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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2년 대전시 감정노동존중 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이진수씨의 글입니다.[편집자말]
나는 지하철 역무원이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나는 지하철 역무원이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 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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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욕을 먹었다.

답답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달래려 지하에서 올라와 하늘을 향해 또 다시 한숨을 짓듯 담배 한 대를 문다.

나는 지하철 역무원이다. 이곳에서 일한 지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고맙다고 아침에 우유 한 팩 가져다주던 아이도 있었고, 아파 쓰러져 있는 아이를 챙겨줘서 고맙다고 에너지음료를 보내준 아이 엄마도 있었으며, 지나가며 고생한다고 떡 하나 챙겨주시던 할머니도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제일 많이 떠오르는 건 쓰레기를 버리듯 욕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다.

욕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

처음으로 욕을 버린 사람은 술에 취해 있었다. 일하던 역 근처에 화상경마장이 있었다. 경마는 금·토·일 3일만 오후 6시가 지나면 한 번에 200~300여 명의 사람이 20분가량 끊임없이 몰려나온다.

그날도 그랬다. 오후 10시경, 갑자기 대합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러 급히 갔더니 중년 남자가 발매기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술에 잔뜩 취한 얼굴로 침을 튀기며 욕을 해대는데 금방이라도 뒷춤에서 뭐라도 꺼내 휘두를 것만 같았다.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돌아온 건 욕이요, 무릎을 꿇으라는 소리뿐이었다.

"야 이 XXX야 꿇어! 너희들이 나를 무시해?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런 XXX가 무릎 꿇어 XXXX아!"

당황하고 무서웠지만 설득해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승차권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기계가 자기를 무시하며 승차권을 내놓지 않으니 너희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남자의 손을 바라봤다. 남자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신용카드였다.

남자는 무료승차권인 우대권을 받는 대상이었다. 그러려면 복지카드를 발권기에 넣어 인식해야 하는데, 이 남자는 신용카드를 복지카드로 착각해 우대권이 발급되지 않자 소리 지르며 난동을 부린 것이다. 남자에게 이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돌아오는 건 욕설뿐이었다.

한참 난동을 부리던 그 남자는 누군가 신고한 경찰이 오자 바로 잠잠해졌고 우대권을 뽑아서 지하철을 타고 갔다. 역무실로 들어오자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떨리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한 바가지를 먹어야 했으며 몸으로 밀치던 걸 맞고만 있어야 했을까. 너무 억울했다.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분했다.

그 이후로도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갔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술 취한 사람은 진상도 아니었다. 

시작부터 반말로 시작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자신이 조금이라도 손해 봤다고 생각하면 역장을 찾고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고 우대권을 내놓으라 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명이다.

우대권은 신분증을 갖고 기기에서 발급받아 사용하거나 교통복지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 당연하듯 그냥 우대권을 달라는 사람을 무시하기에는 후환이 너무 크다. 100% 말싸움하거나 욕을 먹는다. 심할 때는 역무실까지 들어와 욕하고 손찌검하며 자식들까지 함께 찾아와서 민원을 넣는다. 신분증 없이 무조건 우대권을 달라는 사람들의 말은 거의 같다.

"얼굴 보면 알잖아?" 
"오늘 가방을 바꿔서 지갑을 놓고 왔으니까 하나 줘."
"신분증을 잃어버렸는데 한 달 넘게 걸린다는데, 하나 줘." 
"아들이 다른 지방 사는 데 필요하다고 가져가서 아직 안 가져왔어. 다음에 가져올 테니까 한 번만 줘."


아무 말 없이 "야"라고 부르며 손만 내미는 사람도 있다. 말하기도 귀찮은 걸까. 그런데 이런 사람이 꽤 많다.

역무원은 욕받이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제일 많이 떠오르는 건 쓰레기를 버리듯 욕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다.
 머릿속에서 제일 많이 떠오르는 건 쓰레기를 버리듯 욕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다.
ⓒ 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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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욕을 먹는 건 욕하는 사람의 일진이 사나웠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우리가 있었던 것이다. 앞에 맘대로 해도 되는 내가 있고 자신은 기분이 나쁘니 욕을 하고 부모를 찾고 주먹질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분, 내가 나쁘게 한 게 아니다.

그렇게 나, 우리 역무원은 욕받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화를 자신보다 낮아 보이는 사람에게 화풀이하고 기분을 정화하려 한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는 이들이니 내가 월급 주는 거다. 그러니 내 맘대로 해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이 한바탕 욕을 쏟아내고 나면 경찰이 온다. 그러면 얼굴이 변한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한다. 욕받이를 당하고 모욕당하고 폭행을 당했지만 우리는 그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이렇게 말한다.

"아니에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물론 역무원도 실수한다. 말실수하거나 일하면서 숙지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일 처리가 매끄럽지 않아 이용에 차질을 빚거나 하는 일도 종종 있다. 분명 우리의 잘못이다. 내가 잘못한 것에 욕을 먹는 건 할 말도 없고 억울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냥 운이 없어 그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있었고 욕을 먹고도 아무 말 못 한 채 웃기만 해야 하는 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특히나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넌 싹수도 없다, 넌 아비·어미도 없냐'라는 말을 들을 땐 정말 화가 난다.

나, 우리 역무원은 욕받이가 아니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어느 캠페인의 슬로건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감정을 가진 사람이며 당당히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어리게 보인다고, 기분 나쁘다고 사람을 무시하고 하찮게 보는 행동은 사라져야 한다.

욕을 하는 본인들도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저 사람은 나보다 약자야. 내가 더 힘이 있으니까 해도 돼'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언제든 자신이 약자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의 가족이 욕받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자제하고 절제하고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를 존중한다면 감정을 상할 일도, 감정노동자라는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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