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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지?
▲ 진실이 밝혀질줄 알았는데 어떻게 하지?
ⓒ 고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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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입니다. 전교조는 1989년 5월에 가입했는데 탈퇴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해 8월 19일자로 담양 창평고에서 해직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전교조에서 상근하게 됐습니다.

33년 전에 4년 6개월 해직 기간을 인정받지 못하고 94년에 신규채용 형식으로 복직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국가유공자로 인증서를 주었지만 달랑 종우때기(종이) 한 장 뿐이어서 원상회복(밀린 임금 지급과 호봉인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육을 망치고 있는 현장실습제, 수능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요. 수능폐지 대신 대입자격고사제 도입, 대학평준화, 대학무상교육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고재성. 그는 진도국악고등학교 국어교사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진도 체육관으로 바로 달려간 이후 진상규명을 위해 항상 유가족 곁을 지켰다. 그런 그에게는 주제가 많다. 광주 오월항쟁의 목격자, 전교조 초기멤버,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발걸음, 그는 항상 근현대사의 아픔과 함께했다. 세월호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종료된 지난 10일 진도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구수한 사투리를 그대로 옮긴다. 

- 세월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어요. 얼마 전에 사참위도 끝났는데 어떤 평가를 하시나요?

"수사권, 기소권이 없는 식물 사참위의 한계에 대해서 그렇게 문제제기를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침몰 원인도 확정 지을 수 없고, 책임자 처벌도 하지 못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야 했을 일인데, 끝까지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퇴임해버리고.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도 사면해 버리고. 좌절하면서도 화도 나고 합니다."

-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에 함께 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바로 흑산도 동생한테 전화했지요.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로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높았다거나 안개가 끼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자 바로 체육관으로 갔습니다. 목에 명찰을 걸고 있는 사람 두 분한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두 분 다 꽝하는 소리에 놀라 탈출했다고 합디다. 저는 이것은 필시 학살이다고 단정지었습니다."   

- 학살이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일단 구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학살이라고 할 수 있고요. 박근혜 정부에서 밝히지 않고, 문재인 정부는 사참위와 검찰 뒤에 숨어버리고 심지어 문재인 정부시절 검찰 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세월호 책임자들을 모두 무혐의로 풀어줬어요. 국민은 먹먹하고 권력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만 봐도 학살 아닌가요?"
그의 피케팅에 담긴 이야기
▲ 봄여름가을겨울 그의 피케팅에 담긴 이야기
ⓒ 고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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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조 활동은 언제 시작하신건가요?

"89년 7~8월 명동성당에서 단식투쟁에 참가해서 8월 19일자로 담양 창평고에서 해직되고 전교조 상근을 시작했지요. 그 전 87년 유월항쟁 때 아침에는 학교로 출근하고 학교가 끝나믄 학교 선생님들 몇 분과 금남로로 출근했지요. 거기서 막걸리도 많이 마시고 최루탄도 맹씬 마셨답니다. 한 번은 전일빌딩 근처에 있다가 백골단한테 쫓겨 도망가다 넘어져 오른쪽 구두 잃어불고 양복바지 물팍께는 찢어지고....

제가 사실 처음에는 문제 많은 교사였습니다. 담양 창평고에 87년에 처음 가서 첫해는 폭력교사였고, 둘째 해는 촌지 교사, 89년에는 제 손으로 학생을 제적시킨(학교를 거의 나오지 않아 교감이 정리해라고 압력)적도 있었지요. 촌지도 받아봤어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을 편애하는 모습에 엄청난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그때 아이들에게 고백을 했어요. 내가 작년에 돈의 노예가 되어 촌지를 받았다고. 절반은 제가 쓰고 절반은 아그들한테 써묵었거든요. 올해는 절대 안 그럴 테니, 그러지 않게 부모님한테 가서 말하라고. 그리고는 안 받았습니다. 아 딱 한번 받았습니다. 중남이 할아버지가 소주 한 잔 걸치시고 만 원 주시면서 나 무시허요? 받으시오. 하시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서 중남이 영한사전 사줐어요. (웃음)"

-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교조 OUT' 이란 구호가 많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못하니까 그렇죠. 전남교육감 같은 경우는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인데,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작은 학교 통폐합을 밀어붙였어요. 인사 논란도 있었죠. 강원도교육청은 유천초등학교 혁신학교 지정을 일방적으로 철회한 교육청을 비판한 교사들을 부당 징계했습니다. 

