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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홍보비 집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계도지(통반장용 신문 구독)는 군사정권시절 주민들에게 정부 시책을 전하기 위해 만든 관행이다. 지금은 계도지라는 말 대신 통반장신문, 주민홍보지 등으로 불리지만 그 뿌리가 군사정권을 옹호하기 위함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도지는 2000년 이후 경남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유독 서울 25개 자치구에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그 예산 규모도 1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계도지는 각 구청에서 신문을 구독해 통반장 등에게 배부하는 방식으로 집행된다.

자치구별로 계획하고 집행하기 때문에 자치구별 계도지 예산규모나 신문구독 규모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신문을 몇 부 구독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 없이 관행이란 이름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미디어오늘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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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도지 예산 중 가장 많은 구독료가 지출되는 곳은 서울신문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모두 서울신문이 가장 많은 구독부수를 확보하고 있다. 이유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반상회의 통반장들을 통해 정권의 각종 통제 지침이 하달되었는데 이 때 정부 소유 신문이었던 서울신문이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강북구청에서는 계도지 예산 삭감에 나섰다. 관련 내용은 11월 1일자 미디어오늘 기사를 통해 자세히 보도됐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현 이순희 구청장이 당선된 이후 인수위원회를 꾸리고 효율적인 예산 운영을 위한 구정홍보 방안을 검토했고 계도지 부수 절감 논의를 시작했다. 강북구청은 서울신문 구독부수를 1150부에서 385부로 765부 절감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삭감 이후에도 서울신문 계도지 부수는 가장 많은 상황이다. 

강북구청이 신문부수 조정에 들어가자 지난 8월 2일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발행인), A부장, 취재기자 등 3명이 구청에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이순희 강북구청장을 비롯해 구청 관계자들에게 "저희 보도량이 다른 회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정책에 대해 구청이)직접 SNS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언론에 보도된 걸 믿는다", "우리가 6명 에이스를 굳이 투입해서 남들이 찾지 않는 구청기사를 꼼꼼하게 쓴다", "구청장님도 정치인이고 재선도 생각하셔야 되는데 서울신문 기자들 네트워크나 자산을 활용하라" 등의 발언을 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서는 강북구청 측이 서울신문 부수 삭감과 관련해 한 국회의원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강북구청은 서울신문의 요구를 거절하고 나섰다. 서울신문 측의 반응을 일종의 협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서울신문은 이순희 강북구청장 비판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25일 서울신문 보도를 보면 이 구청장이 지난 8월 폭우 당시 수해현장을 방문했다고 한 시간에 실제 업무추진비 내역을 보니 저녁식사 비용을 결제했다며 "재난 속에서 회식을 강행하고 수해 현장을 직접 다녀오지 않았으면서도 동선을 허위 기재한 이 구청장의 행보를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라 전했다. 

서울신문 보도에 대해 강북구청은 즉각 반박했다. 강북구청은 10월 25일자 반론 자료를 통해 "수해 대응 와중에 현업부서의 문서 작성에 약간의 시간적 오류가 있었을 수 있음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허위사실을 보도한 데 대하여 강북구는 심히 유감임을 밝히며 적절한 대응조치를 강구 중"이라 밝혔다. 이어 "서울신문 구독비율이 타 언론에 비해 월등히 높았던 부분을 형평성 차원에서 조정했다"고 전했다. 

 
이순희 강북구청장 페이스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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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청의 반론에도 서울신문은 강북구청장 비판기사를 이어나가자 이순희 강북구청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신문의 왜곡보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습니다"란 강북구 입장을 전했다. 강북구는 "언론 본분을 저버린 서울신문의 일방적이고 악의적 행태에 더 이상 일일이 해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며 "조속히 수사를 의뢰하고 법적 처벌이 내려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어 "서울신문은 이제라도 냉정을 되찾고 언론의 본연에 충실하기 바란다"며 "힘없는 자치단체의 손목을 비틀어 혈세를 챙기려 들지 말고 성실하고 진실한 취재와 보도 활동으로 활로를 찾아나갈 것을 권고한다"고 전했다. 

오락가락 행정안전부 답변, 계도지 유지 근거로 작동 

그동안 서울에서 군사정권의 유물인 계도지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2년 10월 17일 기초의회 발전을 위한 한걸음 모임은 서울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관행적으로 통반장에게 무료로 배부하는 신문은 위법이며 예산낭비가 발생하고 있다. 11개 자치구에서 서울시 주민감사 청구서를 제출했다"며 무료신문 배부의 중단을 요구했다. 
 
2012년 계도지 구독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는 기발한 모임 소속 서울시 자치구 구의원들 (출처 : 디지털광진)
 2012년 계도지 구독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는 기발한 모임 소속 서울시 자치구 구의원들 (출처 : 디지털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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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회 발전을 위한 한걸음 모임은 서울경기지역 기초의원들의 모임으로 기초의회 공동현안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과 정책 교류를 통해 기초의회 발전을 도모하는 연구모임이다.

이들은 "통반장신문의 무료배부는 행정안전부령 예산편성 운영기준에서 제시한 활동보상금 지급기준을 초과하고 있고 2011 행안부 지방예산 질의회신 사례집에서도 '통리반장에 대한 신문구독료를 지원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지적했다. 

행안부 2011 지방예산 질의회신 사례집에는 통리장이 "자치단체의 지방재정법 제17조 제1항의 기부·보조 또는 그밖의 공금 지출이 가능한 개인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단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역신문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목적이라 하더라도 통리장에 대해서는 지역신문 구독을 위한 보조금을 지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실려 있다. 

하지만 행안부는 2013년 입장을 바꿔 "행정상 하부조직은 통리반장의 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원활히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의 일환으로 신문을 제공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리면서 서울 25개 자치구 계도지 집행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행안부에 계도지 예산 지출이 지방재정법에 위배되는지 질의했다. 이에 행안부는 "보조금을 지출하지 아니하면 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로서 지자체가 권장하는 사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고 해당 사업의 지출 근거가 조례에 직접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 한해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출 근거를 조례에 직접 규정하면 가능하다는 것이 답변의 요지인데 계도지 예산 편성의 근거가 되는 통·반 설치조례 등의 사례들을 보면 계도지 지원 근거가 직접 규정되어 있는지 여부를 확정하기 어렵다. 

은평구 통·반 설치조례 제10조(편의제공)에서는 "통반장은 구청장이 정하는 바에 따라 동주민센터의 공문서 열람과 공공시설 무료 사용 등 직무수행 시 필요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문제는 직무수행 시 필요한 편의 제공이 무료 신문을 제공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지 여부다. 필요한 편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문 제공이 그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 필요한 이유다. 

은평구청은 2023년 통반장 등에 대한 신문보급 추진 사업으로 6억 696만 원을 책정했다. 지난해보다 232만 원이 늘었다.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린지 오래고 종이신문 열독율이 13%(2021년 기준)에 그치는 상황에서 '통반장 등에게 직무수행에 필요한 정보와 편익을 제공하겠다'는 계도지 예산은 이제 무대 뒤로 사라져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행정과 언론의 유착이 아니라면 계도지 예산을 폐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신 그 자리에 건전한 지역 언론 문화를 뿌리 내릴 수 있는 정책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박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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