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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이 낳고 키우기 싫어지는 덴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아이 낳고 키우기 싫어지는 덴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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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의 출산율을 언급하여 화제가 됐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이 0.84에 불과하고, 3세대만 지나면 현재 한국 인구의 6%만 남게 되며, 대부분의 인구는 60세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머스크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역시 인구 소멸 현상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가 이처럼 말한 건, 미국의 출산율이 대체출산율에 비해 낮으므로 출산율을 올려야 한다고 지적하는 맥락에서 비롯됐다. 대체출산율이란 한 국가가 인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율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대체출산율을 2.1로 간주하지만, 사망률이 높은 국가에서는 대체출산율이 높은 편이다.

머스크가 한국의 미래 인구에 관해 언급한 수치의 정확성은 대단히 의심스럽지만,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라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렴 3세대만 지나면 한국 인구가 현재의 6%가 되겠는가. 현재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이라고 가정하면, 6%는 300만 명에 불과한데, 이런 수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늦어지고 줄어드는 혼인과 수명 연장 때문에 3세대를 90년이 아니라 넉넉히 120년 정도로 잡는다면, 2140년에 한국 인구가 정말 이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의 통계청은 이미 50년 후인 2070년에는 3700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아가 감사원도 장기 인구 추계를 연구한 결과 2017년 5136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한국 인구가 2117년에는 1500만 명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의 출산율이 계속 0.84를 유지할 가능성은 낮다. 0.84는 2020년 통계다. 한국의 출산율은 2021년에 0.81로 떨어졌으며, 올해는 어쩌면 0.7대를 기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국 인구는 통계청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바야흐로 한국 소멸론이 등장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적정 인구는 2천만 명이라는 별로 믿을 만하지 않은 수치도 들리고, 인구가 줄어드니까 축복이라는 말도 나온다.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인구가 줄어들면 확실히 좋은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인구가 너무 빠르게 감소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고령자만 남고 젊은이들이 줄어들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의문스럽다. 이미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최고인 시점에서 노인만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그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아가 노동인구 급감 상황에서 경제성장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인구 절벽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래서 

한국의 인구 감소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성의 문제다. 인구 절벽 현상은 미래에 반드시 일어난다. 단기간에 이 추세를 변화시킬 방법은 없으며, 인구 감소는 정해진 코스대로 가게 된다. 40~50년 전에 공립학교의 한 반에 70~80명이 있었던 때를 기억하면 간단하다. 이제 한 반에 20~30명 남았으니, 그것이 눈에 띄는 출산율 감소 결과의 하나다. 거기에다 폐교되는 학교들이 늘어난다는 것까지 더해서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출산율 급감의 현실이다.

사실, 한국 출산율에 관해서는 너무 많이 거론되어서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인구 감소와 저출산 추세의 원인을 밝혀서 주목된다. 이 글에서 나는 한국의 저출산에 관한 이 잡지의 분석을 설명하고 나의 생각을 덧붙이고 싶다("Asia's advanced economies now have lower birth rates than Japan").

대한민국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드라마틱하게 줄어들고 있다. 합계출산율이란 가임여성(15~49세)이 일생 동안 출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를 연령별로 총합하여 평균 수치화한 것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 1.24에서 2021년 0.81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2015년 43만8400명이었던 출생아 숫자는 2020년에는 27만2400명으로 줄어들었다.

주로 거론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 하락 원인은 이렇다.

첫째, 한국인은 혼외 자녀를 거의 낳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혼외 자녀 출산은 2%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다른 OECD 국가들의 혼외 자녀 출산율은 20%~70%에 이른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이나 일본에서 유교적 전통이 여전히 강하며, 산업화 이래 급변해온 가족 개념에 대한 저항이 강한 데서 비롯됐다.

한국에서는 1970년 이래 급격한 산업화 이래 급격한 가족 체제의 붕괴 내지 해체가 이뤄져왔다 가족체제는 전통적인 대가족에서 부부와 직계 자녀 중심의 핵가족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1인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인가구 증가는 사회 전반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1인가구가 증가하고 혼인 연령이 높아지면서, 비혼인 커플의 동거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비혼인 동거 커플 또는 나아가 비혼인 비동거 커플 사이에 아이를 낳는 것은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강하다. 특히 미혼모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안 좋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에 대한 시선도 매우 차별적이다.

