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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설'. 사람들이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소설에 빗대어 이르는 말인데, 조롱이 느껴지는 단어다. 나는 이 말이 자소서를 폄하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소 섭섭하기까지 했다. 특히 내가 지도해 온 대학 입학 자소서는 쓰는 사람도, 그것을 읽고 뽑는 사람도 몰랐겠지만 글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자소서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2007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후 학생부종합전형이 점점 확대되어 가면서 자소서의 비중도 커진 것이다. 대학 교수나 입학사정관들은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왔지만, 1차 합격을 결정하는 서류 중 하나이므로 학생 입장에서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수시 원서 접수가 9월에 이뤄지기 때문에 여름 방학 즈음은 늘 자소서를 지도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자소서 쓰기를 지도해 왔는데 초창기에는 '글쓰기 지도'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의 '첨삭' 수준이었다.

지금이야 자소서 지도 수당을 받지만(처음부터 끝까지 봐주고 한 사람당 8만 원 받는다),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으레 고3 담임이라면, 혹은 국어 교사라면 자신이 담당하는 반 학생들의 자소서를 지도해줘야 하던 시절이었다. 한창 수시 전형의 비율이 높을 때는 20여 명의 자소서를 봐줘야 했고, 담임 추천서도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의 자소서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20여 개의 추천서도 써야 했다. 그래서 정말 자소서조차도 '첨삭'해야 하는 시기였다. 몇 년 전부터는 수시 전형이 줄어들어 지도하는 학생 수도 적어져서 지도다운 지도를 해 줄 수가 있다. 

자소서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기반으로 하는, 아주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장르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바로 학생부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과 다르기도 하고 닮아있기도 하다. 근거가 있어야 해서 무조건 상상만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는 게 다르고, 학생부 한 줄 기록을 몇 줄로 부풀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특히 각 항목마다 '배우고 느낀 점'을 써야 하는데 실제 배우고 느낀 점이 기억나는 학생은 많지 않아서 이 부분은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고 느낀 점을 쓰는 게 중요한데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장르가 아니라는 점은 무척 역설적이어서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기본적으로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학생들도 많아서 첫 줄, 첫 단어 시작을 어려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소서의 지도는 학생부를 아주 꼼꼼하게 읽고 쓸 거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학생의 기억을 최대한 끄집어내기 위해, 어쩌면 지원하는 학과에 맞춰서 기억을 발굴하기 위해 아주 길게 대화한다.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학교 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다. 그때 못한 걸 후회하기도 하고 신이 나서 그 당시의 기억을 조잘대기도 한다. 
 
자소서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기반으로 하는, 아주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장르이다.
 자소서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기반으로 하는, 아주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장르이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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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마지막으로 자소서를 지도한 학생 중 한 명은 종교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 학생은 자기가 3년 동안 조사하고 발표한 내용을 이야기하느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팀 과제를 수행하며 힘들었던 점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애타게 했던 그 친구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또 어떤 학생은 문학을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걸 다 기록해 놓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학생부에는 책 제목만 기록될 뿐이라서 비단 대입 전형을 위한 후회만은 아니었다. 그날의 대화는, 나중에도 그 내용을 떠올릴 수 있게 글을 써야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이런 대화들을 통해 학생들은 그냥 스쳐 지나간 학교 생활의 다양한 의미를 찾아내기도 한다. 배우고 느낀 점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지만, 학생들의 잠재된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건 그냥 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했으면 자소서 쓰기의 절반 이상이 끝난 것이다. 이제는 대화한 걸 쓰기만 하면 된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학생의 글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읽기 힘들 정도로 문맥이 안 맞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니까 자소서를 그저 '자소설'이라고 하는 건 다소 섭섭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이렇게 자소서에 대해 쭉 쓰다 보니 제대로 지도했다면 혹은 입시가 아니었다면 자소서기 지도가 더 뜻깊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제목은 '첨삭의 역사'라고 지었었는데 제목도 바꿨다. 

사실 내년부터 대학 입학에서 자기소개서가 아예 사라진다. 수시 전형이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학생들과 교사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자소서 쓰기를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건 사실이다. 사교육에 의지하게 된다는 논란도 쭉 있어 왔다. 하지만 학생들의 글쓰기를 독려할 수 있고 지도할 수 있는 일이 사라져서 아쉽다는 느낌도 든다. 그동안 해왔던 자소서 지도가 그냥 첨삭이 아니었다는 깨달음도 생겼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학생들과 다양한 독서 모임을 해 왔다. 원하는 학생들을 모집해서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함께 읽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박지원의 <열하일기>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완독하는 모임이다. 보통 5명 정도 소규모로 진행되는데 서로 인상 깊은 구절을 돌아가며 읽기도 하고 궁금한 점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책 읽기 모임은 학생들의 시선을 배울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것을 찾느라 더 꼼꼼히 책을 공부하다 보면 또 많이 배운다.

이외에도 도서관을 담당하고 있다 보니 정말 좋은 책들, 좋은 저자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다양한 행사를 연다. 르포 작가 은유도 와 주시고, 최영미 시인도 와 주셨다. 우리 학생들은 참 복이 많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수시 전형이 줄어들어 학생부 기록을 신경 쓰지 않다 보니 학생들의 참여율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참여하는 단 몇 명의 학생들이 있어서 정말 재미가 넘치는 일이다. 

그런데 글쓰기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은 해 본 적이 없다. 글쓰기 선생님을 모셔서 진행한 적은 있지만 직접 해 본 적이 없다. 자소서가 사라진 지금,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대학 입시를 위한다는 명목은 빼고, 소규모라도 아이들을 모아서, 자소서처럼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웃고 울게 해 주자. 그러면 나의 첨삭의 역사는 글쓰기 지도의 역사로 거듭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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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jey9595 사진은 우리집 양선생, 순이입니다. 저는 순이와 아들 산이를 기르고 있습니다. 40대 국어교사이고, 늘 열린 마음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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