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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밤. 괴한 한 명이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키려 한다. 주위에는 도움을 청할 어느 누구도 없다.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에 검은 망토와 가면을 쓴 사람이 뛰어든다. 희생자가 발생하려는 찰나, 괴한은 순식간에 제압당한다. 가면을 쓴 사나이는 그를 묶어두고, 피해자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 우리는 그 가면 쓴 사나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공교롭게도 답은 두 개다. 첫 번째는 히어로. 두 번째는 범죄자.

그가 히어로인 이유는 무고한 이를 희생시키려는 악한을 물리친 용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범죄자인 이유는 그가 공권력의 힘을 빌지 않고 자의적으로 범죄자를 처벌한 자경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화나 영화 속 주인공으로 칭송하던 히어로들은 현행법상 엄밀한 의미에서는 모두 범죄자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선호하는 DC의 히어로를 꼽으라면 단연 배트맨이다. 여러 버전의 그가 존재하지만, 영화에서는 팀 버튼(Tim Burton)의 <배트맨>이요, 코믹스에서는 프랭크 밀러(Frank Miller)와 클라우스 잰슨(Klaus Janson), 그리고 린 발리(Lynn Varley)의 걸작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Batman: The Dark Knight Returns)> 속에 등장하는 노년의 배트맨이다.

배트맨은 DC 코믹스의 히어로들 중 드물게,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지 못한 영웅이다(브루스 웨인의 막강한 재력 역시 초인적인 능력에 속한다고? 그에 대해서는 나 역시 딱히 반박할 길이 없다).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소위 이 금수저 히어로 배트맨을 독자들이 불편함 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가 겪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투철한 정의감 때문일 것이다.

그가 유년기에 겪은 트라우마는 두 가지이다. 어린 시절 우물에 빠졌을 때 어둠 속에서 만난 박쥐에 대한 극심한 공포. 또 하나는 부모님과 극장에서 <쾌걸 조로(The Mark of Zorro)>라는 영화를 보고 귀가하던 중, 강도가 부모님을 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 그로 인해 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고담시의 범죄에 대한 저항심과 죄책감.

이 두 개의 사건이 배트맨이라는 히어로의 독자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게 한다. 그는 박쥐에 대한 자신의 공포를 타인에게 심리적으로 투사한다. 즉 '내가 박쥐 가면을 쓴다면 내가 그랬듯이 사람들도 나를 무서워 할 것이다'라고. 또한 이 박쥐 코스튬에는 분명 그가 부모님과 마지막에 관람했던 쾌걸 조로의 가면과 망토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게다가 <쾌걸 조로>의 주인공인 돈 디에고 베라 자체가 이미 브루스 웨인과 판박이 아니던가. 부유하고 유약해 보이는 귀공자 돈 디에고 베라는 강한 자들의 억압에 신음하는 약자들을 위해 이중 생활을 자처한 최초의 코스튬 히어로였다. 박쥐 코스튬에 서린 이러한 함의가 배트맨이라는 영웅의 탄생을 타당성 있게 만든다.

그러나 처음 만화에 등장했던 배트맨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밥 케인(Bob Kane)이 1939년 배트-맨이라는 명칭으로 이 박쥐 영웅을 처음 선보였을 때, 그는 배트-맨에게 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 영감을 주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날틀 형상을 날개로 달아 주었다. 그의 첫 코스튬은 이처럼 단단하고 부자연스러웠으나, 그의 박쥐 망토가 시대를 거쳐 조금씩 유연해졌듯이 배트맨의 캐릭터 또한 점차 세련화되어 간다.

DC(디텍티브 코믹스)라는 그의 소속사 이름에 걸맞게 초기의 배트맨은 탐정물의 성격이 강했다. 그는 슈트를 입고 돋보기를 든 셜록 홈즈와도 같았다. 배트맨과 로빈의 조합 역시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을 연상시킨다. 만화의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악의 응징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도로 흘러갔으며, 배트맨이 유년기에 겪은 심리적 외상 또한 그저 그가 겪은 하나의 경험으로 그려졌다.

배트맨을 다크 히어로로서 재탄생시킨 일등 공신은 역시 1986년 출간된 만화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였다. 이 작품은 같은 해 선보인 앨런 무어(Alan Moore)와 데이브 기본즈(Dave Gibbons)의 <왓치맨(Watchmen)>과 더불어 슈퍼 히어로 만화계에 일약 파문을 일으킨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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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고담의 범죄와 싸우던 배트맨이 2대 로빈 제이슨의 죽음 이후 돌연 은퇴한 뒤, 10여년 만에 50대의 나이로 복귀하는 내용을 다룬다. 초인적 능력을 갖지 못한 노년의 히어로는 아캄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조커와 새로운 숙적 하비 덴트, 뿐만 아니라 뮤턴트라 불리는 고담의 신진 범죄 세력과 대적해야 한다.

