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철호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이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11일 오후 명동 한국전력 서울본부에 설치된 전광판에 실시간 전력수급 현황이 표시돼 있다.
 11일 오후 명동 한국전력 서울본부에 설치된 전광판에 실시간 전력수급 현황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한국전력(아래 한전)이 올해 들어 1분기에만 7조6000억 원이라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분기 기준으로 한전 역사상 최대의 적자로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한전은 올해 30조 원까지도 적자를 볼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에 직면한 상태다. 벼랑 끝 상황에서야 정부는 한전이 제시한 kWh당 5원(1.0%)의 전기요금 인상 요구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국제 연료비 급등이 필요로 하는 인상단가가 kWh당 33.6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의 인상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한전이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핵심적인 요인은 국제연료비의 급상승이다. 이는 한전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요소로 아무리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공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전기요금은 최소한 이를 반영해 결정돼야 한다.

그런 필요성에서 2년 전에 전기요금의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한 번도 제대로 운영된 적이 없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서민경제에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산업용 전기요금은 수출·제조업 기업들의 산업경쟁력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역대 정부는 연료비가 상승함에도 전기요금을 계속해서 억눌러 왔다. 

연료비 상승은 국제적으로 동일한 현상이다. 이에 대해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에너지 위기 및 가격 급등 상황에서 세계 각국은 올해 초에 전기요금을 큰 폭으로 인상했다. 전기 소매요금 인상률을 보면 일본 34.6%, 프랑스는 35%, 영국은 54%, 스페인 70% 등에 달한다. 이 국가들 대부분은 우리나라처럼 분기별 요금 조정이 아닌, 더욱 짧은 시차를 두고 연료비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그 제도들을 잘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주요국들이 연료비가 상승할 때 그것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은 원자재의 투입 비용을 반영한다는 당연한 원칙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이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다소비 및 저효율 구조'도 진단해야
 
6월 30일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와 가스계량기.
 6월 30일 서울 시내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와 가스계량기.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우선 전기요금에 현실이 반영돼야, 제대로 된 가격신호로 기능하며 가계 및 기업의 합리적인 전기 사용을 유도할 수 있다. 가격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정확히 반영돼야 한다. 그래야 이용자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해 사용량을 적절하게 조정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요금을 원가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게 유지하다 보니 가격신호가 왜곡돼 '에너지 다소비 및 저효율 구조'가 고착화됐다. 기업들도 에너지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해 산업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저렴한 전기요금이 복지라는 국민의 인식이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전기요금은 그 비용을 제대로 반영해야 하며 에너지 취약 계층은 복지정책으로 살펴야 한다.

한편 전기요금이 너무 낮은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한전이 적자를 면하지 못하게 됐고, 이로 인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재생에너지 설비투자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세계 기후위기 대응에 합류해 2021년 10월에서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계획을 국제사회에 공표했다.

그런데 이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전의 주도적 역할이 중요한데 전기요금이 지금과 같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다차원적 문제 전기요금... '방만경영' 지적으로 해결될 문제 아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정부는 전기요금이라는 다차원적인 문제를 한전의 적자라는 지엽적인 문제로 축소하고, 더구나 이것이 한전의 방만경영 때문이라고 왜곡하는 등 국민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

그러나 한전이 발전사들에게 연료비를 반영해 비싼 도매가격을 지불하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전기를 싸게 팔아온 것이 어떻게 방만경영일 수 있겠는가? 국민에겐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기업에겐 생산 원가를 낮춰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방만경영이라기보다는 산업 발전과 국민 편익에 기여한다는, 공기업으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저렴한 전기요금 정부 정책에 따라 한전은 적자를 감수해왔다. 그러나 전기요금 현실화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으로는 에너지전환, 산업경쟁력 제고 등이 어느 하나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여론 악화를 우려해 전기요금을 계속 억누른다면 한전의 부채와 이자 비용은 갈수록 증가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 부담은 결국 미래세대가 떠안게 된다.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은 애써 모른척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백년대계'이고, '전기요금 현실화'는 바로 그 백년대계가 제대로 추진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철호씨는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태그:#한국전력, #전기요금, #적자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