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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도권을 떠나 로컬에서 자신만의 일을 찾으려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지방소멸이란 위기를 맞닥뜨린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그런 흐름도 한참 빨랐다. 2013년 일본에서 출간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도 그런 흐름에 불을 댕긴 책들 가운데 하나다.

<시골빵집에서...>는 도쿄를 떠나 지바현 이스미시라는 시골 마을에서 빵집을 연 와타나베 이타루와 마리코 부부의 분투기다. 부부의 이름을 따 '타루마리'라고 이름 붙인 이 빵집에선 오로지 자연에서 얻은 천연균 만으로 빵을 발효시킨다. 또 이윤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 일 년에 한 달은 빵집 문을 닫고 쉰다. 썩지 않으면서, 순환이라는 자연의 흐름도 거스르는 돈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넘어서려는 그들만의 철학이 타루마리 빵집을 떠받치고 있다.
 
와타나베 이타루&마리코 대표가 함께 쓴 세 권의 책들
 와타나베 이타루&마리코 대표가 함께 쓴 세 권의 책들
ⓒ 더숲, 우주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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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를 낸 지 8년이 지난 지난해 이들은 다시 두 권의 책 <천연균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와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를 내놓았다. 첫 책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모든 일이 잘 풀릴 줄만 알았던 이들 가족의 삶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타루마리는 그 사이 돗토리현 지즈초라는 산골 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뒤 서쪽인 오카야먀현으로 옮긴 지 2년 만인 2015년에 다시 삼림이 마을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인구 7000명의 작은 마을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타루마리를 열고 빵과 맥주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 아주 오래 가는 마을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어느덧 14년째 시골빵집 타루마리를 함께 꾸려가고 있는 와타나베 이타루와 마리코 두 대표가 지난 7일 공주 하숙마을에서 열린 <2022 청년마을 성과보고회 Y-LOCAL CONFERENCE>(주최 행정안전부)를 찾아 오랜 시간 숙성시켜온 향긋한 철학과 삶을 들려줬다. 이들이 무대 위에 올라 들려준 이야기와 무대에서 내려온 뒤 따로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좋은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2022 청년마을 성과보고회 Y-LOCAL CONFERENCE에 참석한 와타나베 이타루&마리코 대표
 2022 청년마을 성과보고회 Y-LOCAL CONFERENCE에 참석한 와타나베 이타루&마리코 대표
ⓒ 행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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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어떻게 지내나.

"마을의 93%가 삼림으로 이뤄진 돗토리현 지즈초에서 빵과 맥주를 만들어 팔며 산다. 아주 만족스럽다. 이스트균이 아니라 야생(공기 중)에서 균을 채취해서 빵과 맥주를 만든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을 활용해 피자와 샌드위치도 만들어 판다.

그동안 빵 장인으로 15년, 맥주 장인으로 5년을 살았다. 공기 중에서 야생의 균을 채취하는 로망을 실현하려고 이사를 두 번이나 했다. 결과적으로 최적의 장소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지즈초는 공기가 굉장히 맑아서 더러운 균이 섞여 들어가기 어렵다.

생각지도 못했던 황당한 경험들도 많이 했다. 사람이 적어서 공기가 깨끗한 건 좋은데 손님도 없고 일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두 달 전부터는 맥주와 빵 만드는 일을 직원(제자)들에게 맡기고 마을 만들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빵을 만들어도 팔리지도 않고 마을은 계속 과소화되니 어떻게 하면 좋은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스럽다.

자본주의적 생각으로는 깨끗한 마을을 지켜낼 수 없다. 성공 사례들을 아무리 가져와도 소용없다. 그래서 발효라고 하는 자연 현상을 따라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를 시도해보려고 한다.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들에게 기술을 전승하면 지역 안에서 순환이 이뤄질 것이다. 그렇게 발효법칙을 어떻게 마을 만들기에 적용할지 연구하고 있다."

- 발효법칙을 어떻게 마을 만들기에 적용한다는 건지 조금 더 설명해 달라.

"균(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해서 먹이로 삼고, 그렇게 만들어진 걸 다시 분해해서 먹이로 삼는 순환구조를 우리 삶에도 실현하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연의 순환구조와 달리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을 그냥 버려왔다. 그렇게 버려진 것들은 순환되지 않는다. 이게 문제다. 어렵게 만들어낸 가치들이 버려지면 축적되지 않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를 겪으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값싼 상품들만을 만들어냈고, 그러다 보니 임금도 (상대적으로) 줄었다. 1990년대에 소비세가 인상되면서 더 싼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경쟁도 치열해졌다. 기업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압박을 받았고 매스컴도 새것이 좋고 옛것은 나쁘다는 광고를 계속 내보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장인들이 만든 좋은 제품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지난 30-40년 동안엔 기술의 발전도 없었다. 일본엔 1300년의 세월을 이겨낸 절도 있는데, 요즘엔 부모가 지은 집에 살려고 해도 다시 손을 봐야 한다.

