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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수가 많지 않은 지방 도시에서 전위적 미술을 하는 행위미술작가들이 모였다. 도시 자체가 그리 시끌벅적하지 않은데 외곽에 위치해 더욱 조용한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 뜨거운 라이브 예술잔치가 펼쳐졌다. "Good Morning, Artist?"라는 주제의 '2022 Internet 12h Live Performance' 행위 페스티벌은 조용한 소도시에 터진 예술 폭탄이었다.
 
 <오직 평화>
▲ 심홍재  <오직 평화>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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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재 '오직 평화'

심홍재는 원형 형태로 12개의 종이를 늘어놓고 12간지를 쓴다. 12 지신을 다 쓴 후, 그 종이를 말아서 간지와 간지를 연결한다. 12 간지 안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작가의 말대로 "나와 너 우리"가 되므로 그들을 서로 연결하게 하는 것이다. 어깨동무를 시키는 것이다. 

사람들끼리도 끈끈이 연결되어 있음/되어야 함을 재차 확인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서로서로 연결된 우리가 서로 화합하며 어울렁더울렁 살아가자고 외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12간지의 중심에 "오직 평화"라는 글귀를 쓴다. 모두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기원하며.
 
<비터스윗>
▲ 박주영 <비터스윗>
ⓒ 이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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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비터스윗'

박주영은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관객이 말하는 이름/별칭을 자기 몸에 적게 하고 사탕 한 알을 주어, 놓고 싶은데 놓게 한다. 박주영에게 사탕은 아버지 때문에 다시금 바라보게 된 사물이다. 새롭게 의미 부여된, 발견된 사물은 나름의 아우라를 발산하며 실연의 중요한 매개물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소통과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생존하는 단편 극을 보는 듯하다. 또한, 아버지와의 연유로 선택된 사탕이 발단되어 펼쳐진 잔잔한 성인 동화의 한 꼭지 같은 작품이었다. 예쁜 색들이 자유로이 노니는 작가의 회화작품들을 모아 놓은 그림 동화책 말이다.
 
<고로 존재한다>
▲ 왕치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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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치 '고로 존재한다'

왕치는 "나는 00을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써온 종이를 바닥에 깔아놓고 한 장씩 확성기로 읽어내려가며 발로 뒤로 제키면 관객이 그것을 작가의 몸에 덕지덕지 붙이는 행위였다.

"고로 존재한다"가 적힌 수많은 종이가 왕치의 몸에 다닥다닥 붙여진 모습은 수많은 행위와 생각으로 존재를 인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가시화시킨 것이다. 또한 이 외형은 움직이는 조각작품이 되었다. 미적 쾌감을 주었다. 시각적 즐거움을 주었다. 이 작업은 시종 경쾌하게 진행되었으며 예술은 즐거워야 한다는 놀이론의 실천장이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작업은 지적 놀음의 쾌감과 시각적 쾌감, 놀이 같은 즐거움을 주는, 행위미술만의 매력이 풍성한 작품이었다. 행위미술의 교과서에 실을만한 작품이다.
 
        <우리가 망한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키스해요>
▲ 언덕  <우리가 망한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키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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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우리가 망한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키스해요'

커다란 붉은 덩어리가 휙 들어왔다. 온몸이 빨갛다. 우산도 빨갛다. 빨간색 전신 타이츠를 입은 모습은 '곡선이 강조된 붉은색 색면추상' 작품으로 다가왔다. 이 움직이는 색면 덩어리들은 매우 자극적이었다. 이 이미지가 관객의 조용한 일상을 흔들어 깨운다. 시상하부를 거쳐 온몸의 세포들을 자극한다. 잔잔한 일상에 퍼지는 파문이다. 온몸을 부드럽게 흔드는 이 '신선한 환기'는 예술이 주는 쾌감인 것이다.
 
          <GAIA 가이아>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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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GAIA 가이아'

거대한 빙산으로 상징되는 부풀려진 큰 천이 행위 공간을 장악하고 있고, 그 안에서 여성의 울음소리가 퍼져 나온다. 통곡이다. 작가는 이 여성이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를 상징한다고 했다.

빙산 안에서 한참의 울음 후, 절규, 비명을 지르며 관객석 쪽 탁자와 물건들을 넘어뜨린다. 지구를 망가뜨리는 인간들에 대한 여신의 분노 표출이었는가? 빙하는 출렁이고, 녹은 듯 줄어들었다. 여신이 관객석으로 물병을 들고 와 물을 확 뿌렸다. 분노한 여신이 미혹한 인간들에게 내리는 홍수(재앙)인 것인가. 다시 여신은 바이올린을 한동안 연주한 후 빙산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내가 무겁다>
▲ 성능경  <나는 내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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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경 '나는 내가 무겁다'

