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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하나의 멜로디가 있다.

"슈퍼맨- 용감한 힘의 왕자/배트맨 로빈! 정의의 용사/원더우먼- 하늘은 나른다/아쿠아맨- 수중의 왕자/랄라라 랄라라 랄라라라 랄라라 랄라라라- 정의를 모르는 나쁜 무리들! 싸-워- 무찌른다."

그 시절 미국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의 주제가를 따라 부르고 있노라면 왠지 내가 그들의 대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흥분이 밀려왔다. 원더우먼의 총알막이 팔찌와 허리띠를 마분지와 색종이로 공들여 제작하고 착용할 때면 더욱 그랬다. 집 앞의 후미진 골목에서 원더우먼으로 변신하기를 꿈꾸며 우리는 얼마나 돌고 또 돌았던가!

히어로물의 진화가 시작됐다

영화 <슈퍼맨> 시리즈의 주인공은 그 자체가 만화 속 슈퍼맨의 현현이었다. "Don't make me angry(날 화나게 하지 마시오)"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헐크의 TV시리즈물은 또 어떻고. 브루스 배너가 초록 몸의 거대한 괴물로 변신할 때 옷이 찢어지던, 그러나 결코 바지만은 찢어지지 않았던 그 장면은 현대의 정교한 CG로도 결코 재현할 수 없을 원초적 리얼리티를 뿜어냈었다.

위의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는 바야흐로 DC의 시대였다. 1934년 맬컴 휠러니컬슨(Malcolm Wheeler-Nicholson)이 설립한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 DC)는 <슈퍼맨>(1938)과 <배트맨>(1939), <원더우먼>(1941)과 <아쿠아맨>(1941)과 같은 영웅들을 연달아 선보이며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라디오와 신문, 잡지 등이 주된 매체였던 1930년대에 DC는 향후 매체의 발달로 만화 시장이 확장되리라 예견하고 일찌감치 TV 시리즈물과 애니메이션 쪽으로 눈을 돌렸다. 마침내 TV가 보급되고 영화 산업이 성장하는 와중에 DC의 히어로들은 더욱 승승장구한다.

영화 <슈퍼맨> 시리즈와 <원더우먼> TV 시리즈, 뒤이은 팀 버튼(Tim Burton)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가 흥행을 거듭했고 이로 인해 구축된 DC의 아성은 좀체로 깨질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1986년 출간된 두 편의 만화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Batman: The Dark Knight Returns)>와 <왓치맨(Watchmen)>은 이른바 DC의 위상뿐만 아니라 만화 매체의 위상을 격상시킨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로 주목받는다. 문학 작품 못지않은 문제의식과 철학을 담고 있는 이 히어로 만화들은 그간 히어로물들이 추구했던 선악 이원론을 넘어서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정부, 언론, 시민, 히어로들 간의 관계)를 제기하며 만화계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켰다.

여기서 제기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슈퍼 히어로란 존재는 어디까지나 자경단이며 그들은 공권력과 대립되는 존재들이기에 범죄자들이라는 것. 다음으로 히어로들이 항상 같은 목적으로 의기투합하여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아니며, 서로 다른 정의관으로 대립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 두 주제로부터 현대 히어로 만화의 새 역사가 쓰인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 영화 시장에서는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마블이 DC를 추월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 초 <엑스맨>의 흥행을 시작으로 영화 산업에 투신한 마블은 이후 2008년에 선보인 <아이언맨>을 계기로 본격적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서장을 연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 및 특수 효과 기법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히어로물의 진화가 가속화된 것이다. DC코믹스보다 한 발 늦게 만화계에 발을 들인 마블코믹스는 1939년 마틴 굿맨(Martin Goodman)에 의해 설립됐다. 미국 만화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DC와 마블의 흥행을 향한 추격전은 미국 히어로 만화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DC코믹스에 소속된 대표적인 영웅들이 선천적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반면(배트맨을 제외하고), 마블코믹스의 영웅들은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던 중 불의의 사고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토르를 제외하고). 스파이더맨은 방사능에 오염된 거미에 물렸고, 헐크는 우연히 감마선에 노출되었으며,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불의의 사고로 초자연적인 마법의 세계에 입문한다. 데어데블은 방사능 유해 물질로 인해 시력을 상실했지만, 이 사고로 다른 감각이 극도로 발달하게 된 히어로이다. 그들은 어느 순간 초인이 되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낀다.