비혼인 커플 사이의 신생아에 대한 사회문화적 법적 보호 장치는 거의 전무하다. 혼외 자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전통적 가치체계는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강하게 남아 있다. 21세기 디지털 사회로 급속히 전환되는 상황에서도 한국인은 혼외자녀 출생을 매우 불순하고 저급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혼인을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혼과 만혼, 이혼과 비혼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전 스토리를 좋아하는 6070세대의 '라떼' 경험에 따르면, 여자는 대체로 20대 초에 결혼했으며, 어떻게 해서든 30세가 되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문구는 실제로는 30대 미혼 여성에 대한 사회심리적 압박 용어였다. 서둘러 결혼하지 않아서 여성 특유의 히스테리가 발생한다는 여성 비하적인 언어 폭력이었다. 모두 지난 얘기다.

요즘은 여성이 서른 아니라 마흔을 넘어서 미혼이라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한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혼자 산다. 그들은 다른 또래 남성들과 함께 혼인하지 않으면서 1인가구를 발전시키고 싱글족 문화를 발전시켰다.

싱글족이 급속히 증가한다는 것은 가족제도에 심각한 변화를 일으킨다. 말이 1인가구이지, 실은 가족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족이 급속하게 해체되는 마당에 혼외 출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신생아 출산은 어디에서 발생할 수 있는가. 한국사회에서 혼외 출산에 대한 법적 문화적 부정적 시각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혼전 임신, 싱글맘, 미혼모, 비혼모, 비혼부 등에 대한 사회문화적 법적 차별이 없어져야 하고 이들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가능해야만 혼외 출산은 늘어날 수 있다.

둘째, 한국의 교육비가 너무 비싸다. 2018년 기준 한국의 대학 교육비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공립대학 기준으로는 8위(4886달러), 사립대학 기준으로는 4위(8760달러)에 속한다. 한국은 비싼 대학 등록금만 문제가 아니다. 공교육 이외에 사교육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다. 대학에 가기 이전에 초등학교 때부터 또는 그 이전부터 사교육비가 가계의 주요 지출 항목이 된다.

'라떼'에는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이 '군대' 문제를 제외하고는 4년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수많은 대학생들은 4년으로는 턱도 없다. 대학교 5학년과 6학년이 수두룩하다. 2019년 8월 기준 서울의 주요 대학 졸업 소요 기간은 평균 5년 11개월! 4년제 대학이라는 말은 이제 낡은 단어다.

졸업이 늦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휴학이다. 대학생들의 주된 휴학 원인은 취업이나 취업 준비다. 대졸자 가운데 휴학 경험자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54.3%에 이른다. 자격증을 따거나 해외 연수를 가거나 취업을 위해 일부러 졸업을 유예하면서 대학교 5, 6학년이 늘어났다. 다시 말해서, 대학 졸업 지연과 취업 불안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취업이 불안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대학 졸업도 연애도 혼인도 모두 미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결혼 풍습도 문제다. 한국에서 자녀 결혼은 당사자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막대한 지출을 초래한다. 일반적으로 아들은 거주할 집을, 딸은 막대한 혼수를 요구당하는 관습이 특이하게 자리잡고 있다. 결혼하면서 중대형 '자가' 아파트로 시작하는 것은 금수저 출신자들의 신혼생활이고, 월세로 시작하는 것은 흙수저 출신자들의 신혼 생활이다. 그로 인해 자녀를 결혼시켜야 하는 부모의 경제적 부담은 엄청나다.

그것은 그들이 은퇴해서 살아야 할 수십 년의 생애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경제적 의미에서, 현재 빠르게 은퇴하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한국이 지금처럼 부강하고 풍요로울 때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을 이해한다고 해도, 한국의 부모들은 막대한 자녀 혼인 비용을 제공하는 관습을 당장 없애야 한다.

자녀에게 해주는 막대한 혼수 비용이 합법적으로 증여되는 것인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결혼식 비용 또한 너무 비싸다. 이렇게 비싼 혼인식과 신혼 집 마련 관습은 이제 은퇴해서 살아야 하는 부모 세대의 미래를 암담하게 하고, 젊은이들의 혼인을 미루게 하는 이유가 된다.

