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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부터 3일간 롯데호텔 울산에서 <울산 국제 임팩트 컨퍼런스 - 로컬과 만나는 결심>이 열렸다. '지방의 한계를 뛰어넘는 로컬 임팩트'의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제니퍼 린치 포틀랜드 시드펀드 매니징파트너와 이정희 포틀랜드주립대 교수를 비롯해 7명의 해외 연사·패널이 참석했다. 로컬 콘텐츠 제작 그룹 <로잇 스페이스(LOIT SPACE)>와 함께 발표를 마친 몇몇 해외 참가자를 만나 짧은 발표에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봤다.[기자말]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을 믿어야 하고, 민간은 그 믿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게 키포인트다."

이연경 페어트래블재팬 팀장은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고향사랑기부금 제도(일명 고향세)의 성공은 결국 민관 협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고향세를 기반으로 한 지역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는 그는 이번 행사에서 '로컬임팩트의 변곡점, 고향세' 세션에 참여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고향세, 민관협력의 중요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연경 팀장이 '울산국제임팩트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이연경 팀장이 "울산국제임팩트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울산국제임팩트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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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고향세는 인구 감소로 재정 위기에 놓인 지역에 다른 지역 사람들이 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일본에서는 2008년부터 벌써 15년째 시행해 오고 있다. 이름과는 달리 꼭 고향에만 기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내야 하는 세금도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지방세법과 소득세법에 근거(한국은 고향사랑기부금에관한법률)를 두고 있어 고향세라고 불린다.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고향사랑기부금을 내면 일본처럼 세액공제와 함께 지자체가 답례품을 보내게 된다. 기부금액 10만 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 대상이고, 10만 원을 넘으면 그 초과분에 대해서는 16.5%만 공제(일본은 전액 세액공제 대상)가 된다. 연 최대 500만 원까지 기부를 할 수 있고 지자체는 기부액의 최대 30%에 상당하는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다.

이연경 팀장은 지자체 혼자 감당하기엔 벅찰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면서 "지역의 여러 민간 단체들과 협력하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는 지역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도 활성화돼 있는데, 대부분의 지자체가 민간 플랫폼을 활용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다고 했다.

또 그는 새로운 제도가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 만큼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응원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나친 출혈경쟁으로 오히려 지자체에 재정 부담만 더해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좋은 답례품에만 매달리기보다 "지역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기회가 열릴 수 있다"면서 기부자들로 하여금 정말 지역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볼 것을 당부했다.

이연경 팀장이 몸 담고 있는 페어트래블재팬은 고용노동부인증 사회적기업 ㈜공감만세의 일본법인으로, 지역활성화로 이어지는 공정여행을 기획·운영하며 2년 전부터 일본에서 빈집을 활용해 커뮤니티 호텔을 조성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연경 팀장의 발제가 끝난 뒤 지하얀 <로잇스페이스> 공동대표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 발제 내용을 보태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일본 최대의 민간 고향세 플랫폼인 후루사토초이스
 일본 최대의 민간 고향세 플랫폼인 후루사토초이스
ⓒ 후루사토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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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세는 지자체가 담당하는 사업인데 민관 협력을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

"매우 복잡한 요소가 담긴 제도다. 일반 기부와 달리 '답례품'이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고, 지역마다 처한 문제를 찾아 기부자에게 잘 전달하고 기부를 이끌어낼 콘텐츠도 개발해야 한다. 또 답례품을 발송하고 기부자에게 피드백을 보내는 일까지 놓쳐선 안 된다. 이 많은 업무를 지자체 혼자 할 수 없다. 일본에서 다양한 민간과의 협업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일본에는 전국 각지의 답례품을 소개하고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기부를 받는 플랫폼들이 40개 이상 존재한다.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 웹사이트를 포함하면 몇백 개에 달한다. 하지만 접근성의 차이 때문에 90%가 넘는 지자체들이 민간 플랫폼을 이용한다. 민간 플랫폼의 인지도가 월등히 높고 기부 유입도 훨씬 크다. 지자체마다 평균 5개 이상의 민간 플랫폼들과 계약을 한다. 

특히 '후루사토초이스'는 일본 최초의 민간 플랫폼이자 대부분의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지자체별 답례품을 소개하는 기능뿐 아니라 '지역을 위한 GCF(Government Crowd Funding)'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했을 정도로 고향세가 지역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한다." 

-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크라우드펀딩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해달라.

