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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부차, 파괴된 러시아 군용차량들이 쓰레기 더미에 놓여 있다.
 지난 5월 1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부차, 파괴된 러시아 군용차량들이 쓰레기 더미에 놓여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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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러시아는 소련(소비에트 연방)이었다. 당시 지리부도에 벨라루스는 '백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소러시아'라고 표기돼 있었다. 이름만 놓고 볼 때 이들 나라는 원래 러시아와 한 나라인가 다른 나라인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소련 정치인이자 독재자였던 스탈린이 러시아와 갈등 관계에 있는 그루지아(조지아) 출신이었듯이, 스탈린을 이어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흐루쇼프는 지금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연방국가인 소련은 1922년 결성돼 1992년 해체되었는데, 당시 하나였던 두 나라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내전을 치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러시아 소설에서 엿본 우크라 사태

내가 읽은 러시아 소설들 중 현재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몇몇의 작품이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196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솔로호프의 대하 장편소설 <고요한 돈 강>(1928~1940)이다.

주인공 그리고리는 러시아 남부 돈 강 유역의 코사크 농민 출신이다. 그는 배운 것은 없어도 코사크 종족의 영예와 용맹을 사랑하는 인간이다. 1914년 일차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과거 차르 시대의 용감한 코사크와 같이 제정 러시아 군대에 징집돼 전장으로 나가게 된다.

전쟁이 오래 끌던 중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정권이 종전을 선언하면서 그리고리는 설렘 속에 귀향을 서두른다. 그러나 그때부터 새로 탄생한 소비에트 정권의 적군과 이에 저항하는 백군의 내전이 오랜 기간에 걸쳐 다시 시작된다.

코사크 부대들도 여기에 휩쓸려 자신들의 계급적 위치 또는 사상적 성향에 따라 적군 또는 백군으로 나눠져 가담한다. 대체로 돈 관구 하류의 부농 출신인 '돈 코사크'들은 백군에, 상류의 빈농 출신들은 옛날 차르에 저항했던 '스텐카 라진'의 후예답게 적군에 가담한다.

부농도 빈농도 아닌 대충 중농쯤 되는 그리고리는 적군과 백군을 오가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져간다. 그는 처음엔 소비에트 정권을 지지했음에도,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적군과 백군 양쪽이 공히 보여주는 비인간적 행태에 환멸을 드러내게 된다.

소설은, 1920년 적군에 쫓겨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까지 밀려간 백군의 장군과 장교들, 사제, 자산가 등 15만 명이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연합군의 도움으로 영국의 함대 등을 타고 흑해를 탈출하는데서 끝이 난다. 결국 내전은 소비에트 적군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그리고리에게, 인민의 편이라 생각한 소비에트 정권이나, 그에 맞서 싸운 백군, 또 이를 도운 서방 연합군 모두 코사크 족의 행복과 평화를 빼앗아 가버린 부정적인 세력들일뿐이다. 가장 위대한 전쟁문학은 반전 문학이다. <고요한 돈 강>은 이를 보여준다.

또 다른 소설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 되었는가>(1932~34)는 내전 당시 우크라이나의 서부지역을 무대로 한다. 이 지역을 점령한 소비에트 적군이 독일의 침공으로 퇴각하자, 우크라이나의 우익 민족주의 군벌들은 독일을 등에 업고 세력 다툼을 벌인다.

군벌내부의 분열을 틈타 볼셰비키가 재점령하나, 이번엔 이웃인 폴란드가 침공한다. 우크라이나는 이를테면 유라시아 대륙의 '지정학적 중심축'이다. 원래 자기 구역이라 생각하는 러시아는 물론, 서방 열강들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 이곳을 끊임없이 간섭한다.

'지정학적 중심축' 우크라이나... 절대 악, 절대 선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2021년 10월 2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과의 단독 면담을 위해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가운데, 이들이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1600년대 후반 성 베드로 광장의 모습을 담은 기념패 선물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2021년 10월 2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과의 단독 면담을 위해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가운데, 이들이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1600년대 후반 성 베드로 광장의 모습을 담은 기념패 선물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습.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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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돈 강>의 그리고리는 "개 두 마리가 서로 물어뜯고 싸울 땐 다른 개는 결코 참견하지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연합군은 (백군에게) 장교, 탱크, 대포, 심지어 당나귀까지 실어 보낸다. 그러고 나서 놈들은 그 대가로 거액의 돈을 요구할 것이다"라고 분노한다.

현재도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서방의 무기가 쏟아져 들어간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의 핵심을 보려면, 서방언론의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증 또는 공포증)적 시각만으론 어렵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는 지난 6월 15일 <한겨레>가 보도했다. 
  
교황은 나토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도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의 잔악 행위를 비판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절대적인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과는 거리를 두고, 흑백 논리로만 볼 게 아니라 그 뿌리와 이해관계 등 복잡한 문제에도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태그:#우크라이나, #러시아, #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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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소재한 피사로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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