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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테니스를 처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마침 US 오픈 기간이었다. 동호회 사람들과 모여서 US 오픈 경기를 보며 테니스의 매력에 더욱 흠뻑 빠지게 되었다. 경기 진행을 보면서 점수 계산하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했고, 그 당시 유명했던 선수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게 되었다.

테니스를 칠 때 선수들의 몸 동작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우스갯소리로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라는 미국, 호주,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 경기 시기에는 전국의 테니스 동호회 사람들 실력이 월등히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새로운 취미에 발을 들이게 되면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부가적인 요소들도 내 삶에 따라오게 된다. 피아노도 그랬다.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보고
 
피아노를 치게 되면서 알게 된 것들
 피아노를 치게 되면서 알게 된 것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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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시작하고 주로 가요나 재즈, 팝을 즐겨 듣던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 클래식 음악이 추가되었다. 그것도 아무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바로 내가 연습하는 그 곡들.

내 귀에 익은 곡이 아닌 이상 한두 번 쳐 보고 곡의 전체적인 리듬감이나 박자감을 알기란 어렵다. 음은 또 어떻고. 아니, 사실은 내 귀에 익숙하다고 믿었던 곡들도 디테일하게 들어가다 보면 '어? 이 곡에 이런 부분이 있었나?' 싶은 소절들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자꾸 손가락이 헛돌며 박자를 놓치기 일쑤이다. 그래서 내가 치는 피아노 곡들을 찾아서 들어 보기 시작했다.

유튜브에는 나와 같은 초보자가 올린 연습 영상부터,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들이 올린 영상과 세계적인 유명 피아니스트의 연주까지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음악만 들으며 곡 자체에 익숙해지는데 집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곡 자체를 치는 것만이 아닌 "제대로" 치고 싶은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을 포함한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의 자세를 조금 더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손의 모양과 허리의 자세, 피아노와 앉은 의자 간의 거리 등을 유심히 관찰했다. 칠 때 손목은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손가락은 계란을 쥔 듯이 동그랗게 만들어서, 팔은 기본적으로 지면과 수평이 되고 어깨는 편안한 상태. 앉아 있을 때 피아노와의 거리는 팔꿈치가 편안하게 90도가 될 수 있는 정도의 거리.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을 직접 보면서 체득하는 것은 새로운 배움이다.

조금만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 목은 점점 앞으로, 허리는 구부정하고 손가락은 뻣뻣하게 펴지는 등, 처음의 자세는 곧 무너져 내렸지만, 항상 피아노 앞에 앉을 때는 조금은 경건하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유튜브에서 봤던 피아니스트들의 자세를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자세를 따라 하려고 보니 또 다른 것들을 개선해 나가야 했다. 가볍게 계란을 쥔 듯동그란 손 모양을 했더니 손톱이 건반 위에서 이리 저리 미끌려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평소에는 일이주에 한번쯤, 길어서 불편함이 느껴질 때까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방치해 두던 손톱을 일주일에 적어도 1회 이상 손질하면서 최대한 짧게 유지하기 시작했다.

허리를 펴고 앉아 있으려니 평소의 자세도 뜯어 고쳐야 했다. 평소 앉은 자세가 굉장히 안 좋은 편인 나는 최대한 다리를 꼬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나, 책상 앞에서도 허리를 세워 앉는 연습을 자꾸 하게 된다.

바른 자세를 조금씩 체화 하기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페달 밟는 것과 셈여림을 곡에 적용하는 것에 눈길이 갔다. 우연히 보게 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영상에서 페달을 어떤 식으로 밟는지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피아노 선생님 말씀처럼 약하게 쳐야 하는 곳에서는 상체가 숙여지면서 피아노에 더 가까워지고 세게 쳐야 할 때는 몸이 펴지면서 좀 더 큰 동작으로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그저 피아니스트들의 과도한 몸동작은 쇼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피아노를 치게 되면서는 그 모든 것들이 연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테니스를 몰랐던 때에 샤라포바가 공을 칠 때마다 지르는 소리가 그저 거슬렸다면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 후로는 나름대로 힘을 실어주는 그만의 방법임을 알게 됐듯이.

내가 좋아하는 (실은 전세계인이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연주 영상과 조성진의 연주 영상을 번갈아 보면서 디테일한 자세를 관찰하기에는 팔을 드러내는 여성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영상을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페달 밟는 것을 관찰하려면 바지를 입는 남성 피아니스트들의 연주 영상을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물론 페달 밟는 것을 관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대개의 연주 영상들은 연주자의 전신샷 보다는 얼굴 클로즈업이나 손 클로즈업, 상체를 주로 비춰 주기 때문이다(전신샷을 보여 주세요 ㅠㅠ).

같은 피아노 곡을 연주한 서로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영상을 돌려 보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구나를 알게 됐다. 같은 곡이라도 누군가의 연주는 좀 더 가볍고 경쾌한데, 누군가의 연주는 조금 더 묵직하고 웅장하다.

작년엔가 잠시 클래식 음악감상 모임에 몸 담았던 적이 있었다. 열성적으로 공유되는 연주회 영상들을 그저 "좋구나" 하고 넘겼었던 내가 직접 연주 영상을 찾아 다니고 심지어 같은 곡을 연주한 서로 다른 아티스트들의 영상을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다니... 실로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도달할 궁극의 지점

운동은 장비빨(?)이라고, 테니스를 칠 때는 라켓 브랜드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브랜드가 나에게 더 잘 맞는지, 줄을 어느 정도의 강도로 메어주는 것이 나에게 맞는지, 어느 브랜드의 공이 더 잘 맞는지 아닌지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장인은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하수인 나는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도 일단 운동복부터 사며, 운동은 역시 "장비빨"을 외치고 다녔다. 그런 나지만 피아노 앞에서는 함부로 장비빨을 논할 수가 없었다(아, 슬픈 현실).

한 대에 몇 억까지 하는 초고가형 피아노들을 처음엔 언감생심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피아노를 치면서 그런 피아노는 대체 어떤 소리가 날까 궁금해졌다. 그랜드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밖에 몰랐는데 찾아보면서 뵈젠도르퍼라는 피아노 메이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야마하 피아노가 내 생각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각종 그랜드 피아노를 비교하는 영상을 찾아 들으며 서로 다른 브랜드의 피아노 소리를 내가 구분할 수 있을지 셀프 테스트도 했다. 뭔가 다른 게 느껴지긴 했지만 딱 구분을 하라고 하면 (당연히) 못 할 것 같았다. 역시, 피아노는 장비빨을 함부로 논할 수 있는 취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일단 실력을 키우기부터 해야겠다.

나의 피아노는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이지만,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지점은 그 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피아노와 동행하는 길 위에서 곡의 난이도 뿐 아니라 조금씩 고쳐지는 자세, 페달 밟는 숙련도, 클래식에 대한 친밀도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 곡 한 곡 각각의 궁극의 지점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피아노를 배우는 여정에서 나는 또 어떤 부가적인 요소들을 얻게 될까? 피아노라는 취미가 피아노를 치는 행위에서 벗어나 내 삶의 다른 영역까지 확장 되는 것을 보면서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떤 취미 생활을 새로 시작한다는 것 역시 실은 어마어마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작은 가볍지만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 가볍지 않을, 당신만의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해 보기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개인 SNS에도 게재 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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