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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제안 심사위원회 출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제안 심사위원회 출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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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엽관제(獵官制)'가 튀어나왔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연이어 터지는 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을 방어하면서다. 그는 지난 2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통령실은 공개 채용 제도가 아니고 비공개 채용 제도, 소위 말하는 엽관제"라고 말했다. 

강 수석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공개 채용이지만,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공적채용이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논리가 주효하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엽관제'라는 단어를 들고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 검찰수사관으로 함께 일했던 사람의 아들, 40년 지기이자 여당 원내대표 지역구 주민의 아들, 문재인 대통령 자택 앞에서 시위하는 유튜버의 누나를 대통령실 직원으로 채용하면서 불거진 이 논란의 본질은 강 수석이 강조하는 '비공개 채용이냐 공개 채용이냐' '절차를 밟았느냐 안 밟았느냐'가 아니다. '사적 인연이 대통령실 직원 채용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가'가 핵심이다. 

대통령실 방어에 나선 강 수석은 사적 인연이 채용에 영향을 주지 않았음은 해명하지 못했다. 그저 엽관제를 거론하며 그들이 대선 때 고생했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했다.

18세기, 신생국가 미국에서 횡행했던 엽관제

그러나 강승규 수석이 소환한 엽관제는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상황과 들어맞지 않는다. 엽관제가 발달한 초기 미국의 정치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으로 보여진다. 미국 역사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것이 공적 채용의 일환으로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엽관제(spoils system)라는 용어는 뉴욕주 상원의원인 윌리엄 마치(William March)의 발언 "전리품은 승자에게 속한다(To the victors belong the spoils)"에 유래한다. 이 한 마디에서 전리품 제도 혹은 약탈품 제도를 뜻하는 '스포일스 시스템(spoils system)'이란 말이 생겨났다. '관직을 사냥한다'로 직역한 표현 '엽관'은 영어식 표현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엽관제는 영국에도 있었지만 초기 미국에서 특히 발달했다. 이는 이 제도가 미국 정치상황과 잘 맞물렸기 때문이다. '인디언'으로 불리는 토착민들의 문명을 파괴하고 그 위에서 새로 시작한 미국 정치 문화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영국 같은 유럽엔 엽관제가 생기기 이전에 국가관료제가 있었다. 이에 반해, 초창기 미국은 토착 문명이 파괴된 상태에서 연방국가 시스템이 세워졌다. 이것이 엽관제의 토양이 됐다.

일반적으로 신생 국가들은 이전 국가의 관료기구를 승계하거나 활용한다. 하지만, 인디언 사회조직을 채용할 수 없었던 초창기 미국은 관료기구를 새로 구축하고 신입 관료들을 끊임없이 충원해야 했다. 이 점이 신생국가 미국의 어려움이었는데 연방정부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그런데 '주'의 독립성이 강한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주'와 연방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에 속한 국민들 속에서 연방정부 관료를 충원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분절화돼 있는 연방국가를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정당제도'였다. 정당들은 '주'의 경계를 넘나들며 합중국을 하나로 연결해줬다. 이는 정당제도가 연방 관료제의 생명력을 담보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해줬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주'는 물론 연방의 관직까지 사실상 독점하는 풍토가 조성되도록 해준 것이다.
 
1877년 4월 28일 <하퍼스 위클리>에 실린 앤드류 잭슨 엽관제 풍자 만평. 작가는 토마스 내스트.
 1877년 4월 28일 <하퍼스 위클리>에 실린 앤드류 잭슨 엽관제 풍자 만평. 작가는 토마스 내스트.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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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 보울스(Nigel Bowles) 옥스퍼드대학 교수와 로버트 맥마흔(Robert McMahon) 래들리칼리지 교수가 공저한 <미국 정치와 정부>(2016)는 "정당은 선거를 조직하는 수단이자 구조적으로 분리된 연방정부에 (때때로) 일관성을 부여하는 수단이었으며, 선출된 정치인들의 지지자들이 후원의 대가를 보상받는 수단이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주와 주를 매개해 연방의 일관성을 제고해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미국 정당들이 선거 승리의 대가로 연방 관직을 차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엽관제가 체계화되고 안정화된 것은 제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때였다. "앤드류 잭슨 이전까지 모든 대통령들의 첫 번째 행동은 행정부 내의 모든 공직자들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증명된 충성심을 가진 자들, 혹은 자신들이 정치적 부채를 진 지지자들이 추천하는 자들을 앉히는 것이었다"고 위 책은 말한다. 이런 정치문화가 1829년부터 1837년까지 재임한 잭슨 대통령 시기에 한층 발전했던 것이다.

명과 암... 그와중에 발생한 사건

당시엔 엽관제가 공정의 가치와 부합하는 측면도 더러 있었다. 상류층이나 특권층 자제가 아니더라도, 세상이 공인하는 자격을 갖지 않았더라도 공직 취임이 가능하게 만든 이 제도는 중류층 이하 자제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측면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선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었다. 선거 승자들의 자의적 결정에 의해 관직 배분의 공정성이 왜곡될 여지가 있었다. 선거 때마다 대대적인 관직 물갈이가 이뤄지기 때문에 국가행정의 안정성을 보장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엽관제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공직 임명의 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한 시도들이 19세기 중후반부터 본격화했다. 1867년의 공직임기법(The Tenure of Office Act)이나 1883년의 펜들턴법(Pendleton Act)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뒤에도 엽관제의 문제점은 다 해소되지 않았다. 19세기 중후반부터 미국인들은 엽관제의 부조리를 심각하게 인식했다. 
 
미국의 조각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프랭크 레슬리가 <일러스트레이티드 신문>에 게재한 제임스 A. 가필드 암살사건 삽화.
 미국의 조각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프랭크 레슬리가 <일러스트레이티드 신문>에 게재한 제임스 A. 가필드 암살사건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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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엽관제의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도 발생했었다. 1881년 3월 4일 취임한 제임스 가필드(James Garfield) 대통령은 임기를 6개월밖에 채우지 못했다. 그해 9월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관직 임명 제도를 개선하고자 처음 4개월간 동분서주했던 그는 7월 2일 찰스 귀토(Charles Guiteau)라는 사람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수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패혈증까지 겹쳐 결국 같은 해 9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미국 역사저술가 조셉 커민스의 <미국 대통령선거 이야기>는 찰스 귀토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 "이 사건을 연구한 역사가들은 대부분 '관직을 구하려다 실패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라며 "귀토는 가필드를 몇 달 동안 따라다니며 파리 주재 영사 자리를 달라고 부탁했다"고 설명한다. 이 사건은 엽관제의 부작용을 재차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데 2022년 대한민국에선 엽관제가 튀어나와 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쓰였다. 그러나 선거에 승리한 정당의 추천에 의해 관직이 배분되는 미국의 엽관제는 정당과 국가라는 '공적 기구'를 대전제로 했다. 그 시절 이 시스템 아래서도 사적 인연에 기반한 채용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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