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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한 일을 남에게 잘 생색내지 못한다. '나 잘했지?'라고 부추겨 인정받으려는 것이 억지스럽고, 이미 지난 일이라면 뒤늦게 드러내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자랑에 대한 남들의 시선도 당연히 신경 쓰인다. 간혹,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는 누군가를 볼 때면 어떻게 저리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지, 계면쩍지는 않은지 궁금하고 신기하다. 

자랑의 말이 길어져 듣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곧잘 있지만,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표현하지 못해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는 속 시원하겠다 싶다. 사실, 가까운 사람들이 나의 공헌에 무심하거나 하찮게 여기면 금세 서운해지곤 한다. 생색을 잘 안 낸다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가족에게 서운할 때
 
   세탁실의 온 사방을 비닐과 신문지로 꼼꼼히 휘둘렀다
  세탁실의 온 사방을 비닐과 신문지로 꼼꼼히 휘둘렀다
ⓒ 이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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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자랑질을 대놓고 하는 유일한 사람들이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다. 가족들에게만큼은 밖에서는 감히 입에 올리지 않는 온갖 자랑들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저녁으로 우연히 맛있게 끓여진 된장찌개 솜씨자랑부터 동네의 소식들을 발 빠르게 전해 들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 살아오면서 겪은 좌충우돌의 '라떼' 에피소드들 등등 사소하고 유치한 자랑거리는 늘 차고 넘친다. 

내 자랑질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이야, "아이고, 그러셨어요?"라든가, "엄마, 또 시작이네..." 등등 장난으로 대응하기 일쑤지만 나로서는 하고 싶은 자랑을 편하게 실컷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하다. 사안에 따라 가끔 장난이 아닌 순수한 찬사를 받을 때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 참 뿌듯하다.

이렇게 속내를 다 드러내어도 허물없다 믿는 가족들이지만, 가끔은 그들에게도 서운할 때가 있다. 내가 가족을 위해 특별히 공들인 일을 그들이 가볍게 여길 때 그렇다. 노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서운함을 넘어 비애감에 휩싸이는 것이다. 

얼마 전, 올여름 내내 신경 쓰였던 욕실 천장의 누수를 잡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 때도 그랬다. 작업 며칠 전, 기사님들은 누수의 원인을 위층에서 내려와 욕실 천장으로 들어가는 배관의 연결부위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배관의 연결부위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욕실 바깥쪽 세탁실의 벽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하셨다. 

공사를 앞두고 심란했다. 시멘트 벽을 뚫으며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과 분진들을 어떻게 감당하나 싶고, 막상 벽을 뚫었는데, 만에 하나 누수의 원인이 배관 이음부 문제가 아니라면? 여러 가지 잡다한 근심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복잡한 심정을 남편과 나누었지만, 늘 그렇듯 별로 실질적 도움은 되지 않았다. 홀로 고심 끝에 공사 당일 아침 부랴 부랴 할 수 있는 대로 대책을 세웠다.

김장봉투와 테이프로 세탁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비닐장막을 쳤다. 두어 시간 동안 세탁실의 온 사방을 비닐과 신문지로 꼼꼼히 휘둘렀다. 날이 더워 의자를 밟고 올라가 천장에 팔 뻗는 동작 두어 번 만에 온 몸이 땀이었다. 작업이 시작되어 누수가 잡히고, 한나절만에 요란한 공사가 순조롭게 끝나 다행이었다. 다만, 아무리 비닐장막을 쳤어도 날린 시멘트 분진이 집안 곳곳에 내려앉아 그걸 청소하는 게 또 큰 일이었다. 

세탁실은 물론 부엌의 온갖 집기들과 한참 떨어진 거실의 소파에, 책상에, 구석까지 분진이 곱게 내려앉았다. 걸레를 빨고 또 빨아 닦아내고, 청소용 부직포로 서너 차례 훑어냈다. 몇 시간을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니 안 쓰던 근육들이 놀라고, 갑자기 활동량이 많아져 끼니때도 아닌데 배가 너무 고파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족 안에서 인정 욕구가 채워진다면

저녁나절 모든 게 원상 복귀되어 말끔해진 후에야 가족들이 귀가해 공사가 끝났다고 좋아했다. 녹초가 된 나는 가족들이 누리는 그 말끔함을 위해 나의 노동이 얼마나 집중 투여되었는지를 작심하고 늘어놓았다. 가족들은 애썼다며 귀 기울이는 듯하더니 금세 딴청을 피웠다. 하루 종일 동동거린 수고를 반도 안 전했는데, 당연히 내 할 일을 한 것으로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태도가 야속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는데 말이다. 남편이 직장에서 고생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일, 아이들이 경쟁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는 일, 모두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치부할 게 아니라 고맙고 감사한 일이듯 말이다. 내가 가족을 위하는 만큼 나도 존중받고 싶고, 역할로만 기능한다고 느끼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라도 같을 텐데...

그러고 보면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인정 욕구의 밑바탕에는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이고 싶은 마음, 세상에 자신의 존재가 가치 있게 받아들여짐을 확인하고픈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 간절한 자기 확인의 발로가 인정 욕구라고 수긍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욕구에 반응해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의 충만한 사랑으로 화답받고 싶어 하는 외로운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가족 안에서 존재로서 인정받고 존중받는 인정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된다면, 훨씬 안정된 심리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밖에 나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 좀 알아봐 달라고 허세 부리고 싶은 심리적 궁핍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핍에는 집착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만족스럽게 충족된 욕구는 미련을 훨씬 덜 남기는 법이니까.  

가족들끼리 서로 더 자주 고맙다, 덕분이다라고 진심으로 알아주면 좋겠다. 그런 인정의 마음이 우러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이 우선인 건 당연한 일이다. 

태그:#인정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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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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