물건의 가치는 점점 내려가고, 쓰레기는 점점 늘어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자본주의사회에선 임금은 물건의 가치(생활비)에 연동하므로 이런 식이라면 결국 사람의 가치도 떨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순환 체계처럼 옛것의 가치를 계속 이어가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행사가 끝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와타나베 이타루 대표
 행사가 끝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와타나베 이타루 대표
ⓒ 로잇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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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지금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아주 오래된 가옥을 리모델링해서 카페와 호텔로 이용하려고 한다. 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의 좁은 길들을 따라 지금은 비어 있는 오래된 집들이 많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손보면서 분산형 호텔(마을호텔)을 만들어보려 한다. 자연 환경을 지켜가면서 마을 만들기를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 마을에 장인들이 들어오길 바란다. 자연 순환이 이뤄지는 가운데 오랫동안 가치를 이어갈 만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가치가 축적되고 신뢰가 구축되면 장인들이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한발 한발 나아가려 한다. 나 역시 장인답게 자연 속에서 야생균을 채취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최고의 균을 얻을 것이다. 마을 만들기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다. 마치 카오스처럼 좋은 부분만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모든 것들을 융합해서 마을 만들기를 해나가고 싶다."

- 균과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에 순응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깊은 울림을 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하는지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렇게 각자가 이익을 얻어도 사회 전체는 조화롭지 못한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발효법칙이라는 자연법칙이 이런 모순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이 자연법칙만 따르면 전체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모두가 균과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 마을 만들기를 해나갈 구체적 경로가 궁금하다.

"균의 세계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설계하지 않아도 조화롭게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로드맵은 필요하지 않고 자연법칙에 따라 인연을 맺어가고, 옛것을 지켜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체계가 잘 잡힌 마을에 들어가면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득권 세력은 새로운 이들을 배척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그래서 나도 벽에 부딪히는 상황이 잦았다. 어쩌면 로드맵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한국도 일본처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길로만 나아가는데, 약간 멍청하고 바보스럽게 보이는 선택이라도 과감하게 따라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연과 사람, 마을과 공동체 등 모두가 연을 맺는 게 중요"
 
시골빵집 타루마리의 경영을 맡고 있는 와타나베 마리코 대표
 시골빵집 타루마리의 경영을 맡고 있는 와타나베 마리코 대표
ⓒ 로잇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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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코 대표에게 묻겠다. 마리코 대표도 최근 마을에 여성 커뮤니티를 만들어 빵집 운영이 아닌 다른 일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걸로 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태어나 결혼할 때까지 줄곧 도쿄에서 살다보니 시골에서 빵집을 차리고 나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여서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은 빵집 경영과 가족을 중심에 두었다.

처음부터 마을 안에서 순환하는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고 싶었지만 처음엔 빵집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아야 했다. 그래서 빵집 경영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여러 궁리를 하고 시도도 해보긴 했는데, 지금 가만히 돌아보면 그땐 너무 서둘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15년에 지즈초에 가서야 빵집이 안정화가 됐다. 편리함과 효율성만을 따지는 정부를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는데, 가령 하천이 범람하면 자연 상태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콘크리트로 막아 버리는 식이었다. 그런 정부의 태도에 맞서 연대하고 폭넓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최근에서야 마을에서 친구가 생겼고 마을 전체로 내 역할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름대로는 뭔가 하려고 애를 쓴 시간들이었고 고독한 시간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아주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믿고 견디면서 일을 해나간다면 좋은 일이 있을 거란 말을 해주고 싶다."

- 일본의 산골 마을 카미야마 이야기가 한국에 소개되면서 워케이션(Workation) 사업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또 이른바 관계인구를 늘리려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마리코) 지즈초에도 워케이션 공간이 없어서 시도를 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기간이지만 일하다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보고 싶다. 하지만 시골에선 쉬운 일은 아니다. 지즈초에 들어왔다가도 다른 곳에 더 좋은 공간이 생기면 옮겨 간다. 관계인구를 늘리는 게 좋기만 한지는 의문이다. 그 자체만으로는 지방창생에 기여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타루) 시골 마을들이 너무 과소화되고 있어서 관계인구를 늘리는 것도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콘셉트와 전략을 짜야 한다. 오래 관계가 이어질 수 있게 방침을 세워야 한다. 시골 노인들은 산 또는 논밭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면 필요 없다고 여긴다. 그러다보니 젊은이들을 배제한다. 이들의 생각을 바꾸려면 관계인구를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 일본에도 도쿄 같은 대도시 청년들에게 로컬에서 살아볼 기회를 주는 지역부흥협력대 사업이 있는 걸로 안다. 그런 사업들을 어떻게 보나.

"어디까지나 내가 겪은 사례들만 보자면, 취지에 맞게 실현된 사례는 많지 않은 걸로 안다. 지즈초에도 지원이 끝나면 거의 다 마을을 떠났다.

인연이라는 건 정부가 개입해서 무리하게 만들려고 하면 안 된다고 본다. 미야다이 신지라는 유명한 사회학자가 있는 '마을에는 인연이 무계획적으로 생겨야 그 마을이 잘 자란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뭔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해나가면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쉽겠지만 그 계획대로 일이 잘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정부에서 어떤 마을을 정해 깨끗한 마을로 만들겠다고 하면 잘 되나. 다 죽어가고 있다. 스스로가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았고,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깨끗한 마을을 만들려고 해도 죽어갈 수밖에 없다. 자연과 사람, 마을과 공동체 이 모든 것들이 연을 맺는 게 중요하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더숲(2014)


태그:#시골빵집, #와타나베 이타루, #와타나베 마리코, #청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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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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