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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수도권 집중호우로 서울 서초구 양재전화국 사거리 인근 도로가 침수된 모습
 8월 8일, 수도권 집중호우로 서울 서초구 양재전화국 사거리 인근 도로가 침수된 모습
ⓒ 남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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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수도권 집중호우로 인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지 40여일이 지났다. 본격적인 도시 개발 이전부터 저지대 상습침수지였던 강남‧서초 지역은 이날 동시다발적인 침수로 3명의 시민이 사망, 약 280억 원의 재산 손실이 발생해 지난 2011년 이후 최대 규모의 피해를 기록했다. 

재난 직후 언론과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강남‧서초 수해의 원인을 분석하였고, 일각에선 그날 이 지역 강수량이 시간당 100mm 이상이었던 것을 근거로 '현재 30년 빈도 강우 시간당 85mm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된 배수용량을 50년 이상 빈도 시간당 110mm에도 견딜 수 있게끔 늘려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에 화답하듯 수 년 전 폐기되었던 강남대로 '대심도 빗물터널' 계획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최근 서울시는 향후 5년간 1400억 원을 들여 이를 완공하겠다며 두 차례 토론회까지 열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물 관리 시설을 구축하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행정의 의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 어떤 기능을 하는 시설을, 어떻게 정비하고 어느 정도의 규모로 짓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를 충분하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러려면 피해 상황을 장소와 시간대에 맞춰 재구성하고, 이를 분석해 재난의 구체적인 원인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침수 타임라인' 조사도 없이 이미 정해놓은 결론

그러나 최근 서울시의 발표에는 이런 필수적인 전제와 종합적인 검토가 모두 빠져있다. 기본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침수피해 현황조사도 미처 진행되지 않은 때에 오로지 대심도터널을 짓는 것만이 능사라는 결론만 내린 것이다. 하지만 과거 강남대로 하수암거 확충과 저류조 설치공사를 위한 설계보고서들에 따르면, 1987년부터 25년간 발생한 총 9차례 침수피해 중 대부분이 시간당 20~70mm의 비가 왔음에도 발생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기상청 AWS 장비를 통한 지역별 상세관측 자료를 보면 8월 8일 시간당 85mm 이상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은 강남역 인근 서초관측소 기준 밤 8시 51분이다. 그러나 이미 저녁 8시경 시간당 20~30mm의 비가 올 무렵부터 논현초등학교, 영동시장 일대뿐 아니라 강남‧서초 곳곳에 침수가 시작된 것이 다수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과연 '시간당 85mm 이상 내리는 비를 대비해 빗물터널을 지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서울시의 주장을 납득할 수 있는가?

잘못된 행정으로 기존 침수대책도 '지지부진', 그런데 대심도터널까지?

사실 강남대로 부근은 지난 20여 년간 매년 수십 억 원의 예산을 들여 고지대 하수 역류 문제를 해결하고 배수용량을 늘리기 위한 배수로 및 빗물저류조 확충, 펌프장 증설 공사를 계속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설계 변경이 관할 자치구 서초구청을 통해 그대로 승인됐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고 이를 토대로 수립된 2015년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대책'에 맞춰 삼성사옥 앞 기형 하수관 개선, 용허리공원 저류조 신설, 반포천 유역분리터널 건설이 계획됐는데 이 또한 예상보다 훨씬 늦게 진행되었고,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갔다.

그런데 최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SWMM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약 강남역 일대 배수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그날의 강수량에도 열리지 말았어야 할 맨홀이, 비정상적으로 역류했던 사실을 주목했다. 이상 수압으로 솟아오른 맨홀 속에 빠져 서초동 효성해링턴타워 앞을 지나던 시민 2명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배수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시와 관할 자치구 서초구청이 긴 시간 막대한 예산을 들였음에도,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2022년 8월 8일 서울시 일대 침수피해 지역 및 취약요소 현황
 2022년 8월 8일 서울시 일대 침수피해 지역 및 취약요소 현황
ⓒ 국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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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현자' 있던 곳은 정비예산 삭감, 토목사업 발표보다 면밀한 조사가 우선