17개 시도에서 14명이 진보, 그 중에 12명이 전교조 출신이었는디 이들이 전교조가 2005년부터 주장해온 대학서열철폐에 대해 단 한번을 얘기한 적 없습니다. 대학무상교육, 수능폐지에 대해 입도 뻥끗 안 해요. 전교조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요. 

전교조가 한때 잘나갈때는 10만 육박했거든요. 그때가 2000년대 초반에 그랬는데 지금은 5만이 못돼요. 처음부터 전교조를 함께 했는데 탈퇴하고 싶었던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 이렇게 사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참, 이 모든 것들이요. 80년 오월 영령들한테 진 빚 때문이지요. 그때 저도 죽었어야 마땅한디 비겁허니 숨어 있었거든이라. 광주에 있음시로도 도청 한 번 나가도 못헌 놈이었그만요.

80년 그때 저는 대학 1학년이었습니다. 79년 박정희가 죽었을 때는 눈탱이가 퉁퉁 부을 정도로 서러워 울었고, 정치경제 선생님의 수업을 거부했답니다. 나름 공부 잘하는 놈이어서 그 분께 이쁨을 받았는디 박정희가 죽고 나자 그 전에는 '박정희 각하'라고 하셨던 분이 '박정희가야..'라고 하시길래, '불세출의 영웅께서 돌아가셨는디 말투가 험시로...' 그래서 수업 전에 엎드려서 자는 체하고 안 일어났그만요.

근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진실을 담은 대자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박정희 저주하는 시를 갈겨쓰게 되었습니다. 5월 16일 금요일 전남대서부터 금남로 분수대까지 거리행진하고 다시 전남대 대운동장으로 갑니다. 헤어지기 전, 군대가 대학을 점령할 지도 모릉게 지킬 사람들은 남고 집에 갈 사람들은 가라고 해서 일단 집에 갑니다. 토요일이 지나고 18일이 되었지요.

제 집은 광주 지산동 법원 앞 한길에서 오복사라는 문방구점을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가게를 보고 있었습니다. 몇 시나 되었는지는 모르겄습니다만 군인들을 실은 차들이 지나댕기기 시작했습니다. 철모를 쓰고 철모 얼굴 쪽에는 철망이 있었지요. 총에 칼을 꽃고 서있었는디 모두들 얼굴이 불으족족했그만요.

그런 장면을 몇 번이나 봤음시로도 계속 가게에 있었답니다. 그런디 동네에 아부지 아는 할머니 한 분이 가게로 오심시로 낯빛이 흑빛이 되야가꼬, '아이고, 어째 아들을 역다 두고 있소, 언능 숨기쑈!' 하시등만요. 그럼시로 시내에는 난리가 나가지고 군인들이 닥치는 대로 패고 쏘고 그런다고....

나도 모르게 집 안으로 뛰쳐 들어갔습니다. 손에 잡힐 만한 것 찾을 셈으로 갔는디 마침 문 앞에 철근 하나가 있등만요. 그것을 들고 문을 막 여는디 아부지가 막아서십디다. '아들아, 너 가믄 죽어야!' 옥신각신했는디 아부지가 물팍을 꿇으십니다. '너, 갈라믄 고놈으로 나 죽이고 가그라.'

다 변명입니다. 항쟁 열흘 동안 단 한번도 도청에 가보지 않았고, 최후의 날 도청으로 나와서 학생들 지켜도란 말을 들었음시로도 꿈쩍도 안 하고 있었그만요. 지금은 사람들이 그럽니다, 인자 고만해라, 늬 나이가 몇이냐? 후배들한테 물려줘라고 말입니다. 오월 영령들한테 진 빚 다 갚을라믄... 죽을 때까지 해야제라."

8년동안 세월호에 대해서만 이야기 나누다가 처음으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 한사람 마다 그 안에 우주가 있다는 이야기처럼 그의 인생에는 흥과 분노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별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낡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교육, 사회 국가의 문제에 해결을 요구하는 이야기가 담긴 피켓을 꺼내들고 진도 작은 거리에서 피케팅을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전교조는 89년 5월에 가입해서 탈퇴각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8월 19일에 해직되고나서 전교조에 상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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