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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3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시민이 3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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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5일 오후 6시 30분]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17일째인 14일, 언론 보도로 참사 희생자 명단이 먼저 공개되자 유족 동의를 거치지 않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참사를 책임질 정부가 애초부터 참사를 축소하고 사회적 애도를 통제하면서 희생자 명단도 계속 공개하지 않았기에, 명단 자체가 불필요하게 정쟁의 도구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14일 오전 온라인 매체 <민들레>와 <시민언론 더탐사>는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며 참사 희생자 155명의 명단을 기사로 보도했다. 이날 기준 사망자는 158명이지만, 입수한 명단은 그 이전에 작성됐기에 155명이라고 밝혔다.

<민들레> 등은 "지금까지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 당국과 언론은 사망자들의 기본적 신상이 담긴 명단을 국민들에게 공개해 왔으나, 서울 이태원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인재이자 행정 참사인데도 사고 직후부터 끊임없이 책임을 회피하며 책임을 논하는 자체를 금기시했던 정부 및 집권여당의 태도와 무관치 않다"고 밝혔다. 

두 언론은 또 "이미 뉴욕타임스 등 여러 외신은 국내외 희생자 상당수의 사진과 사연을 유족 취재를 바탕으로 실명으로 보도했다"며 "한국 언론도 과거 서해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화성 씨랜드 화재, 대구 지하철 화재, 이천 냉동창고 화재, 세월호 침몰,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 대형 참사에서 희생자의 이름과 나이, 성별, 안치 병원 및 장례식장, 때로는 소속 학교와 직장까지 명단으로 보도해왔다"고 덧붙였다.

유족 동의와 무관하게 보도를 한 데 대해 두 언론은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며 "희생자들의 영정과 사연, 기타 심경을 전하고 싶은 유족께서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최대한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14일 희생자 155명 명단을 공개한 <민들레> 보도 갈무리.
 14일 희생자 155명 명단을 공개한 <민들레> 보도 갈무리.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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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동의 없는 공개, 비판 높아

정부의 희생자 명단 비공개는 참사 초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다. 과거 참사와는 다르게 정부·지자체가 마련한 합동분향소에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나 위패가 올려지지 않아 조문객들의 의문을 자아냈다. 특히 정부가 참사 직후부터 희생자나 피해자가 아닌 '사고 사망자'로 호명해야 한다고 지시를 내린다든가, 행정안전부 장관 등 주요 책임자들이 책임 회피성 발언을 연일 내놓는 논란이 더해지면서 정부의 명단 비공개를 '명단 은폐'라고 의심하는 여론이 조성되기도 했다.

오민애 '10·29 참사 TF'(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공동간사 변호사는 14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유족 동의 없이 공개됐다는 점이 부적절하다"며 "특히 참사 피해자 경우 피해자 및 그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보호 지침은 국제법상으로도 마련돼있다. 이는 단순히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가족들이 겪어야 할 상처와 트라우마를 심화할 수 있기에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유족들이 모여서 국가로부터 어떤 권리구제 조치를 받을 수 있는지를 듣고 유족끼리 만나 서로 애도하고 치유를 나누는 자리, 그런 자리를 만들 수 있는 건 모든 정보를 갖고 있는 행정안전부밖에 없으나 하지 않고 있으니 마치 희생자 정보를 외부에 공개해야 하는 것처럼 (논란이) 흘러 간 것 같다"며 "그럼에도 가족들 의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방으로 공개된 건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애도를 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점"이 근본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고, 희생자에 사망 책임을 돌리며 모욕하는 개인들도 방치하는 상황에서 희생자 명단이 공개되면 유족들이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우려다.

윤 상임이사는 "정부가 '함께 진심으로 애도하고 혐오적인 시선으로 참사를 바라보지 말아야 하며, 희생자 신상을 욕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등 피해자를 위하고 보호하는 노력이 없던 상황에서 유족은 '참사가 개인 탓'이라는 등의 공격을 받을 게 뻔하다"며 "당사자들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민들레>가 유족 동의없이 명단을 공개한 건 잘못됐고 2차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이번 참사로 아들을 잃은 한 유족이 당일 부실대응에 항의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근조화환을 쓰러뜨리고 있다.
▲ 이태원 참사 유족이 부순 윤석열, 오세훈 근조화환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이번 참사로 아들을 잃은 한 유족이 당일 부실대응에 항의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근조화환을 쓰러뜨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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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유족인 김영오씨는 "따지기 전에 유족에게 가서 물어봤어야지, 이걸 가지고 왜 언론과 정치권, 자기네들끼리 먼저 싸우느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씨는 "세상에 자기 자식을 하늘나라로 보내는데 영정사진과 위패를 올리고 싶지 않은 부모는 없다"며 "그런데 참사 초기 무슨 말부터 나왔느냐? 나는 '놀러갔다가 죽었다'는 '일베' 글을 받아쓴 언론 보도를 제일 처음 봤고 정부도 애초부터 이런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고 심지어 '머리띠를 쓴 남자'를 찾으며 토끼몰이까지 했다. 세월호와 판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놀러간 사람이 죄인이 되다시피 몰리는데 유족은 어떻겠느냐? 애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꺼려지고 조심스러워진다. 위패를 놓는다 해도 놓고 싶지가 않다"며 "정치하는 놈들, 언론들이 이렇게 만들었지 않았느냐"고 비판했다. 김씨는  또 "(애초) 행정이 잘못됐다. 정부가 유족에게 물어보고 위패를 올렸어야 했다. 원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올리지 않으면 된다"며 "정부는 왜 물어보지도 않았느냐. 하늘로 가는데 이름도 없이 보내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민들레> 관계자는 이같은 비판에 "유족 동의 여부에 대해서는 기사에서 밝혔듯이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책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는 데 대한 이해를 해 줄 것으로 봤다"며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해선) 그 여부를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실정법 위배 여부를 떠나서 언론으로서,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책무감과 도리를 다하려는 마음의 발로였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다. 그 자신의 잘못이 아닌,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며, 죽임을 당한 것으로 죽은 이들을 위한 애도를 애도답게 하는 것에서 그 이름을 불러 주는 게 출발점이라고 봤다"며 "언론으로서, 시민으로서, 또 한 부모와 형제와 이웃으로서의 의무라고 봤다"고 말했다.

태그:#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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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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