또 하나 예를 들어보자. 8월 집중호우 피해가 있기 불과 3일 전, 서울시가 2차 추경에서 '서운로 일대 저지고지수로 정비사업' 예산 60억 원을 추가 감액해 총 사업비와 공사기간이 또 한 번 늘어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서울시는 삭감의 이유를 지하 지장물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설계로 공사가 늦어져 연내 사업완료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운로 일대는 피해가 컸던 지역으로 차량 지붕으로 대피한 시민의 모습이 찍힌 이른바 '서초동 현자' 사진과 버스가 물에 잠긴 진흥아파트 사거리의 모습으로 화제가 된 곳이다. 시의회는 반포천 유역분리터널 완공에도 불구, 이 사업 지연으로 통수 능력에 지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에 묻고 싶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성급하게 '대심도 빗물터널' 추진을 발표하기 전에 지난 2015년의 대책 이후 적용된 조치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지, 이번 집중호우 때는 어떤 효과를 발휘했는지, 그동안 집행된 사업의 절차와 결과는 적절했는지를 먼저 점검하고 시민들에게 발표했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강남‧서초 지역 침수 피해는 비단 강남대로 일대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또 다른 상습 침수지역인 대치역 사거리는 수년간 진통 끝에 대치1빗물펌프장이 완공되었음에도 왜 같은 피해가 반복된 것인가? 반포동‧잠원로와 삼성역 앞은 어떠한가? 강남대로 일대와 비슷한 지형으로 반지하 주택 침수 피해가 끊이지 않는 사당역 인근 방배동은 또 어떤가? 

이곳은 10년 전에 이미 대심도 빗물터널을 짓기로 결정했음에도, 이수~과천간 자동차터널과 함께 짓는다는 계획이 추가되어 설계용역도 연기된 바 있다. 강남대로 대심도터널은 5년 안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는 수천억대 토목사업 발표에 우선해 8월 집중호우로 인해 발생한 침수의 원인과 피해상황을 다시금 면밀하게 조사하고,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단과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하공간 침수방지를 위한 수방기준 실무매뉴얼(2017) 중 '예상침수높이' 기준
 지하공간 침수방지를 위한 수방기준 실무매뉴얼(2017) 중 "예상침수높이" 기준
ⓒ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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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침수높이는 적절히 추정하라'는 행안부 매뉴얼

재난의 반복을 막기 위해 짚어야 할 점은 그 외에도 많다. 지난 7일, 태풍 힌남노 피해로 침수방지시설이 없던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주민 8명이 빠져나오지 못한 참사에 온 국민이 가슴 아파했다. 불과 하루 전 국토연구원이 도시침수 예방대책 중 '지하공간 침수방지시설 설치 의무화'를 권고한 다음날 일어난 일이었다.

침수방지시설은 자연재해대책법 제17조에 의해 주요 시설물과 지하 건축물에 설치하도록 되어있고, 행정안전부 '지하공간 침수방지를 위한 수방기준'과 실무매뉴얼을 따르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기준과 매뉴얼이 모호하다. 예상침수높이를 정하는 기준부터 '설치장소의 과거 침수, 강수량 기록이나 주민 탐문을 통해 적절히 추정해야한다'고 되어있다. 전부 제각각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8월 수도권 집중호우 당시 시민 1명이 목숨을 잃었던 서초동 강남빌딩 지하주차장의 경우 차수판은 있었지만 예상침수높이를 넘어선 물살에 무용지물이 됐다.

이 매뉴얼엔 배수펌프와 변전소 설계를 제외하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규격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자연재해법 17조에 벌칙 조항이 없어 위반 시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침수방지시설 규정도 '방재지구'(국토부 지정), '자연재해위험지구'(행안부 지정) 내 연면적 1만㎡ 이상 건축물에만 적용 중인데 지자체가 침수 우려가 없다고 인정하면 의무도 없다.

'차수판 설치 강제'를 넘어 지자체 예산‧인력, 지역 통합침수관리 필요

최근 행안부가 뒤늦게라도 TF팀을 꾸려 강제 규정 도입, 설치기준 강화, 기존 건물 설치유도 등 개선에 나서며 법 개정을 검토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대다수 건축물이 민간 소유인 점을 감안하면 비용 문제를 들어 일부 건축주나 소유주들로부터의 반발도 예상되나, 시민 모두의 안전할 권리를 위해 정부가 예산 지원을 포함하여 의지를 가지고 추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행안부 대책에는 지자체 조례 제정을 촉진하겠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현재 '침수방지시설 지원조례'가 있는 지자체는 부산을 중심으로 광역시도 1곳, 시군구 15곳에 불과한데 그마저 예산 편성을 안했거나 자부담 편차가 큰 것이 문제로 드러났다. 대부분 지자체는 재난관리기금 조례나 공동주택 관리조례에 지원 근거가 언급되어 매년 수억 원의 기금이 책정되어 있으나 신청은 자율에 맡겨져 있다. 

전국 226개 시군구 중 침수위험지구가 지정되어 있는 곳은 141개(세종시 포함)로 적어도 이곳들은 조례를 만들고 예산확보와 설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서초구의 경우 2006년 서초동 일대가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됐음에도 조례가 없다.