성능경만의 익살과 비꼼이 있는 제례문(부채에 써 온)을 읽고 그 부채를 태우는 첫 단락, 몸 운동, 체조하는 둘째 단락, 훌라후프를 하며 탁구공에 써놓은 시나 경구를 크게 읽고서 탁구공을 관객을 향해 날리는 세 번째 단락, 솜방망이로 관객들을 내리치며 "행복 받아라" "건강 받아라", "행운 받아라"를 외치는 넷째 단락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복 받아라" 단락은 관객에게 방망이를 내리치는 폭력(?)을 행사하면서 덕담을 외치는, 역설과 익살의 대가다운 행위 부분이다. 첫 단락에서, 부채에 불을 붙여 부채질하는 역설/전복적 행위는 그만의 시그니처이며, 성능경의 위대함을 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행위는 몸짓이 아니라 발언이다>
▲ 유지환  <행위는 몸짓이 아니라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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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환 '행위는 몸짓이 아니라 발언이다'

쇠로 된 원통 10여 개를 일직선으로 쌓아 올리는 행위를 하였다.. 탑은 하나하나 조마조마하게 쌓아졌다. 작가는 철원통 한단 한단이 평화를 상징한다고 했다. 관객은 한 단씩 올라갈 때마다 쓰러지지 말기를 바라며 작가와 한 호흡으로 움직였다.

평화란 그렇게 모두 마음 모아 함께 노력해야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일직선 탑은 언제든지 쓰러져 우리를 덮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긴장감을 지속해서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평화가 깨질까 봐 함께 조마조마했다. 
 
          <Say Goodbye to Corona>
▲ 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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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연 'Say Goodbye to Corona'

서수연은 경륜이 많지 않으면서도 조용하고, 담백하게 작품을 펼쳤다. 하얀 사기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동치미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여백 많은 담백한 수채화 같았다.
 
         <인지(Recognition)>
▲ 조은성  <인지(Recog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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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성 '인지(Recognition)'

조은성 작품은 '신체적 공동 현존'의 세 조건이 다 이뤄졌다. 조은성은 관객에게 피부(살이 드러난)를 연결하여 캔버스를 만들어보라고 말했고 관객들이 서로 의논하여 다리가 여러 개 겹쳐진 캔버스를 만들게 되었다. 관객이 행위자로 전이되었다.

또 다른 관객(이들도 2행위자에서 그림을 그리는 역할의 1행위자가 됨)이 만들어진 캔버스에 그리는 즐거움을 만끽했고, 캔버스가 된 관객은 붓질의 그 아사모사하고 스사사뭇한 붓질의 감각을 느끼며 존재의 자각 속에 있었을 것이다. 행위자와 관객이 모두 행위자가 되어 함께 행위를 하며, 서로 에너지를 교환하고, 서로 감응했고 함께 출렁거렸다. 
 
          <애도를 표합니다>
▲ 문재선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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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선 '애도를 표합니다'

더듬이를 세우고 세상의 미세한 파장을 찾아 나선다. 세상을 향한 탐구/구도의 몸짓인가, 세상과의 접속을 꿈꾸는가. 손을 모아 비비는 동작으로 소리를 지속해서 만들어낸다. 곤충이 들을 수 있는 소리와 어린아이, 노인이 들을 수 있는 음의 폭은 각기 다르다.

작가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음파로 세상에 뜻 모를 타전을 계속한다. 언어가 아닌 소리로 계속 허공으로 쏘아 올린다. 몸 일부분을 전동 톱으로 베어낸다. 베어지는 아픔이 들린다. 신경을 곧추세우고 세상과 접촉, 또는 치열하게 대치하는 듯하다.
 
        <메신저-Sond of Korea>
▲ 성백  <메신저-Sond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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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 '메신저-Sound of Korea'

배 부분이 파인 청동 조각상, 그 무게감과 장중함이 뿜는 비장한 분위기가 행위 공간을 꽉 채웠다.  이 신체상 밑에서부터 저 벽면까지 천이 연결돼 있고, 그 벽면에 돌팔매질하듯 힘찬 던지기 동작으로 붉은 점들을 찍는다. 성백은 이것이 80년대 민주화운동 시 독재와 억압적 정권에 저항하며 던진 화염병 같은 것이라 했다. 붉은 점을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팔매질은 저항과 분노의 몸짓이며, 희생을 애도하는 몸짓이며, 핍박받고 있는 민중들의 저항을 응원하는 몸짓이다.

그 인체 밑에서부터 두 개의 검은 선이 시작되어 붉은 점들이 있는 벽면에 가서는 나무의 기둥이 되고 가지가 된다. 그리하여 붉은 꽃이 핀 매화나무가 된다. 붉은 점들이 매화 꽃잎으로 바뀌는 극적 변환은 고통스러운 상흔(붉은 점)이 자유와 평화, 행복의 표상(꽃잎)으로 변환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풍요한 사유들을 안겨주는 예술작품을 또 어디가서 볼 수 있으랴? 28일까지 밀양아리랑아트센터(055-359-4527) 전시실을 찾아가면 동영상으로 이 행위미술의 감동을 맛볼 수 있다.

태그:#밀양아리랑아트센터, #행위예술, #행위미술, #이혁발, #성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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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행위미술, 설치미술, 사진작업을 하며 안동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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