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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중심은 어디인가? 정세훈 시인은 <몸의 중심>이란 시에서 이렇게 답한다.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처 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아들이 사고로 사지마비 상태가 되고 지역에서 재활치료를 받지못해 신체가 변형되고 생명을 지키기 어려울 때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들 치료비를 애써 모았는데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들이 재활치료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고 있을 때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들이 코로나상황에서 병원으로 갈 수 없을 때 아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들에게 치료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 사회에서 아빠는 할 수 있는 건 막막한 기다림이었다.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아들을 안고 거리로 나와 제발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였다.
 
사회는 개인 문제라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사회는 병원에서 돈이 되지 않는다고 아들을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는 법이 없어서 아들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사회는 대통령 공약도 되고 법도 만들었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회는 병원 건축비를 다 줄 수 없다고, 운영비를 줄 수 없다고 한다. 사회는 계속 미루며 기다리라 한다.

아들이 병원치료를 중단할 수 없어 의무교육을 받지 못할 때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들이 병원의 단 하나의 교실에서 영유아, 초등 전학년과 함께 수업을 받을 때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들이 치료와 교육에서 단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을 때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들이 의무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사회에서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막막한 기다림이었다.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아들의 휠체어를 밀며 거리로 나와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였다.

사회는 아들이 병원에 있다고, 우리 지역이 아니라고 교육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는 아들의 치료문제는 알아서 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학교에 다니라고 했다. 사회는 병원에 교실이 없어서 교사를 파견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는 병원에 교실이 하나밖에 없으니 유초등을, 학년을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만 생기면 학교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병원이 거의 지어지자 학교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사회는 학교를 열 수는 없지만 이후에 고려할 테니 기다리라 한다.

아빠는 국가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짓는다고 약속했을 때 우리 아들도 국민으로 인정받았다고 기뻐했다. 드디어 대한민국 사회가 아픈 곳을 돌아봐준 것을 감사했다. 그런데 여전히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돈문제로 공공의 이름이 훼손되고, 정부는 법은 있지만 운영비를 줄 수 없다고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교 설립 불가 결정을 통보한다. 병원위탁을 맡은 곳은 어린이재활을 해보지 않는 치료사를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을 준비한다고 파견했다.

아빠는 오늘 다시 생각한다.

치료받을 기회와 제대로 된 의무교육조차 못 받는데 아픈 곳이 아닌가?
정말 아픈 곳이 중심은 맞는가?
아픈 곳은 치료가 아니라 하는 척 이벤트를 하는 곳인가?

그러다 아빠는 부정할 수 없는 생각에 도달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장애인 아들은 국민이 아니구나.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태그:#공공어린이재활병원, #국가는 의무이행자, #대전충남인권연대, #교육권 실현, #국민은 권리의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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