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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 14일 열린 국회 '5공비리 조사특위 일해재단 청문회'에 참석해 질의를 경청하는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왼쪽부터),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모습.
 1988년 12월 14일 열린 국회 "5공비리 조사특위 일해재단 청문회"에 참석해 질의를 경청하는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왼쪽부터),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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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아래 5.18) 당시 발포 등 작전지휘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계엄사(계엄사령부) 라인'과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 라인'으로 이원화돼 있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돼 왔다. 즉 '계엄사령부(육군본부)-2군사령부-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31사단-공수여단'이라는 정식지휘계통 외에 '보안사-특전사(육군특수전사령부)-공수여단'로 이어지는 보안사 라인을 통해 5.18 진압을 위한 실질적인 작전지휘가 행해졌다는 것이다.

당시 보안사령관은 전두환이었고, 특전사령관은 정호용이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2021년 11월 사망)와 정호용 전 사령관은 발포를 포함한 작전지휘권 행사를 줄곧 부인해왔다. 그런 가운데 주목해야 할 인사는 전두환씨의 심복이자 '5공 실세'로 평가받는 장세동(87, 육사 16기) 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부장이다. 5.18 당시 장세동 전 부장은 특전사 작전처장(작전참모, 대령)이었다. 

"장세동 처장, 특전사령관보다 더 파워가 있었다"     
 
2012년 6월 24일 오전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제1회 특전사마라톤 대회' 개회식에서 12.12쿠데타, 5.18광주학살 관련 국방부장관을 지낸 정호용 특전사전우회 회장과 전두환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낸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5공 인사들이 군인과 일반인 등 참가자들을 향해 거수경례로 인사를 하고 있다.
 2012년 6월 24일 오전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제1회 특전사마라톤 대회" 개회식에서 12.12쿠데타, 5.18광주학살 관련 국방부장관을 지낸 정호용 특전사전우회 회장과 전두환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낸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5공 인사들이 군인과 일반인 등 참가자들을 향해 거수경례로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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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 위원장 송선태)는 5.18 당시 장세동 전 부장의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 특전사에서 근무한 장교와 하사관 등을 최근 면담했다. 당시 특전사 작전처에 근무한 김아무개 대위와 박아무개 선임하사관(상사) 등이다. 면담대상에는 정호용 전 사령관의 전속부관을 지낸 최종대(육사 31기, 예비역 대령) 현 불암회(육사 11기~20기 장성출신 모임) 사무총장도 포함됐다.    

<오마이뉴스>가 최근 입수한 김아무개 대위와 박아무개 선임하사관의 면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5.18 당시 대령이었던 장세동 전 부장은 군부 내 권세(파워)가 막강'했고, '5.18 이전에 광주에 내려갔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됐다. 특히 장세동 전 부장은 5.18 진압 작전이 끝난 뒤에 특전사에 전화를 걸어 "마침내 일을 끝냈다"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김 대위는 5.18진상조사위 면담(3월 26일)에서 '장세동 처장이 당시 파워가 막강했다고 하는데...'라고 조사관이 묻자 "아주 막강했다"라며 "(정호용) 사령관보다 더 파워가 있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정호용 사령관도 장세동 대령을 무시하지 못했고, 어떤 일이 있으면 그(장세동)와 의논하곤 했다"라고 밝혔다.    

"(장세동 처장이 특전사에) 처음에 올 때부터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직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와서도 다른 처장들은 함부로 범접하지도 못했다. 그런 처지이다 보니 우리(작전처)가 다른 처장에게 뭔가 결재를 받을 일이 있어 찾아가면 보지도 않고 바로 해줬다."

박 하사관도 '당시 다른 부대원들의 증언을 들으니 장세동 대령의 파워가 막강했다고 하는데 실제는 어땠나?'라는 조사관의 질문에 "아주 대단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다른 처장들도 장세동 작전참모의 방 문을 함부로 열지 못하고 항상 내게 안내를 부탁할 정도였다"라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직계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 대위는 "(장세동 처장이) 일도 열심히 했지만 부하 직원들에게도 잘 대해줬다"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사비로라도 신경을 써줬는데 그건 전두환 사령관에게 배운 것 같다. 사람관리를 아주 잘했다"라고 장세동 전 부장을 평가했다. 박 하사관도 "(장세동 처장이) 일도 아주 열심히 했다"라고 전했다.    

