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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했다 집에 들어오면 실내가 어둡다. 응접실 전등 스위치부터 켠다. 인기척에 방에 계신 아버지가 나를 반긴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나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아버지, 밖이 어두워지면 집에서 전등을 꼭 켜고 지내세요." 

나의 이런 잔소리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아버지는 어둡지 않으면 전등을 켜는 법이 없다. 전기를 조금이라도 아낀다는 이유지만 나는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혹시나 어두운 곳에서 넘어지실까 걱정이 태산이다. 캄캄한 데서 미끄러지거나 낙상해 고생하는 노인들을 주변에서 자주 보기 때문이다. 
 
거실 전등도 별로 어둡지 않으면 켜지 않는다.
 거실 전등도 별로 어둡지 않으면 켜지 않는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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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불 켜 진 빈방이 없다. 잠을 자면 반드시 전등을 꺼야 한다. 아버지는 찾아다니며 전등을 끄거나 쓰지 않는 콘센트 플러그를 뽑는다, 반대로 전등을 주로 켜두는 입장인 나와 아버지가 가끔 실랑이를 벌인다. 어두운데서 책을 보면 눈이 나빠지고 넘어지면 큰일이 생긴다고 대꾸하면 아버지는 수긍하는 척 그 때 뿐이다. 

20년 전 설치한 거실의 성인 키 만한 에어컨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전기 주범으로 지목돼 일년에 한두 번 틀 정도로 거의 무용지물이다. 우리 집 여름은 조그만 선풍기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올 여름을 지켜주는 우리집 선풍기
 올 여름을 지켜주는 우리집 선풍기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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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귀하던 학창 시절,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시골마을도 많았다. 정부가 집에 한 개 등 소등을 일률적으로 지시하던 때가 있었다. 집안 전기도 정전되곤 했다. 천둥과 번개가 치면 두꺼비집 전기 퓨즈가 저절로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바로 새 퓨즈로 잇기도 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어두운 상태로 다음 날 아침을 맞기도 했다. 

전기가 끊어지면 당시 바로 등장하는 것이 '비상 양초'였다, 집집마다 정전에 대비해 생필품으로 양초를 한두 개쯤 가지고 있었다. 나는 희한하게도 양초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다시 전등이 켜져도 양초로 공부한 적이 있다.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모두 겪은 90세 전후 아버지 세대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물건을 아끼고 절약했다. 그것은 자원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생존전략이었다. 전기뿐이랴, 수돗물 한 방울, 휴지 한 조각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평생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요즘 절약정신을 배워 환경을 실천하는 젊은이들도 많지만 우리 집 상황을 쉽게 이해할 것 같지는 않다. 자라면서 직접 보고 배운 전후세대인 나도 아버지에 비하면 전기를 지금 과소비하고 있다고 핀잔을 자주 들을 정도니까.

물론 아버지도 소등하는 것을 깜박해 실수할 때가 있다. 이때는 무안하지 않게 집사람이 대신 조용히 전등을 끈다. 그러나 아버지 당신이 직접 켠 전등을 스스로 끄는 것을 잊어버리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아 다행이다. 

이를 보며 아내는 내게 내 걱정이 기우라며 아버지가 전등을 끄고 아끼는 습관은 도리어 기억력이 좋고 건강하신 징후라고 말한다. 아버지께 채근하지 말라는 충고도 한다. 

한편 이른 무더위로 전력수요가 폭발하면서 7일 오후 5시 기준 현재 역대 최고를 기록해 올해 '전력수급'이 비상 걸렸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집 같은 곳에선 딴 나라 얘기다. 
 
전기 콘센트 플러그는 쓰지 않을 경우 뽑아 둔다
 전기 콘센트 플러그는 쓰지 않을 경우 뽑아 둔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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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기플러그를 뽑고 전기를 아끼는 습관이야말로 환경 실천의 첫걸음이다. 그러나 '전기 자린고비'가 너무 심해 안전과 생명까지 위협받는다면 그 안전사고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의료 전문가들은 실내를 평소보다 밝게 해 노인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거나 물체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낙상사고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아버지에게도 예외가 하나 있다. 텔레비전과 함께 취침할 때가 많다. 아버지는 오늘 밤도 텔레비전을 켜고 주무신다. 크게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에 방에 들어가 슬쩍 끄고 나온다. 

나는 어느새 아버지가 켜 놓은 전기를 끄고 있다. 나 또한 이 버릇을 아버지에게 오롯이 전수받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태그:#소등, #낙상사고, #전기플러그, #전력수요, #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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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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