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필완 목사, 양재성 목사, 수경스님, 도법 스님, 최상석 신부, 홍현두 교무, 최종수 신부 등 4대 종단 성직자 및 환경운동가 20여명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전망대를 시작으로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100일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애기봉전망대에서 열린 출발행사에서 김지하 시인, 법륜 스님, 수경 스님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필완 목사, 양재성 목사, 수경스님, 도법 스님, 최상석 신부, 홍현두 교무, 최종수 신부 등 4대 종단 성직자 및 환경운동가 20여명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1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전망대를 시작으로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100일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애기봉전망대에서 열린 출발행사에서 김지하 시인, 법륜 스님, 수경 스님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그는 1990년대 생명운동에 이어 1999년 8월 강준혁ㆍ김영동ㆍ김정현ㆍ임진택ㆍ채희완ㆍ정희섭 등과 율려학회를 조직하고 이의 대중화에 나섰다. 율려(律呂)의 사전적 의미는 "극악의 음이름에 있어서 십이율(十二律)의 양률(陽律)과 음려(陰呂)의 통틀어 일컬음"이라 설명한다. 일반에게는 얼른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다.

율려학회(律呂學會)는 아시겠지요? 율려(律呂)가 어렵죠? 율려가 무엇이라는 것을 20여 회 인터뷰에서 내내 대답했는데도 아직 율려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계속해요. 간단히 이야기해서 '동양의 음악'을 율려라고 해요. 특히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동양의 음악을 율려라고 합니다. 율(律)은 양(陽)이고 려(呂)는 음(陰)입니다. 우주의 12계절이 있죠? 6개월은 따뜻한 계절인 양(陽)이고 나머지 6개월은 추운 계절인 음(陰)이죠. 그래서 6개월은 양 나머지 6개월은 음이죠. 바로 이 음양(陰陽)의 음률을 '12율려(律呂)'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주 절기의 변화를 표현하는 음악'을 율려라고 하죠. (주석 1)

미학과 출신인 그는 지인ㆍ후배들과 율려학회를 조직하고, 이에 앞서 1999년 4월부터 명지대학 석좌교수의 자격으로 월 1회 미학관련 특강을 하였다. 앞의 인용문은 제1회 강의 내용이다. 

그는 생명운동이나 율려운동을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인식하였다. 정치나 사회단체에 의한 사회변혁의 길이 아닌 문화ㆍ예술분야에서 방법론을 찾은 것이다.

철학에 기초해서 혁명가들이 새로운 포부로 정치를 변혁시키는 것이 근본 치유로서의 혁명입니다. 이 코스를 따라가 보자는 것이 율려운동입니다. 그러니까 코스는 다르지만 사회 변혁에 대한 꿈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삶과 세계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생명운동으로써 삶과 사회와 지구ㆍ우주를 변혁해 보자는 것이고 20대부터 지금까지 해온 모든 운동을 실천적으로 문화적ㆍ미학적으로 총괄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 전체가 변해야 하기 때문에 동양에서부터 변화하고 있는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다시 짚어서 새로운 음악, 시, 무용, 연극, 더 나아가 그것이 대중화된다면 영화나 컴퓨터 게임, 디지털이나 사이버 컬쳐까지도 변화시키려는 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주석 2)

그는 율려운동의 뿌리를 증산 강일순에서 찾고 있다. 강일순의 "앞으로 오는 후천 시대에는 율려가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라는 대목이었다.

"율려가 무엇인가? 율려가 무엇이관데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인가?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은 바로 정치인데 그 정치를 주재하는 것이 율려라니, 도대체 율려란 무엇을 말하는가? 율려란 쉽게 말하면 음악이다. 다만 <주역>이나 <정역> 등 태극음양의 우주질서에 맞추어 만들어진 우주만물의 음악을 '율려'라고 특정해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강증산 선생의 말씀은 곧 음악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다만 그 음악이 우주의 새로운 질서에 알맞을 때의 일이다." (주석 3)

그의 율려운동과 관련 학계와 문화계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지 않느냐, 변혁운동의 현실에서 전열로부터 이탈한 것이 아니냐는 등의 논지였다.

문화연구가 조흡은 <누구를 위한 율려운동인가?>에서 "그의 글은 여전히 버스 꽁무니에서 뿜어대는 까만 매연처럼 어지럽기만 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다시 말해, 김지하가 장황하고 복잡하게 내린 결론은 현재 서구나 제3세계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이론적 개념들을 빼닮은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그의 주장이 더 이상 토종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율려론의 한계인 셈이다. '역(易)의 최종적 도달점은 우주의 질서를 인간이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신체중심이면서 두뇌중심의 문화'를 추구하는 것이니, '구체적 생활성'(작은 정치)과 '큰 전체성'(큰 정치)의 연대, '세 기둥의 민족문화운동' 등 그의 토종이론에서 도출해 정리한 개념들은 이미 맑스(또는 신맑스 이론), 부드리외, 들뢰즈, 길로이, 그리고 최근의 문화연구의 이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그의 주장이 별로 새롭지 않다는 말이다. 더 이상 동양적이거나 한국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주석 4)


주석
1> 김지하, <흰 그늘의 길>, <예감에 가득찬 숲 그늘>, 23쪽, 실천문학사, 1999.
2> 앞의 책, 24~25쪽.
3> <회고록(3)>, 264쪽.
4> 조흡, <누구를 위한 율려운동인가?>, <인물과사상>, 1999년 10월호 6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