"일본에서는 GCF라고 하는데, 기부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으니까 결국 세금을 활용해서 기부를 하는 셈이다. 다른 세금은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지만 GCF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는 특정 프로젝트를 정해 기부를 하기 때문에 효능감이 높다. 시민 참여로 아래로부터 위로 정책이 형성되는 직접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

히로시마현 진세키고원초는 인구가 8000명에 불과한 인구소멸 지역이다. 이곳은 한때 유기견 살처분율이 전국 1위였다. 2012년 피스윈즈재팬이라는 NPO가 고향세 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고 몇 년 만에 살처분 0마리를 만들어냈다. 지역 내 모든 유기견을 보호하고 재난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구조견으로도 훈련시켰다. 이 분야 고용 창출이 100명을 넘고 청년 인구도 늘었다. 연간 4~5억 엔 이상의 기부를 꾸준히 받고 있는데 지역 문제도 해결하면서 동시에 지자체 세수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사가현의 고향세는 최근 6년 사이 10배 가까이 늘었다
 사가현의 고향세는 최근 6년 사이 10배 가까이 늘었다
ⓒ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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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이 상당한 수준의 주도성을 발휘하는 걸로 들리는데 실제로 그런가.

"모든 지자체가 그런 건 아니다. 고향세는 법률상 모금의 주체가 지자체이기 때문에 NPO 등 민간 단체의 주도성이 높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가현은 '시민사회의 자발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 기존 NGO나 NPO를 넘어 봉사활동 단체, 자치회·부인회·노인회 등 다양한 조직을 포괄한 CSO(시민사회조직, Civil Society Organizations)들이 고향세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봤다. 지자체에 기부하는 건 같지만 다른 지자체와 달리 사가현은 이렇게 모은 기부금의 90%를 곧바로 CSO에 전달할 수 있게 조례를 만들었다.

사가현은 CSO들이 지역 만들기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판을 열어주고 최소한으로만 관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난치성 제1당뇨병을 가진 아이들을 위한 신약과 치료법을 개발하는 연구 프로젝트다. 고향세를 통해 연간 2400만 엔이 꾸준히 모이고 있다. 

사가현은 공무원들에게 CSO 활동을 적극 장려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공무원들이 지역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할수록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가현이 제도를 바꾼 뒤 기부금은 2015년 1억 엔에서 출발해 최근 9억 엔으로 늘었고, 사업에 참여하는 CSO도 9개에서 104개로, 모두 10배 가까이 늘었다."

- 한국은 민관 협력 경험이 많지 않아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사업 시행한 지 15년이 됐지만 아직도 문제는 있다. 성공 사례들만 알려져서 그렇지 고향세 모금을 포기한 지자체도 많다. 사가현을 배우러 연수들을 많이 오지만 실제로 같은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드물다. 사가현처럼 되려면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을 믿어야 하고, 민간은 그 믿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게 키포인트다.

선결조건 중 '신뢰 관계'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조건이다. 지자체는 '우리가 민간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문제가 생기면 책임소재는 어떻게 하느냐'하는 생각이 앞선다. 민간이 지자체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민간에겐 새로운 기회가 열린 거다. 우리가 원래 하던 것을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벗어나 동등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 따라서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지자체도 민간이 충분하게 법과 제도를 이해하고 정해진 사항들을 지킬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고향사랑기부금제도는 새로운 제도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두렵다고 미리 포기해선 안 된다.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더 많은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가현도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준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응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민관 협력의 좋은 모델로서 고향세가 자리 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 우리나라에서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 지자체 간 출혈경쟁을 걱정하거나, 고향세의 혜택이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떻게 보나.

"일본도 매년 총무성에서 지자체별 모금 순위를 발표한다. 기부자들에 대한 의무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답례품에 매달려서 기부금을 늘릴 생각만 하면 지자체 간 경쟁으로 적자를 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역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지역에 정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내야 한다. 일본에는 답례품을 안 받겠다는 사람도 많다.

후루사토초이스(플랫폼)에서는 매년 지역 문제를 해결한 좋은 사례들을 모아 '후루사토 어워드'라는 시상식을 개최한다. 올해로 9년째 진행되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무장한 이른바 '슈퍼 공무원'을 응원하기도 하고 루키(새로 업무에 배치된 공무원)들의 활약상을 소개하기도 한다. 주민과 공무원들을 독려하고 더 많은 지자체가 이런 흐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선순환구조를 만들려는 것이다.

물론 지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일본은 세법에 근거하다 보니까 세금 담당 부서에서 맡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정말 숫자로만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마을 만들기 담당 부서나 민관협치 부서, 도시재생 부서 등 지자체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맡으면 양상이 달라진다. 지자체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다."

[울산국제임팩트컨퍼런스 연속 인터뷰②] 도심 한복판에 대학 슬로건... 모두가 감탄한 그 말

덧붙이는 글 | 로컬 콘텐츠 제작 그룹 <로잇 스페이스(LOIT SPACE)>는 주로 조명되지 않은 지역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발굴합니다. 현재는 유튜브, 뉴스레터,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loitspace.com / 매거진 인스타 @bemike.magazine


태그:#고향사랑기부제, #고향세, #이연경, #울산국제임팩트컨퍼런스, #로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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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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