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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걷는 엄마.
 아이와 함께 걷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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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이라도 소득 기준을 넘으면 복지급여가 바로 중단됩니다. 일을 더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최소한 내 아이는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부모 가장 김은선(37, 우리한부모가족지원센터 사무국장)씨는 지난 17일 한부모가족에게 지급되는 복지급여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소득'을 기준으로 한 복지급여 정책은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정체되는 데 그친다는 뜻이다.

가난 증명해야 지급되는 복지급여... 그러나

한부모가족은 가구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일 경우 생계급여 ▲40% 이하일 경우 의료급여 ▲45% 이하일 경우 주거급여 ▲50% 이하일 경우 교육급여 ▲52% 이하일 때에만 아동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 2022년도 2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326만85원이고 3인 가구의 경우 419만4701원이다.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나누어 놓은 현행 복지급여 지원 방식이 한부모가족을 가난에 머무르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난을 입증해야만 복지급여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한부모 가장이기도 한 김진주 '하나와여럿한부모회' 대표는 1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저소득 구간에 살아야 복지급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한부모 가장들은 수입을 늘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필요를 상실한다"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수급자의 틀에 갇힌 한부모가족은 결국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라고 진단했다.

한부모 가장이 복지급여 지원대상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지원 기준을 만족하는 수준까지만 일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김은선씨는 "급여가 지원 기준의 경계에 있으면 억지로라도 근로 시간을 줄이는 경우가 있다"며 "턱걸이로 지원 기준을 넘겨 복지급여를 받지 못하면 생계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포기하는 한부모 가장이 많다"고 전했다.

'생업'과 '복지급여'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도록 부추기는 지원책이 정책 취지와 역행하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장수정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 기준에 따라 지원 여부를 결정짓는 방식은 한부모 가장으로 하여금 지원 경계선을 지키는 생존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도록 내몬다"고 지적했다.

복지급여를 받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충분히 벌지 못한 상황에서는 복지급여를 받아 자녀를 양육하더라도 경제적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올해 기준으로 3인 가구 한부모가족이 아동양육비를 받으려면 한 달 급여가 218만1245원을 넘어선 안 된다. 김진주 대표는 "3인 가구라고 해도 한 달 동안 최저임금만 벌어야 아동양육비를 겨우 받을 수 있다"며 "그런데 최저임금에 아동양육비를 보태더라도 자녀 2명을 양육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52%를 넘지 않으면서 만 18세 미만 자녀를 둔 한부모가족은 아동양육비로 아동 기준 1인당 월 20만 원을 지급받는다. 교육 급여를 받지 못할 경우, 두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장은 매달 최대 '258만1245원'의 예산 내에서 먹고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3인가구 복지급여 수급 조건 + 2인 아동양육비 40만 원 계산시. 2인 가구 기준으로는 189만5244원). 이는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서울복지실태조사'에서 제시한 3인 가구 적정생활비 370만 원은커녕 최저생활비 302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2022년 한부모가구 가구원 수 별 복지급여 선정기준.
 2022년 한부모가구 가구원 수 별 복지급여 선정기준.
ⓒ 이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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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없이 일하면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부모가족의 월 평균소득은 약 245만3000원으로 전체 가구 소득 416만9000원 대비 절반을 겨우 넘긴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정부 지원을 받는 한부모 비율은 54.4%에 그친다. '생업'과 '복지급여' 사이, 그 어딘가에서 한부모가족은 방황한다.

한부모가족의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위해 기준 중위소득을 중심으로 한 현행 복지급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배윤진 한국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저소득 중심의 지원 제도는 한부모가족을 계속해서 저소득 계층으로 남게 하는 역효과를 갖는다"며 "소득만이 아니라 지원 금액까지 포함한 형편을 고려하는 등의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성정현 교수 역시 "기준 중위소득 100%에 한해 한부모가족을 지원할 경우 복지급여 수혜자의 수혜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며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는 한부모가족을 포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소득 기준을 넘어서면 곧바로 지원을 끊는 식의 정책은 한부모 가장이 '일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부모 가장에게 생업과 복지급여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장수정 교수는 "소득 기준을 넘기더라도 소득이 안정화될 때까지 유예기간을 충분히 줄 때 비로소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다"며 "한부모 가장의 노동권을 보장할 때 궁극적으로 한부모가족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부모 가장의 노동권을 보장하려면 제도와 정책이 한부모 가장이 떠안은 양육 문제를 뒷받침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안정적인 일을 하고 싶어도 양육이 가중될 경우 일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은선씨는 양육 문제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던 경험을 소개했다.

"아이가 독감에 걸렸을 때 일주일은 집에서 간호해야 했습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은 저뿐이니까요. 그런데 제 상황을 모두 헤아려주면서 저를 고용해주는 직장은 없더라고요.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실직했습니다."

장수정 교수는 "2차 돌봄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한부모 가장은 양육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시적으로 일을 못 하게 되는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다"며 "한부모가족이 탈빈곤 하도록 노동권을 보장하려면 돌봄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도록 고용 보장이 확보돼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한부모가족 지원 기준 중위소득을 100%로 높일 것'을 공약했다. 한부모 가장은 육아, 가사노동, 벌이까지 홀로 삼중고를 겪는다. 둘이 해도 힘든 일을 혼자 감당하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부모 가장에게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공약을 내건 이상 한부모가족의 살림살이가 나아질지 여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2021년 12월 1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 성동구 가온한부모복지협의회를 찾아 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2021년 12월 1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서울 성동구 가온한부모복지협의회를 찾아 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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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부모가족, #한부모가정, #복지급여, #복지사각지대, #중위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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