"나중에 '마침내 일을 다 끝냈다'고 전화가 왔다"
 
1980년 5.18 당시 시민들과 계엄군들이 금남로에서 대치하고 있다.
 1980년 5.18 당시 시민들과 계엄군들이 금남로에서 대치하고 있다.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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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장세동 전 부장이 5.18 이전에 광주에 내려갔다는 것과 관련해 박 하사관은 "장세동 처장이 광주에 갔다 왔다"라며 "나중에 (작전이) 끝나고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전화가 왔었다. '마침내 일을 다 끝냈다'고"라고 전했다. 

- (장세동 참모가) 처음에 광주에 내려갈 때 지시사항은 없었나?
"내 책상이 처장실 바로 앞에 있었는데 나보고 처장실에 들어가 자리를 비우지 말고 전화를 꼭 받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 그럼 중간에 (장세동 참모로부터) 전화가 왔었나?
 
"중간에 전화 온 일은 없었다. 나중에 다 끝났다고만 연락이 왔다."

- 혹시 나중에 광주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본 적은 있나?
"어떻게 그런 말을 물을 수 있나?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

5.18진상조사위 조사관은 김 대위와의 면담에서 "장세동 작전처장이 1980년 5월 7일인가 박아무개 중령, 최아무개 중사 그리고 2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광주에 내려가 도청소탕작전이 끝날 때까지 있었다고 하는데"라고 장세동 전 부장의 광주행을 언급했다. 

당시 특전사 보안반장으로 있으면서 특전사령관(정호용)의 동향을 관찰해 보안사에 보고했던 김충립 현 5.18진상조사위 전문위원도 지난 2018년 5월 두 차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장세동이 5월 17일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기 수일 전에 광주에 내려갔다'라는 증언을 내놓은 바 있다(관련기사 : "장세동은 5·18 수일 전에 왜 광주에 내려갔을까?" http://bit.ly/99vsxi ). 이는 5.18 진압이 '보안사 라인'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1980년 5월 17일 전국으로 계엄을 확대하는 조치가 있었다. 거기에 따라 병력 투입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 이전에 이미 장세동이 광주에 내려갔다. 장세동이 내려갈 때부터 병력출동, 부대배치, 작전계획 등이 다 수립돼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충립 위원은 당시 인터뷰에서 "(형식적으로 보면) 계엄 확대는 계엄사에서 나오지만 계엄 확대에 대비하는 것은 (신군부의) 핵심 인물들이 했다"라며 "계엄사가 5월 17일 병력 투입을 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전에 광주 '소요'에 대비하기 위한 병력 배치가 보안사에 의해 이뤄졌다"라고 주장했다.

장세동 전 부장도 지난 2019년 3월 MBC 탐사보도프로그램 '스트레이트'에 "내가 (광주에 간 것은) (5월) 14일~18일 사이"라며 "마지막 작전은 보고 올라왔지"라고 털어놨다. 박 하사관이나 김충립 위원의 증언처럼 장세동 전 부장이 5.18 수 일 전에 광주에 내려갔다가 작전 후에 부대에 복귀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다만 당시 특전사령관의 전속부관이었던 최종대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장세동 전 부장의 작전지휘권 행사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장세동 처장이 작전을 지휘할 수 없다"라며 "광주에 내려가도 사령관에게 반드시 보고해야 하고, (광주 현지에 가서도) 이래라 저래라 (작전지휘를)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VHF 통신 등을 통해 광주 상황 잘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김아무개 대위는 "그 기간(5.18) 동안 각 처장들이 돌아가며 관리를 했고, 매일 아침 그 전날의 상황을 처장들에게 보고했다"라며 "(정호용 사령관에게는) 직접 하지 않고 그날그날 각 처장들에게 보고하면 그 내용들이 사령관에게 보고되지 않았겠나?"라고 당시 특전사 보고체계를 설명했다. 