셋째, 집값이 너무 비싸다. 한국에서 집은 주거 공간이라는 개념보다 구매 공간 또는 투자 공간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물론 혼인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모두 집이 필요하다. 혼인해서 입주할 신혼 집이 필요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아이를 위한 방도 필요하다. 게다가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 또한 엄청나다. 자녀 하나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듣기만 해도 현기증 난다. "라떼"에는 낳기만 하면 아이가 자기 밥그릇 들고 나온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대학부터 서울과 경기도로 모여드는 것은 매우 심각한 지역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역대 정권의 잘못된 정책에서 나온 결과다. 주요 경제적 문화적 자원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방에 남아 있는 청년은 도태된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는 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일본이 출산율에서 그나마 나아진 것은 집값이 안정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서 경제 저성장과 집값 하락으로 인해 출산율이 개선됐다는, 상관성이 모호하고 약간 괴상한 논리 아닌 논리가 나온다.

한국사회에서 1인가구의 발전은 부동산 시장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1인가구 증가는 부동산 시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부동산 시장에는 1인가구 맞춤형 소형 아파트들이 대폭 증가했다. 그로 인해 아무리 아파트를 많이 '공급'해도 아파트 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술적 혼란이 존재하게 되었다. 부동산 활황 옹호론자들은 인구가 줄어도 가구는 늘어난다는 환상을 줄기차게 외친다.

그런 주장은 어쩌면 앞으로도 수년간 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드디어 마지막 때가 다가오고 있다. 투기로 물든 부동산 시장에서 시골이든 도시든 빈집이 빠르게 늘어나고, '절대' 인구는 이미 2년 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1인가구가 늘어도 절대 가구 숫자마저 줄게 되어 있다. 일부 핫스팟만 제외하고, 집값 폭락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출산율과 다가오는 인구절벽을 생각하면 머지 않아 필연적으로 다가올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부동산 시장 활황은 인구보다 정책에 의해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요즘 금리 인상이 진행되면서 이미 집값 하락세가 뚜렷하다. 진작에 보유세와 증여세 등을 대폭 올리고, 대출 조건만 올바로 강화했어도 '미친' 집값 폭등은 없었을 것이고 '영끌'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만 특이하게 존재하는 전세 제도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이용한 갭투자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투기성을 강력하게 제한했어야 마땅하다.

정부가 최고 부유층의 조세저항에 굴복하고 건설산업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겠다고 버틴 결과 생긴 피해는 오롯이 집 없는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그들에게는 경제성장이 상대적으로 낮아져서 생길 수 있는 피해보다 집값 폭등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것이다. 가만히 있는데 '벼락거지'가 됐으니 하는 말이다.

결국 정권의 선택 문제였다. 부동산과 건설 경제에 의존해 온 정권들은 말로만 지역간 균형 발전을 외쳤지, 실제로는 지속적으로 '서울공화국'을 건설해왔다. 점점 대형화하고 고급스러워지는 대규모 단지 아파트 건설은 서울공화국의 상징과도 같다.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 내에서도 주거 문화의 경쟁을 가속화하고 폐쇄성 및 배타성을 증진시키고 있다. 담으로 둘러싸인 단지의 화려함과 높이와 크기는 곧 권력이다. 단지의 서열이 곧 권력의 서열과 같다.

결국 인구는 절벽으로 치닫고 있고, 지방은 소멸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도, 서울과 인근 경기 지역은 포화 상태다. 포화 상태가 되어 아우성이니, 진보든 보수든 정권들은 주거 편의를 위해서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의미로는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거기에다 규제를 풀고 더 높은 집을 더 많이 지어주겠다고 한다.

그것이 모자라서 거기에다 고속철을 깔아 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래야만 먼 거리에 사는 사람들마저 서울 도심으로 몰려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투기꾼들과 불쌍한 실 거주자들이 더욱 서울로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사실 한국의 출산율 급감은 이 세 가지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이 세 가지 지적 만으로도 출산율이 급감하는 사정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인다. 이 세 가지 사정 모두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맛을 잃게 만들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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