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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를 싫어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회 맛을 모른다. 회는 적어도 내겐 무(無) 맛이다. 어려서부터 그랬지만 내가 회에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사건은 따로 있다.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 여름, 친구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도 실컷 하고, 흑돼지도 구워 먹고. 별이 쏟아지는 제주에서 마지막 여름방학을 마음껏 즐겼다.

사건은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찾아간 바닷가 횟집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남은 여비를 탈탈 털어 1인 4만 원 하는 다금바리 세트(그때도 비싸다 생각했던)를 주문했다. 나는 회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다금바리는 다르다는 '회잘알' 친구의 장담에 떠밀려 '콜'을 외쳤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어.' 

갖가지 맛깔스러운 '스키다시'를 만나면서 다금바리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부풀었다. 그리고 드디어 회가 나왔다. 

얼마나 두꺼운지 옹기종기 모여 돌돌 말려있는 회는 마치 살아 꼿꼿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압도적인 두께에 다금바리를 꼭 먹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던 친구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저걸 한입에 넣어야 한다는 말인가. 씹어서 삼켜야 한다는 말인가.' 덜컥 겁이 났다. 나는 고민 끝에 슬며시 손을 들고 외쳤다. 

"사장님... 여기 가위 좀 주세요."

경악하는 주위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두툼한 다금바리 회를 싹둑싹둑 잘랐다. 그날 이후 다짐했다. 내가 회를 먹는 건 돈 버리는 짓이다. 한두 푼 하는 음식도 아니고, 그냥 생선가스나 먹어야지. 자연스럽게 나는 회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간 횟집에선 부수적인 반찬들로 배를 채우는 '스키다시' 파가 되었다.

40년 '회알못', 회 맛에 눈을 뜨다

주말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남편이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입을 뗀다.

"회사 근처에 허름한 횟집이 하나 있는데..."

내가 "횟집?"이라며 정색하자 부연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거기 '스키다시'도 잘 나오니 먹을 것도 많을 거야. 어쩌고저쩌고."

남편 말에 따르면 1여 년 전, 회사 임원분과 왔던 곳이라고 했다. 비즈니스로 특급 호텔에서도 많은 접대를 받았던 분이 선택한 곳. 임원 추천이라는 말에 확 신뢰가 갔다.

 "그래, 결혼하고 우리끼리 횟집은 간 적 없으니 콜!"
 
횟집이 자리한 대전 전민동 주택가 골목
 횟집이 자리한 대전 전민동 주택가 골목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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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라간 횟집은 대전의 후미진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딱 봐도 연식이 느껴지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유시민 작가가 맛집을 고르는 기준이라 했던 오래되었지만 깨끗한 느낌의 간판이었다. 안에 들어서자 사장님 내외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리를 맞았다.

"영업하시나요? 저희가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죠? "

브레이크 타임을 갓 넘긴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곧 1인 3만 원 하는 정식 코스를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들이 나왔다. 미역국 합격, 계란찜 합격, 소라 무침 합격! 부침개 합격! 내어오는 소박한 반찬들이 하나같이 입에 착착 감겼다. 멍게, 해삼 등의 해산물도 신선했다.

먼저 나온 음식을 감탄하며 먹고 있는데 회가 나왔다. 유일한 직원인 듯 보이는, 자신을 사장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청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광어 반 우럭 반의 모둠회라고.

영롱한 빛깔, 찰랑찰랑 탄력을 뽐내는 자태에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아니 이것은! 달달하면서도 쫀득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식감의 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회의 맛이었다.

'맛있다.' 

먹는 내내 맛있다는 말을 스무 번은 넘게 한 것 같다. 

"여보 여기 왜 이렇게 다 맛있어. 무엇보다 회가 너무 맛있어."
"원래 회 맛이 그래. 그래서 내가 회를 좋아하는 거잖아."

남편은 이제야 그걸 알았냐는 듯 시큰둥하면서도 나의 리액션에 흡족한 눈치다.

"그런데 손님이 왜 이렇게 없어?"

주말 저녁, 소문난 맛집이라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시각에 손님이라곤 우리 빼고 겨우 한 테이블이 더 있었다. 연락처만 안다면 백종원 아저씨라도 데려 오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면서 나는 평소보다 더 호들갑을 떨었다.

