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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란 책을 낸 후 못다한 이야기, 고인과의 추억, 소회 등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자말]
보고 계신가요, 허 선생님?

죽어서 유명해지는 생전의 무명 배우처럼, 선생님의 일생에서 스쳐 지난 적도 없던 이들조차 선생님을 애도하고 있네요. 조력사 현장에서 던진 선생님의 마지막 농담으로 인해 더욱.  (관련기사 :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서 내가 들은 기막힌 농담 http://omn.kr/20nq3)

지난해 8월 26일, 스위스 바젤에서 조력사 하신 선생님과 저의 이야기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가 한국 사회에 충격 어린, 그럼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마침 선생님의 1주기에 맞춰 책이 나와 그 의미가 더하네요.

한국인으로 세 번째 조력사 선택한 허 선생님 
 
스위스 안락사 현장의 담당자조차 그곳에서 생을 마친 사람들 중에 선생님처럼 의연한 분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스위스 안락사 현장의 담당자조차 그곳에서 생을 마친 사람들 중에 선생님처럼 의연한 분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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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시던 날의 그 긴장감, 그 절박함, 그 두려움, 그 안타까움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에 저는 안도합니다. 만약 제가 책을 내지 않았다면 평생 그 짐을 혼자 지고 가야했을 테니까요.

제가 선생님과 스위스에 동행한다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우려하며 말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지요. 평생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할텐데 그걸 감당할 수 있겠냐는 거였지요.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인도 아닌,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사람의 죽음길에 왜 신아연 작가가 동반해야 하냐며. 

선생님은 한국인으로서 세 번째 조력사를 택한 분이지만, 앞의 두 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으니 세상에 드러나기는 선생님이 처음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의 담당자조차 그곳에서 생을 마친 사람들 중에 선생님처럼 의연한 분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막상 거기까지 와서도 10명 중 6, 7명은 마음을 바꾸거나, 결행을 한다 해도 수 차례의 머뭇거림으로 두려움과 공포심을 감추지 못한다니, 선생님은 스위스에서도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실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을 '아무리 재미있어도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에 비유하신 선생님, 그러나 정작 선생님은 이제 많은 이들의 가슴에 한 권의 책으로 남았습니다. 잊힐까,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을까 안타까워 하신 선생님, 이제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2021년 8월 26일, 스위스에서 조력사한 세 번째 한국인과 동행한 저자의 체험기록
 2021년 8월 26일, 스위스에서 조력사한 세 번째 한국인과 동행한 저자의 체험기록
ⓒ Kim 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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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한 권의 책이 되었으니까요. 육신은 수목장공원에 한 줌 재로 묻혀 있지만, 책이 된 영혼은 어디든지 자유로이 가실 수 있으니까요. 또한 선생님이란 책은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이 아닌 '영원히 읽고 싶은 책'이 될 테니까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란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조력사를 앞두고 있는 저 또한, 내일 죽는다고 해도 오늘 평소와 다른 무엇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떠올릴 수가 없네요. 그저 하던 대로의 일상 그 이상은 없더군요.

어느 책에서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시한부의 젊은 주부 이야기를 읽었는데,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을 묻자,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소망을 이루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주부로 살면서 밥하고 살림하는 일이 기쁘고 즐겁기만 했을 리는 없을텐데, 그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쩌면 지겹기조차한 그 일상이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된다는 것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 또한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서 주변을 청소하고, 일과를 마친 저녁에는 각종 꽃과 나무, 채소를 보살피며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건강하다면, 살 수만 있다면, 오래오래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기 전, 선생님이 제게 보내신 마지막 이메일을 다시 열어보며, 제게는 글 쓰는 일상, 그 이상의 소중한 것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선생님 또한 지금 계신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고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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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저서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내 안에 개있다』 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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