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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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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고등학교도 교육청의 지침에 따라 대부분의 과목이 적게는 40%, 많게는 60% 수행평가 점수로 채워진다. 결과 중심 평가가 아니라 과정 중심 평가, 정량 평가에서 벗어나 정성 평가를 하라는 것인데,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면 이는 옳은 평가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간혹 '옳은 것'과 '현실적인 것' 간의 괴리가 발생한다.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신으로 대학에 가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한 개 더 맞거나 틀리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돼 버린다. 이처럼 점수에 민감한 학생들에게 수행평가 점수라고 예외일 리 없다.

교사 A는 학년 초, 수업 시간에 지켜야 할 원칙을 제시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에 태도 점수에서 1점씩 깎겠다고 고지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업 시간 중 휴대폰으로 SNS를 하는 학생을 자신이 세운 평가 기준대로 처리했는데, 매 시간 찾아와서 울고 불고 우기고 학부모까지 와서 항의하고, 힘들게 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동료 교사들이 옆에서 말했다. "태도를 점수화한다고? 힘들텐데... 학생들도 수용하지 않을거고... 그냥 보고서 써 내라고 하고, 그거 가지고 생기부 써 주고, 기본 점수 준다 생각하면서 그냥 점수 줘. 태도는... 훌륭한 애들만 생기부 세특에 태도가 좋다고 써 주고."

그 말을 들은 교사 B는 학생들에게 관심 있는 주제로 자유롭게 보고서를 써 오라고 보고서 양식을 만들어서 나눠줬다. 시간도 넉넉히 주고 쓰는 방법도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리고 평가도 아주 관대하게(?) 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만점을 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학부모가 학교에 항의 전화를 했다. "아니 수행평가를 수업 시간에 해야지, 그걸 과제로 내 주면 어떻게 합니까? 한두 과목도 아니고, 학원에도 다녀야 하는데.... 학생들이 수행평가 때문에 너무 힘들어합니다. 수행평가는 그냥 수업 시간에 하세요. 그리고 잘 하는 애들과 못하는 애들이 다 만점을 준다는데, 저희 아이가 억울하다고 하네요. 평가 기준은 제대로 있는 겁니까?"

그 해프닝 후에 교사 C는 '수업 시간'에 탐구 활동 과제를 던졌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약간의 성실성과 협동성만 보이면 할 수 있는 과제였다. 물론 미리 예고도 했다. 다음 시간에 수행 평가 활동 과제를 할 예정이라고. 오픈북으로 제시했고, 서로 모르는 것은 도와가며 해도 된다고 했다. 다들 재밌게 탐구 활동을 하고, 활동지를 제출했다.

학생이 찾아왔다. "선생님, 서로 모르는 거 도와가면서 하라고 하지 마세요. 그럼 피해 보는 아이들이 있어요. 불공평해요. 못하는 애들은 점수 못 받는 게 맞는 거 아니에요? 못 하는 애들까지 왜 저희가 신경써야 돼요?"

교사 D는 수행평가 활동지를 보며 생활기록부의 과목별 세부 능력 특기 사항을 써 줬다. 함량 미달의 보고서지만 어떻게든 장점을 찾아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열심히 '화장'을 하며.... 한 학생이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대한 보고서를 썼는데, 논리적 연결성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생기부 과목별 세부 능력 특기 사항에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함'이라고 써 줬다.

그러자 생기부 확인 기간에 학생이 찾아왔다. "선생님 '나름대로'는 빼 주세요. 이건 부정적인 느낌이라 별로예요. 이렇게 써 주시면 안 돼요?" 어디에서 어떻게 받아 온 것인지 학생이 내민 쪽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 원인에 대한 분석이 정확하고, 원인에 따른 논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음. 이를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분석 능력, 논리적 사고력 및 비판적 사고력이 뛰어다나는 것을 알 수 있었음.'

교사가 발견하지 못한 내용을 수업 시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누군가는 발견했나보다. 미래에 발현될 학생의 능력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교사의 무능력일까? 수행평가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교사의 자율성을 좀 더 인정해 주어야 하고, 아이러니하지만 수행평가가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