"제가 회를 원래 싫어하거든요. 근데 너무 맛있어요. 회가 왜 이렇게 달고 쫀득해요. 제주도에서 먹은 거보다 훨씬 맛있어요."

흡사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듯 들뜬 목소리에 주방에 있던 사모님이 귀가 쫑긋 한다면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활짝 웃으며 그런 이야기는 밖에서 크게 말해달라고 했다.

가게를 나서는데 사장님이 수족관 앞에서 횟감을 담고 있었다. 나는 더 큰 목소리로 안에서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제가 회를 원래 싫어하는데요. 회가 진짜 맛있어요." 사장님은 허허 웃으며 다른 데보다 큰 광어를 쓴다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 손님이 결혼하고 싶은 맛이라고 극찬한 15,000원 짜리 물회.
 한 손님이 결혼하고 싶은 맛이라고 극찬한 15,000원 짜리 물회.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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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영수증을 받아와 5개의 별점과 함께 장문의 리뷰를 남겼다. 은근 집요한 구석이 있는 나는 곧장 배달앱에도 접속했다. 남편 말에 따르면, 이 횟집도 코로나로 버티고 버티다가 작년부터 배달을 시작했다고 한다. 

'역시!' 배달앱에 들어가니 5점 만점이다. 소개란에 16년 동안 한자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 눈에 띄었다. 칭찬 일색이나 리뷰 이벤트를 으리으리하게 진행하는 다른 가게들에 비해 후기가 많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후기를 읽다 보니 이 식당이 더 좋아졌다. 몇 달 전에 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았는데 여기 해물뚝배기를 기억해 맛있게 먹었다는 손님, 임신 기간 동안 못 먹다가 출산해서 다시 먹었는데 역시 너무 맛있다는 손님, 매주 화요일 5시마다 주문하는데 항상 맛있다는 단골손님, 급기야 물회가 너무 맛있어서 사장님과 결혼하고 싶다는 수줍은 고백이 담긴 후기에 이르자 슬며시 입가에 웃음이 흘렀다. 결혼하고 싶은 맛이라니.

이렇게 아무 연관도 없는 가게를 응원하게 되긴 처음이다. 정직한 맛뿐만 아니라 소소한 친절, 무엇보다 16년 동안 우직하게 한 자리에서 변함없이 생업을 이어왔다는 사실이 감동이었다.

이 가게가 잘 되기를 바라며
 
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았는데 여기 해물뚝배기를 기억해 맛있게 먹었다는 손님.
 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았는데 여기 해물뚝배기를 기억해 맛있게 먹었다는 손님.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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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6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이 82.7%에 달한다고 한다.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매출은 2020년 기준 1억8000만원, 평균 영업이익률은 15%로 평균 영업이익이 2700만원에 불과했다(매일경제 9월 13일 기사 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서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도 자영업자들의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중간 소득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온라인을 통해 경쟁 범위가 확대되면서 유명 맛집이나 대형 매장은 검색, SNS 등을 통해 더욱 유명해지고, 배달 플랫폼 사용 확대로 경쟁 범위는 기존의 도보 도달 거리에서 이륜차 배달 거리로 확대되었다."

'적당히' 괜찮았던 기존의 '동네 1등' 맛집들은 사정이 더 어렵게 된 것이다. 딱 이 횟집과 같은 가게들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면서도 실감하지 못했다. 외식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일상이 되면서 밖에서 식사를 자주 하게 되자 새삼 그들이 겪었을, 여전히 겪고 있을 어려움이 보인다. 

"여보 이 가게 잘 되면 좋겠어." 
"우리라도 자주 오면 되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한참 동안 횟집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면 이 횟집의 회나 음식이 다른 집에 비해 특별하게 맛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허나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나는 40년 만에 회의 맛을 알게 되었고, 그건 전부 이 가게의 덕이다.

40년 '회알못'에게 회의 맛을 깨우쳐 주신 사장님께 감사하다. 무엇보다 그 힘든 시간을 버텨 살아남아 주셔서 고맙다. 아직 어린 딸아이에게 이 회 맛을 알려줄 수 있을 때까지 오래오래 장사하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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