'장세동 처장도 상황보고를 받았나?'라는 조사관의 질문에 김 대위는 "당연히 받았다"라며 "상황일지에 각 처장들이 사인을 했다, 장세동 처장도 사인했는데 동녘 '東'자를 썼다, 찾아보면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상황보고 등을 위한 통신운용과 관련 김 대위는 "그때 유선은 통화가 되지 않았고, 무선도 되지 않았다"라며 "유일하게 유무선 통신은 살아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에 조사관이 '혹시 VHF 통신(초단파대 송수신기를 이용한 단거리 통신)을 운용했다는 말인가?'라고 캐묻자 김 대위는 "그랬을 것"이라며 "그때 밖에 설치한 안테나에서 무선으로 수신하면 그곳으로부터 상황실까지 유선이 깔려 있어 상황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광주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5.18진상조사위는 이러한 면담 결과에 대해 ▲장세동이 특전사 부대원들이 인정할 정도의 파워를 가진 실세라는 점 ▲ 장세동이 5.18 이전에 광주에 내려간 점 ▲광주 현지와 특전사 간의 상황보고시 VHF 통신 장비를 운용했을 가능성 등을 확인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현재까지는 모든 문헌에서 장세동 행적을 발견할 수 없다"라며 광주 방문에 동행한 부대원 면담을 추진하고, 장 전 부장의 광주 행적, 정확한 일자, 방문 목적,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추적해야 하는 점을 과제로 적시했다. 

"장세동, 베트남 세 번 참전했지만..." 
 
전두환씨가 사망한 2021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씨 자택에서 측근 장세동씨가 조문을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고 있다.
 전두환씨가 사망한 2021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씨 자택에서 측근 장세동씨가 조문을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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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장세동 전 부장은 서울 성동공고와 육사를 졸업한 뒤 군에 입문해 제1공수특전단과 육군수도보병사단 30경비대대, 제9보병사단을 거쳐 육군본부와 대통령 경호실 등에서 근무했다. 특히 세 차례 베트남전에 참전했는데 쇄골이 부러지는 관통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위문을 온 전두환씨를 만나 이후 그의 '심복'이 됐다.

1979년 12.12 신군부 반란 때 수경사 제30경비단장으로 직속상관이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는 등 반란에 적극 가담했다. 이후 특전사 작전참모와 특전사 제3공수여단장(준장)으로 승진했다. 

5공화국이 출범한 이후에는 대통령 경호실장(1981년~1985년)과 안기부장(1985년~1987년)을 지내면서 '남산의 대통령'으로 불렸을 정도로 '5공 실세'이자 '2인자'였다. 심지어 노태우·노신영 등과 함께 전두환씨의 후계자로까지 거론됐다.

육군참모총장이 꿈이었던 그를 대통령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에 발탁한 것은 전두환 씨가 또다른 5공 실세였던 허화평·허삼수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가 안기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금강산댐 조작사건, 수지김 간접조작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용팔이사건(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이 일어났다. 

그는 1987년 6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하자 안기부장에서 물러났다. 1988년 5공청문회에 참석해서는 "기억이 안난다"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반면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준 사람을 위해 죽는 법이다" "차라리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각하가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라며 전두환씨를 엄호했다. 이로 인해 '의리의 사나이' '의리의 돌쇠'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용팔이사건, 12.12와 5.18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돼 두 차례 투옥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지난 1998년에 사면복권됐다. 

2002년에는 전두환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다가 중도 사퇴했고, 2004년에는 서울 서초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3위로 낙선했다. 지난 2014년 6월에는 12.12에 가담한 장성들과 함께 국방부를 상대로 군인연금 지급거부 취소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장세동 전 부장의 근황과 관련, 최종대 사무총장은 "그분은 연금도 못받게 돼 생활이 곤궁한 것으로 안다"라며 "최근 친한 동기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아파트를 (담보로) 잡혀서 주택연금으로 산다고 들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 군인으로는 유일무이하게 월남전에 세 번이나 간 사람인데 연금도 못받고 얼마나 열불이 나겠다?"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정호용 특전사 사령관, 5.18 작전지휘에서 벗어나 있었다" http://omn.kr/1yxvi
"전두환 돌 맞더라도 5.18 사과하러 가자 했다, 이제 가족이 결단해야" http://omn.kr/1ytv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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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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