DC의 초월적인 영웅들과 달리, 뉴욕이라는 실제 도시를 배경으로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이 불완전한 마블의 히어로들에게 독자들은 강한 연민을 느끼며 공감했다. 이 독창적인 캐릭터들을 창조하는 데에 일조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신화와 문학에 심취했던 스탠 리(Stan Lee)와 그의 스토리에 역동성을 부여해 준 작화가 잭 커비(Jack Kirby)였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어벤져스의 활약과 마블 스튜디오의 선전은 전적으로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나이를 먹어도 매력적인 슈퍼히어로

2022년인 현재는 공공연한 마블의 시대다. 어디를 가나 마블의 캐릭터들이 가득하고, 마블 스튜디오, 디즈니, 넷플릭스에서 우리는 매해 재생산되는 히어로들과 마주한다. 우리는 왜 아직도 이토록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는 것일까?

슈퍼 히어로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때는 미국이 10여 년 넘게 지속된 경제 공황으로 깊은 침체기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젊은이들은 미국의 승리를 위해 입대한다. 이 시기 미국인들은 미국의 재건과 쇄신을 가능케 할 초인적인 히어로를 갈망했고, 때마침 등장한 슈퍼히어로들은 그들의 염원을 육화한 존재이자 미국의 신화로 자리한다. 그들은 대내외적인 악과 싸우며 정의를 수호한다.

그들이 대적하는 악의 세력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전쟁 중에는 나치가, 냉전 중에는 소련이, 9.11사태 이후로는 중동 지역이 그들이 대적해야 할 상대였다면, 현재는 자경단으로서 히어로들이 지닌 자율권을 통제하려는 미국 정부에 맞서 히어로들이 내분한다.

이미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자경단인 배트맨과 정부의 비밀 병기인 슈퍼맨이 대립했듯이, 마블의 <시빌 워(Civil War)>에서는 초인 등록법을 둘러싸고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이 대립한다. 슈퍼 히어로는 각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수트를 걸치고 새로운 매체와 더불어 거듭난다. 슈퍼맨과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는 영화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강하고 매력적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성장기는 곧 슈퍼 히어로물의 성장기와도 맞물려있다. 나의 정의감 역시 그들과 함께 성장했을 것이다. 비록 영화 속 히어로들의 변절(?)이 때때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지라도. 얼마 전 내한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마이클 키튼(Michael Keaton)은 왜 하필 마블의 빌런으로 출연해야만 했을까?

나에게 데어데블의 매력을 일깨워주었던 벤 애플렉(Ben Affleck)은 대체 왜 갑자기 DC의 배트맨이 되어 버렸는가? DC의 그린 랜턴이었던 라이언 레이놀즈(Ryan Reynolds)가 마블의 데드풀이 된 사연은? 그저 이렇게나마 스스로를 위로해야겠다. 그들은 슈퍼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고. 가장으로서의 의무도 일종의 정의라고.

다시 처음의 노래로 되돌아가 본다. '정의를 모르는 나쁜 무리들'을 무찌르고자 히어로들은 날아오른다. 인류가 정의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한, 이들은 결코 비상을 멈추지 않으리라. 슈퍼 히어로는 우리에게 윤리적 모범을 제시해 준다.

초월적 힘을 가진 자가 약자의 편에 선다는 사실만으로 히어로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아무리 나이를 먹는다 해도 히어로들은 매력적이다. 정의감은 결코 늙지 않는다. 내 유년기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태그:#슈퍼히어로, #정의, #DC, #MAR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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