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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개조한 오토바이로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
 노인이 개조한 오토바이로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
ⓒ 송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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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7일 서울,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에 무게가 실렸다. 조그마하던 빗방울은 순식간에 빗줄기가 돼 온 거리를 뒤덮었다. 사람들이 점차 우산을 펴고 건물 속으로 사라져가던 그때, 누군가 빗물로 찰박한 아스팔트 도로를 가로지르는 소리가 났다. 빨간색 바람막이를 입은 A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비가 오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오토바이 꽁무니에 나무판자를 이어 붙여 만든 수레가 보였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고 있음에도 A씨는 부지런히 처마 밑에 있는 폐지를 모았다.
 
폐지를 부지런히 주워 수레에 올리고 폐지가 쌓여있는 다른 집 앞으로 이동하던 A씨는 우리의 다급한 부름에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가까이에서 보니 A씨의 수레는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이 앙상했다. 수레를 지탱하는 바퀴는 겨우 폐지 무게를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입고 있는 빨간색 바람막이에는 빗물이 송골송골 맺혔다. 비가 오는 날에도 폐지를 줍는지 물어보자 A씨는 "어쩔 수 없이 나가야죠. 젖어있는 건 안 가져오고 마른 것만 가져와요"라고 답했다. 인상을 쓰고 힘겹게 박스를 접던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들
 
A씨는 폐지를 모으며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내가 너무 늙고 아파서 걸음을 잘 못 걸어요. 허리가 이렇게 구부러졌잖아요. 그래서 오토바이로 폐지를 모으고 있어요."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그는 까맣게 때가 탄 목장갑을 매만졌다. 안쪽이 빨갛게 코팅된 목장갑이 비에 젖어 유난히 반짝였다. 최근 폐지값 폭락 이후로 A씨가 폐지를 모아 버는 돈은 하루에 6000원. 그 6000원으로 아픈 아내와 둘이 생활해 왔다는 A씨는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나라에서 주는 건 돈 7만 원(생계 급여) 주는 거. 늙은이 두 내외가 사는데 마누라는 아파서 꼼짝도 못 해요. 다른 건 다 오르는데, 왜 이건(폐지값) 떨어지는지 모르겠어."

인터뷰를 청한 이후 계속해서 미소 짓던 A씨의 얼굴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이러한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A씨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노원구에서 몇 년 동안 폐지를 줍고 있는 B씨는 폐지 값이 폭락한 것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옛날에 많이 올랐을 때는 1kg에 130~140원. 지금은 40원이야. 40원. 말도 안 되는 거지. 이렇게 종일 다녀도 하루에 만 오천 원도 못 벌어."

정부에서 지원받는 건 없냐는 질문에 B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없지. 나라에서 뭘 줘. 안전용품이나 방한용품도 안 주고, 박스값도 안 쳐주고 내 다리만 아프지. 신발값도 안 나오는데 뭘..."

B씨의 말을 듣고 그의 신발을 가만히 살펴봤다. 흙먼지에 본래의 색을 잃어 거무튀튀한 신발이 간신히 B씨의 다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정부 지원 없다"...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복지 실태
 
서울시 복지정책과는 8월부터 노인들에게 안전·냉방용품을 지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노인들은 입을 모아 정부에서 아무것도 지원받지 못했다고 말할까? 조사 과정에서 이 사업의 허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시에서 통합적으로 안전·방한용품을 지급하는 사업의 경우 시에서 2년에 한 번, 자치구에서 1년에 한 번 실태조사를 통해 복지 대상을 선정한다. 자치구에서 임의로 용품이 필요한 노인들을 전수 조사해 물품을 나눠주다 보니 추산되지 못한 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폐지수입 노인에게 안전용품을 지급하는 사업은 정부에서 예산을 배정하지 않은 '비예산 사업'이다. 온전히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안전·방한용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파악하고 있는 폐지 수집 노인의 수는 2021년 6월 기준 2363명. 그러나 A씨와 B씨처럼 집계되지 못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현재 서울시는 '폐지 재활용 사업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고물상과 업무 협약을 맺어 판매 대금을 바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보조금을 더해 지원하는 것이다.

본래 '폐지 재활용 사업단'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은 881명이지만, 이미 941명의 인원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노인 복지에 분배된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폐지 수집 노인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실제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3년 뒤 초고령 사회인 대한민국, 앞으로의 복지 방향은?
 
통계청의 2021 고령자 통계 고령인구(65세 이상)의 비중이다.
 통계청의 2021 고령자 통계 고령인구(65세 이상)의 비중이다.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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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폐지 수집을 하는 원인은 '할 수 있는 게 폐지수집밖에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이 폐지수집을 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2022년 노인복지예산은 전년보다 1조5832억 원 증가한 20조4420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고령층 인구가 처음으로 900만 명을 넘었다. 통계청은 3년 뒤인 2025년 이 연령대 인구 비중이 20.6%까지 높아져 한국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매년 복지 대상이 되는 노인이 급격하게 증가하기에 실질적인 보조금 향상 및 일자리 확대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확대 한계가 있는 예산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개선 방안으로는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 축소화가 있다. 현재 만 65세 이상의 국내 국적, 거주자 중 소득 하위 70%의 노인들은 정부로부터 기초노령연금을 받는다. 즉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는 노인도 기초노령연금의 지급 대상이다.

기초노령연금의 지급 대상을 1인당 약 40%로 줄이고 1인당 지급 금액을 늘리거나 소득분위별 차등지급 증액 등을 통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복지가 이뤄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인 정해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적연금 재구조화 방안 연구'에서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에서 2039년 30%로 축소하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어려운 경제 환경에 열악한 곳으로 내몰려 폐지를 줍는 노인의 모습은 이제 먼 이야기가 아니다. 급격하게 초고령화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 지금, 새로운 해결방안에 대한 모색이 필요할 때다.

태그:#폐지수집노인, #폐지, #폐지줍는노인, #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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