은 혜택인 건강보험 산정특례 제도도 문제인 케어의 일부이며 진료비 부담이 높고 장기간 치료가 요구되는 중증질환에 대하여 '건강보험 본인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제도'다.

병원에 다니며 이런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로 꽤 괜찮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고 그동안 납부했던 의료보험료가 이런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것에 왠지 뿌듯한 마음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정책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 영합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며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의 근간 자체를 해치며 결국엔 국민에게 큰 희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건강보험 자체가 복지 정책의 일환이고 복지의 의미가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인 만큼, 오히려 당연하고 더 확대하는 방안을 생각하는 게 국가의 역할 아닐까? 

병은 누구에게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가족도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남편의 발병 이전까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가족이 아픈 상황에서도 마음이 안정될 수 있고, 물질적으로 넘치게 부유하지는 않아도 윤택할 수 있다는 느낌은 곧 '삶의 질'과 연결된다. 

지금도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는 많은 환자들이 이러한 의료 복지의 혜택을 입고 있을 것이다. 부당한 이익의 환수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장기간 투병 생활에서 국가가 주는 혜택이 중단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건강보험료가 정당하게 책정되고 제대로 납부되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하고, 건강보험료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그도 수용하겠지만, 이미 돌아가는 혜택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어떤 수식을 붙여도 옳은 방향이라고 보기 힘들다. 

남편의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5년간 병의 징후를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통해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5년이 후에도 이상이 없으면 완치된 것으로 판단하고 건강보험 산정 특례제도의 혜택도 끝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불시에 또 다른 사고가 우리에게 찾아들 수도 있겠고, MRI나 CT 검사가 요구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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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험 재정 축내는 진짜 '빌런'... 속지 맙시다 http://omn.kr/2201f

태그:#문재인 케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건강보험 산정특례제도, #암투병,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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