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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라이브 영상 중 한 장면.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라이브 영상 중 한 장면.
ⓒ 유튜브 이랑 Lang Lee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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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 43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아티스트 이랑은 원래 그의 밴드와 함께 '늑대가 나타났다'를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연을 3주 앞두고, 재단의 태도는 바뀌었다. 행정안전부가 부마항쟁재단 측에 "해당 노래를 빼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행안부가 '노래 빼라' 검열... 빽투더 유신인가").

이 행사의 연출을 맡은 강상우 감독에 따르면 "지시를 수행하지 않으면 재단의 존립이 위험하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행안부 측에서 '무색무취'의 기념식을 원했다는 재단 관계자의 증언도 이어졌다. 재단 측에선 이랑에게 '늑대가 나타났다' 대신 김민기의 '상록수'를 불러달라 요청했으나, 이랑은 거부했다는 게 언론보도로 알려졌다. 약속된 공연비 700만 원 역시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체 어떤 음악이고 어떤 가수이길래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차별금지법, 구조적 빈곤... '불편한 노래' 부르는 가수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 '늑대가 나타났다' 도입부 중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는 지난해 이랑이 발표한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의 수록곡이다. 이 앨범은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과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받으며, 지난해 한국 인디의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서늘한 레이션, 그리고 음산한 첼로 연주와 함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는 시작된다. 이 곡에서 그는 지근거리에 존재하는 구조적 빈곤을 응시한다. 합창이 더해지는 후반부에서는, 차가운 정서가 뜨겁고 격정적인 분노로 변모한다. 가사는 이렇게 흘러간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세련된 민중음악'을 지향하는 이랑은 한국 사회의 주변부를 노래한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환란의 세대'에서는 수많은 방식의 죽음을 열거하며 울부짖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라고 묻는 '신의 놀이(2016)', 친구의 이름을 빌려 동시대 여성의 삶과 연대하는 '박강아름(2021)' 역시 인상적이다.

누군가는 살아가며 평생 생각해보지 않았을 '시대의 그림자'를 노래하지만, 이랑은 '함께 살자'는 의지 역시 노래한다. 올해 초, 아이돌 그룹들이 자리한 시상식인 '서울가요대상'의 무대에서도 '차별금지법, 지금 당장'이라는 메시지를 수화로 실어 보냈다. 그러나 이랑의 메시지가 부마 항쟁 기념식에서는 울려 퍼질 수 없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행정안전부는 22일 해명 자료를 발표했다. 그리고 "미래 세대와 부마 항쟁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도록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검토해달라는 의견을 재단에 전달한 바 있다"고 해명했다. "미래지향적인 밝은 느낌의 기념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 검열은 없었다"고도 말했다. 

"밝은 느낌" 요구하는 것도 검열의 일환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0월 16일 오전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0월 16일 오전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행정안전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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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극을 노래하는 가수에게 '밝고 희망찬 노래'를 부르라고 요구하는 행위는 검열이 아닌가. 아티스트의 공연 행위가 '관'의 개입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당국의 관심 여부가 아니었다. 행안부 측은 아마 행사를 통해 누구의 심기도 자극하지 않는, '무색 무취'의 무균실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1979년 10월 일어난 부마 항쟁이 철저히 정치적인 사건이었음을 고려하면, '탈정치'에 대한 행안부의 강박은 아이러니해 보인다. 미래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그림자를 비추는 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당 행사의 총연출을 맡았던 강상우 감독은 지난 23일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행사 뒷이야기를 알렸다. 그는 "회의에서 VIP(대통령)가 행사에 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뒤로 주무관 선에서 승인된 내용을 사무관들이 세세하게 검토했고, 해당 노래를 문제삼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부마항쟁 기념식 감독 "VIP 참석 얘기 후 행안부 위협적 지시").

'VIP', 즉 윤석열 대통령이 실제로 이 행사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그가 만약 이 행사에 참석했다면 이 노래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짐작해볼 뿐이다.

행안부는 '늑대가 나타났다'가 VIP의 심기를 거스를 것을 걱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에는 "일하고 걱정하고 노동하고 슬피 울며, 마음 깊이 웃지 못하는 예의 바른 사람들"이 '이단'과 '폭도'로 몰리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노동자가 사망한 산업 재해 현장에서 사고 원인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거나, 빈곤한 사람은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이에게는 이 노래가 불편하지 않았을까.
 
강상우 감독
 강상우 감독
ⓒ 영화사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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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가요' 아십니까... 떠오르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기억

"마을에서 사고를 친 후, 그들은 내 손에 총을 쥐여 주었어.
그리고 동양인들을 죽이라며 외국 땅에 보냈지."

- 'Born In The USA' 중


미국 록을 상징하는 아티스트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는 미국 워킹 클래스의 희망과 좌절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1984년, 그가 대표곡 'Born In The USA(미국에서 태어나)'를 발표했을 때, 재선을 노리던 로널드 레이건 후보 측에서는 이 노래를 '강한 미국'을 내세운 선거 캠페인에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저 스프링스틴의 힘찬 창법, 노래 제목과 성조기가 그려진 앨범 재킷에만 마음이 동했던 모양이다. 정작 이 노래에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비애가 담겨 있었다. 이랑의 노랫말도,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랫말도 누군가에게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스프링스틴은 추후, '레이건은 아마 내 앨범도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에는 관심이 없고, 오늘을 긍정하는 장식에만 관심 있는 이들이 빚은 촌극이다.

문화에 대한 권력의 무지와 야만적 태도는 이 땅에서도 낯설지 않은 일이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소위 '건전가요'가 존재했다. 모든 뮤지션이 앨범의 콘셉트와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정권을 찬양하거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곡을 수록해야만 했다. 정부에 의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도 불과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일이다.

2022년, 이랑의 노래가 권력에 의해 배제된 풍경을 다시금 바라본다. 유독 '자유'를 강조한 권력자들의 인식 수준은 '건전 가요' 시대와 '블랙리스트 시대',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까. 조용히 퇴행하는 듯한 시대 속에서,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는 더욱 유효한 민중 가요가 되어가고 있다. 가사를 곱씹게 된다.

"마녀가 나타났다 / 폭도가 나타났다
이단이 나타났다 / 늑대가 나타났다"

- 이랑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 마지막 부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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