그런데 침수방지시설 설치가 강제되고 지역마다 조례가 만들어져도 문제는 남아있다. 대중교통인 지하철역도 뚜렷한 운영방침이 없어 늑장대응으로 이수역과 구반포역이 잠겼고, 이웃한 동작구에선 구청이 설치한 도로 차수판이 관리소홀로 고장 나 엄청난 피해를 야기했다. 공공시설도 이럴진대 대부분이 민간 소유인 주택과 업무‧상업시설의 경우 유지보수 점검은 물론 재난 발생 시 언제, 누구에게 가동을 맡길 것인가.

그러므로 지자체에서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연락망을 구축, 재난안전대책본부와 관제센터 등 컨트롤타워를 활용해 비상시엔 각 시설과 건축물 관리주체들에게 경보를 울리고 긴급조치를 지원하며 상시적으론 합동 점검에 나서는 '지역 통합침수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8월 8일 침수 피해를 당한 서울 서초구의 상점들이 임시휴무임을 알리고 있다
 8월 8일 침수 피해를 당한 서울 서초구의 상점들이 임시휴무임을 알리고 있다
ⓒ 남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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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위기 시 민방위 사이렌 활용, 도심지 통행제한도 고려해야

지난 5일, 7명의 사상자를 낸 2020년 부산 초량지하차도 침수사고와 관련 부구청장 등 공무원들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실시간 모니터링, 교통통제 등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지자체의 대처에 대해 유죄가 내려진 최초의 판결이었다. 3년 전 대법원은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당시 늑장 경보에 대한 서초구청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경찰의 미흡한 교통통제도 위법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8월 집중호우 당시엔 어땠나. 서울시와 일부 자치구의 뒤늦은 재난문자에 대한 시민들의 성토가 빗발쳤다. 하천 인근, 다리, 터널, 자동차전용도로를 제외하곤 시가지가 물에 잠기던 순간에도 통행제한 조치를 볼 수 없었다. 침수 피해가 예상될 때 지자체가 즉각 민방위 재난경보를 발령하고, 기존 문자뿐 아니라 동주민센터에 설치된 경보단말 사이렌과 음성방송까지 내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민방위 경보규정에도 활용 근거가 있다. 실시간 강수 상황에 따라 하천과 주요 시설 외에도 통행량이 많은 도심지에서 시민들에게 미리 대피를 권유하고 통행을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오보나 혼란을 우려해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겠지만 예측 불허의 기후위기시대, 더 빠르고 민첩한 경보시스템과 현장대응력을 갖추는 것만이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토건만능 극복, 평등도시가 안전도시 지름길

감사원 보고서를 포함해 많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강남‧서초 지역의 경우, 1970년대 도시개발 과정에서 도로와 택지를 넓히기 위해 자연하천이던 반포천과 방배천(사당천)을 복개하면서 인공적으로 하류를 좁혀 방류수역이 줄어든 것이 잦은 물난리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해왔다. 

또 서울시 면적의 절반이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면적인데, 강남‧서초 시가지의 경우 최소 80% 이상으로 추정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러한 불투수면 증가가 도시지역 물 순환 체계를 왜곡해 도시홍수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지목한 바 있다.

자연 공간이 줄어들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포장이 늘어갈수록, 역설적으로 침수 위험이 높아진다. '강남 물난리' 해결을 위해선 개발 위주의 도시계획, 토건만능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재난 직후 발 빠르게 토목사업을 꺼내든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가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서울특별시 자치구별 불투수면 비율. 강남구와 서초구는 전체면적 중 차지하는 녹지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듯 보이지만, 시가지만 두고 볼 경우 비율은 80%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특별시 자치구별 불투수면 비율. 강남구와 서초구는 전체면적 중 차지하는 녹지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듯 보이지만, 시가지만 두고 볼 경우 비율은 80%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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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참사 이후, '불평등이 재난이다'라는 구호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서울시의 이른바 '반지하 퇴출' 방침이 논란이 된 가운데,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개포동 구룡마을은 수해 이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여전히 복구는 느리고 주민들은 최소한의 주거 여건 보장도 어렵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재난 예방, 대응, 피해복구와 지원에 이르기까지 시민안전을 위한 최소기준점은 항상 취약계층에 두어야 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번 '강남 물난리'를 겪은 후, 평등을 지향하는 도시야말로 '모두에게 안전한 도시'가 되는 지름길임을 우리 사회와 행정 당국자들이 공감한다면, 재난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대심도터널보다 급한 것들이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강남·서초지역 시민단체 '노동도시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강남, #물난리, #수해, #대심도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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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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