프랭크 밀러는 기존의 배트맨 스토리 라인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그의 정신적 외상과 범죄 척결에 대한 강한 집착을 부각시킨다. 부모의 살해 장면을 목격한 이 소년은 범죄자를 응징하는 과정에서 절대 살인을 하지 않으며, 총기 사용을 배제한다. 부단히 그를 도발하는 조커를 죽이지 않는 것도, 자신의 신념을 넘어서는 즉시 자신도 빌런과 같아질 수 있으리란 두려움, 즉 그만의 확고한 윤리관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온갖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공권력이 제 기능을 상실한 고담에서 진정한 정의는 부재한다. 배트맨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고든 경찰청장 역시 은퇴를 앞두고 있다, 신임 청장으로 임명된 엘렌 인들은 자경단인 배트맨을 공권력에 대항하는 범죄자로 규정하고 그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검찰과 언론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배트맨을 물어뜯는다. 그는 정부에 귀속되지 않은 채 그들의 비리와 부패를 폭로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것이다.

반면 한때 동료였던 슈퍼맨은 미국 정부에 귀속되어 비밀 병기로 일하고 있다. 그는 미국 정부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하며 정부와 언론의 비호를 받는다. 히어로로서의 임무가 무엇이든 간에, 정부와 공권력, 언론과 척을 지면 범법자가 될 뿐임을 슈퍼맨은 알고 있다.

물론 배트맨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부와 권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꺼이 자경단원을 자처하며 슈퍼맨과 대립한다. 미국 정부가 지시하는 곳에 투입되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킨다면 그는 더 이상 히어로가 아니다.

배트맨이 직접 고담시의 범죄자들을 소탕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정의를 실현시키지 못하는 법의 한계와 부조리, 고담의 악한들에게 휘둘리는 공권력의 무력함, 또한 이를 통제해야 할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따라서 공권력의 부패를 무마하려는 정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는 이상, 그는 더 이상 히어로가 아니다. 배트맨이 끝까지 자경단으로 남고자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고담시의 부패한 권력층과는 달리 확고부동한 정의관을 고수한다. 그렇지만 정의를 위해 자신의 비밀 신분을 유지해야 하기에 결코 스스로를 옹호할 수 없다. 다크 히어로로서의 그의 고독과 우수는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그간 대중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왔던 히어로가 법적 차원에서는 범죄자라는 점, 그간 의기투합해 악을 응징했던 슈퍼맨과 배트맨의 정의가 대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현실 사회 속에서 히어로들이 활동한다는 전제 하에 사회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를 제시하며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해 숙고하게 한다. 최초로 여자 로빈(캐리 켈리)이 등장하는 역사적 작품이기도 하다.

배트맨이 본격적으로 액션 히어로의 면모를 드러낸 것은 뒤이어 등장한 팀 버튼의 영화 덕분이다. 코믹스의 선전 이후 이 영화의 등장으로 배트맨은 다시 태어났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 역시 만화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최근 개봉한 <더 배트맨(The Batman)>에서는 드라큘라 백작의 망토에서 배트맨 슈트의 영감을 얻었다는 밥 케인의 고백을 증명하듯, <트와일라잇(Twilight)>에서 흡혈귀 역할을 맡았던 배우 로버트 패틴슨(Robert Pattinson)이 배트맨 슈트를 입었다.

그러나 과연 그간에 영화로 각색된 배트맨은, 배트맨의 역사를 새로이 썼던 이 원작 만화에 버금가는 작품들인가? 관객들의 구미를 당기기 위해 불필요한 러브 라인과 유명 배우의 액션 연기에 의존한 나머지 원작의 메시지를 희석시키지는 않았나?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 가장 '진화된 배트맨'이란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최근의 영화들이 아닌, 오히려 1980년대에 선보였던 만화 속에 있다. 그것은 고담시가 단지 가상의 공간이 아니며 세계 곳곳에 만연한 부패 도시들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는 점을, 또한 배트맨이 히어로이자 범법자이듯, 그를 히어로로 만들거나 범법자로 만드는 것도 우리이며 고담을 만드는 것 또한 우리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재력과 권력을 가졌지만 올바른 정의를 지향하는 히어로를 사이코패스로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우리다. 누가 진정으로 우리를 구하는 자이며, 누가 우리를 해하는 자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다면, 그토록 모든 것이 부패한 고담에서 배트맨이 단지 범법자일 뿐이라면, 고담은 배트맨을 가질 자격이 없다.

뿐만 아니라 아직 소련과의 냉전 시대에 있었음에도 이 시기의 만화들은 오히려 단순한 선악 대립 구도 너머의 문제를 제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냉전이 와해되고, 소련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현 상황에서 이 너머의 문제를 제기하는 히어로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신 냉전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예측한다. 따라서, 히어로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진화하는 생명체이다. 노년의 브루스 웨인처럼, 정의는 결코 늙지 않는다. 정의를 소환하라.

태그:#배트맨, #DC, #정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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