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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돌아가는 사정은 임금이나 사대부만이 알아야 하는 게 아니지요. 백성들도 알아야 합니다. 이 나라는 임금이나 사대부만의 나라가 아니라 백성들의 나라이기도 하니까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2화를 보면 '기별지(조보)'를 보는 것을 할아버지께 들키게 되어 고애신(김태리 역)이 "달에 한 번이라도 읽게 해달라"고 맞서는 장면이 나온다. 
 
'기별지'로 할아버지와 맞서는 고애신(김태리 역)
▲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기별지"로 할아버지와 맞서는 고애신(김태리 역)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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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별지를 통해서라도 나라일을 알고 싶어하는 당찬 손녀를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부모처럼 만들고 싶지 않은 할아버지는 '지애비 그늘에서 꽃처럼 살라'고 명하지만 손녀는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겠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가 걱정되어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면 살 길이라도 가르쳐 줘야 한다"며 장포수에게 총술을 가르쳐 주라고 한다. 결국 고애신은 나중에 의병의 길로 들어선다는 이야기이다.

'기별지(奇別紙)'로도 불려진 '조보(朝報)'는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중종 이후부터 계속 발행되어 왔으며, 1895년 '관보(官報)'로 바뀌었다. '조보'는 임금의 통제 아래 임금의 명이나 승정원에서 선택한 사건들에 대한 소식을 조보소에서 발표하였다. 발표된 소식은 각 관청이나 기관에서 파견된 기별서리(奇別書吏)들이 필사하여 각자의 기관으로 발송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조보'인 것이다.

'조보'는 민간에서 발행한 근대적인 신문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조선 조정의 관보로서, 정치제도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유교적인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통치의 보조적 수단으로 그 기능을 담당하였다. 

'조보'는 원래 고급관리들에게만 배포하도록 했지만 사대부들이나 양반들 사이에서는 돈을 주고 입수해서 읽었다고 하니, 그들 사이에서는 오늘날의 신문 역할을 하면서 어느 정도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안오일 소설 '조보'
▲ 소설 "조보, 백성을 깨우다" 안오일 소설 "조보"
ⓒ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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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조보, 백성을 깨우다>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기초 위에 작가의 상상력을 곁들인 작품이다. '조보'가 비록 조정의 소식을 알리고 관리들과 백성들을 계도하려는 의도에서 발행되었다 할지라도 글을 알고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과 의의를 '기별서리'를 맡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는 당시의 세도가들이 압력을 행사하여 '조보'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왜곡하는 일들이 기별서리의 딸에 의해 진상이 폭로되고 처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로 형상화되고 있다.   

<소설사회학을 위하여>의 저자인 골드만(Lucien Goldmann)은 "소설은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양식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이며 "사상가인 작가는 그 집단의식을 작품 속에 표현하는 개인"으로 본다. 소설 '조보'의 작가 역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신념을 작품을 통해 구현한다. 

권력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알리려는 정신은 당시 '조보'를 통해 부정과 비리를 덮으려는 불의한 세력에 맞서 싸워가는 백성들의 집단의식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저널리즘의 황색화를 넘어 가짜뉴스가 넘쳐난다.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가짜뉴스는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라고 정의하였다. 황색뉴스나 가짜뉴스가 생산되는 이유는 결국 이윤 추구이다. 이윤 추구에 눈이 멀면 진실과 정의는 양심의 한 구석에 쳐박힐 경우가 많을 것이다.

작가가 꿈꾸는 세상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이다. 작가는 '진실한 세상, 열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며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라고 말한다. 

소설 <조보, 백성을 깨우다>는 진실 보도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가슴 벅찬 이야기이다. 작가 안오일은 전작 <녹두밭의 은하수>에서도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의병처럼 제 몫을 해낸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선보인 적이 있다. 역사적 상상력으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삶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는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조보, 백성을 깨우다

안오일 (지은이), 다른(2022)


태그:#조보, #안오일, #기별지, #신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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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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