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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째깍째깍.... 시계 작은 바늘이 숫자 10의 방향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슬슬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아이의 상태를 스캔한다. 숙제는 다 했는가? 아니오. 씻었는가? 아니오. 내일 책가방은 다 쌌는가? 아니오... 만약 이 상태라면 다음 스토리가 장밋빛으로 전개되긴 어렵다.

"얘들아,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까지 이러고 있니? 제발 빨리 좀 자자."
"엄마, 숙제를 덜했어."
"숙제는 내일 하고, 일단 빨리 씻고 자."
"숙제를 어떻게 내일 해? 지금 해야 해."
"그럼 진즉에 하던가... 왜 이제 와서 @$%^&&."


나의 잔소리 시전을 딱 막아서는 13살 큰 아이의 말.

"엄마!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일찍 자. 다른 애들은 12시 넘어서 잔대."

11살, 작은 딸애도 거든다.

"맞아. 내 친구들도 거의 12시 다 돼서 잔대. 우리 집만 넘 일찍 자."
"무슨 소리야~ 성장 호르몬 나올 시간에 자야지. 키 안 크고 싶나 봐~."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을 침대로 몰아넣는다. 아이들은 구시렁대던 것도 잠시.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진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다정히 쓸어주며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정말 너무 빨리 재우는 건가...?'

우리집 취침 시간은 오후 10시
 
잘 자야, 잘 일어날 수 있고, 잘 일어나야,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고, 학교생활을 잘해야,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 10시 땡! 하면 취침  잘 자야, 잘 일어날 수 있고, 잘 일어나야,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고, 학교생활을 잘해야,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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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들은 여행이나 가족모임 같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취침 시간이 오후 10시를 넘긴 적이 별로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수면 패턴만큼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수해오고 있다. 원래는 취침 시간이 더 빠른 9시였는데 고학년이 되면서 학원 과제가 많아져 10시로 늦춘 것이다.

내가 이렇게 아이들 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는 수면이 성장에 미치는 과학적 영향이라든지, 잘 자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더라 같은 연구결과 때문이 아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다.

밥을 먹는데 이유를 생각하지 않듯, 아이들이 일찍 자는 것에 큰 이유를 두지 않는다. 잘 자야, 잘 일어날 수 있고, 잘 일어나야,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고, 학교생활을 잘해야,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나의 친정집 주변은 온통 과수원과 논밭이다. 한 번은 늦은 밤에 친정으로 가는데, 가는 길에 가로등도 하나 없이 너무 캄캄해서 엄마에게 투덜댄 적이 있었다. "아니, 이 동네는 가로등도 하나 없고, 동사무소에 건의 좀 해"라고 했더니 엄마가 의외의 말을 건넸다.

"야야, 과수나무랑 곡식들도 자야재. 가로등 있으면 너무 훤해서 식물들이 잠을 못 잔다 아이가. 그라믄 수확할 때 문제 생겨서 안 돼~ 가로등은 일부러 안 하는기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자라는 식물도 잠이 이렇게나 중요한데, 한참 성장 중인 아이들은 어떠할까? 밤에 못 자면 아이들도 언젠가 열매를 맺어야 할 때 지장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그때부터 나는 아이들의 밤잠을 더욱 중요시 여겼다.
 
대부분은 숙제를 한다. 그것도 학교 숙제가 아닌 학원 숙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집을 풀고, 인강을 듣고... 자정이 넘어서도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 공부다.
 대부분은 숙제를 한다. 그것도 학교 숙제가 아닌 학원 숙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집을 풀고, 인강을 듣고... 자정이 넘어서도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 공부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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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도 내 생각엔 그리 이른 취침이 아닌데, 실제로 이 이야길 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이 깜짝 놀란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되묻는다(어떻게? 학원을 덜 보내고 과제를 빨리 끝내면 된다). 아이들 말마따나 10시에 자는 고학년 초등학생은 정말 우리 아이들뿐인 것 같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자정 가까운 시간에 자는 것이 더 놀라울 뿐이다.

아니, 그렇다면 아이들은 대체 그 시간까지 무엇을 하는 것일까? 대부분은 숙제를 한다. 그것도 학교 숙제가 아닌 학원 숙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집을 풀고, 인강을 듣고... 자정이 넘어서도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 공부다.

주위 얘길 들어보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공부를 했으니 보상 차원에서 게임이나, 유튜브를 허용해 주다 보면 아이의 취침시간은 예정보다 훨씬 더 늦어진다고 한다. 큰 아이 말로는 등교 시간에 잠이 덜 깨서 눈을 반쯤 감고 오는 친구들이 있는데 오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자기 바쁘단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한 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남들이 아니라고 하면 나 역시도 그 당연함을 의심하게 된다. '이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빼곰히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아이가 자는 시간에 저들이 저렇게 공부를 하면, 나중에 실력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까? 시험기간에 다들 거뜬히 밤샘 공부할 때, 우리 애만 잠을 못 이겨서 시험을 망치면 어쩌지' 같은 생각들. 그런 생각들이 들 때면 지금 당장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고 싶어진다. 

누가 아이들을 잠 못 들게 하나

경기도에서 2014년 9월 1일부터 시행되어 온 '9시 등교제'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우리집이 특수한 케이스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20~40분 가량 등교 시간을 늦춘다는 것인데, 이 말인즉 '저녁에 늦게 자는 것을 인정한다(밤늦게까지 공부하세요)' 고로 '아침 등교시간을 늦춰주마(대신 늦게 일어나도 돼요)' 같은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4일자 '학교 자율이라지만... 경기도 '9시 등교' 8년 만에 사실상 폐지' 이 기사에 따르면, '9시 등교제'는 '당시 이재정 교육감은 아침 식사로 건장 증진과 화목한 가족문화 형성, 적절한 수면과 휴식 보장, 과중한 학습 부담 경감 등을 내세우며 '9시 등교제'를 추진했다'고. 

하지만 이도 시행 8년 만에 '사실상 폐지' 되었다는 소식이다. 지난 1일 취임한 임태희 경기교육감이 '경기도 초·중·고에 9시 등교를 학교 자율로 결정토록 안내하는 공문'을 학교 측에 발송했기 때문.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것 역시 썩 달가운 일은 아니다.

위 기사 속 인터뷰에서도 나오듯 "학생 건강권을 생각하지 않고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있을 것 같고, 0교시 부활 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는 주장처럼 아이들의 잠을 지켜주고 싶은 부모로선, 그 혜택마저 없어진다는 게 아쉽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왜 늦은 시간까지 잠들 수 없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왜 늦은 시간까지 잠들 수 없을까요?
ⓒ SBS 방송 화면 캡처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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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feat.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 배우 김상중). 나라에서 정말 아이들의 수면권을 위한다면,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보다 저녁에 일찍 잠들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 왜 늦은 시간까지 잠들 수 없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자꾸 가려운 곳을 빼고 엉뚱한 곳을 긁는 느낌이랄까. 대신 긁어줄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사교육에 치우친 현실, 학업 경쟁, 시험 계급도 같은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선 아이들의 수면권은 보장받기 어려워 보인다. 

이 나라의 어른들은 성장 호르몬보다 성적 호르몬을 먼저 생각하는 듯하다. 성장 호르몬은 주사를 맞아서 키우면 되지만, 성적 호르몬은 지금을 놓치면 어떤 방법으로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대한민국 학부모로서 그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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