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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뭔가에 꽂히면 시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밥 먹는 중이든 버스에 오르는 중이든 이 우주에 내 의식만 오롯이 남는다. 모든 소리가 차단되고, 기다려달라고 말할 생각도 못 하고, 시간의 흐름도 못 느낀다.

얼마 전에도 데이트 중 어떤 책 정보에 꽂혀서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구경도 하는 둥 마는 둥, 애인이 모처럼 미래 계획을 얘기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싸해진 분위기에 뒤늦게 식은땀을 흘렸다. 다행히 요즘은 애인도 이게 ADHD의 과몰입 증상인 걸 이해하게 됐는지, 내가 사과하면 "어쩔 수 없지 뭐"라고 넘긴다. 그래도 미안하다. 증상을 이해한다고 서운한 마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애인은 내 온갖 구멍을 메워주고 있다. 버스에 타고내릴 때 해찰하지 않게 주의를 주고, 결제할 때 지역화폐에 충전이 돼 있는지 확인시키고, 하루에 한두 번씩 소지품을 찾아 헤매도 한 번도 놀리거나 타박하지 않고 같이 찾아준다. 자잘한 고민도 잘 들어준다. 그런데 나는 중요한 얘기조차 못 들어주고 있으니, 현타가 오곤 한다.

아, 나도 의지가 되는 사람이고 싶은데. 현실의 나는 자타공인 '손 많이 가는 사람'이다. 주변 사람 등에 빨대 꽂고 도움을 빨아먹고 산다. 직장이나 단체활동에서도 옆에서 챙겨주는 동료들이 한 명씩 있었다. 회의에서 못 들은 내용을 알려주고, 서류상의 실수를 잡아주고, 분위기 파악이 안 될 때 조언해 주는 사람들. 

인복이 있어 다행이지만 도움만 받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도움을 갚을 날도 요원하니 물질로 퉁칠 속셈이나 부린다. 앞뒤 안 가리고 "제가 낼게요!"가 습관이다. 여유가 되냐고? 그런 분별력이 있다면 난 ADHD인이 아니다. 결국 내 마음의 소리는 이렇게 수렴되곤 했다. "너나 잘하세요."

ADHD와 주변 사람

사실 주변에 적절히 의지할 줄 아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책 <겸손한 공감>을 쓴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사람은 다소간 의존적이면서 다소간 독립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의존과 독립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며, "의존적이면서 독립적이고, 독립적이면서 의존적일 수 있어야 건강한 관계"라는 얘기다.

특히 정신질환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치료로 나아갈 수 있다. 정신질환 치료에서 환경의 영향은 당사자의 의지만큼 크다. 동료 환자, 치료 제공자, 사랑이 넘치는 가족 또는 친구와의 지지적 상호관계가 환자의 내적 변화를 촉진한다. 나도 내 단점을 결핍으로 보지 않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비로소 나를 긍정적으로 보게 됐고 우울감이 사라졌다.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스스로조차 확신할 수 없는 가장 암울한 때에도 자신을 믿어주고, 좋은 때나 어려운 때나 오래도록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리베카 울리스,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중)
▲ 주변의 정서적 돌봄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스스로조차 확신할 수 없는 가장 암울한 때에도 자신을 믿어주고, 좋은 때나 어려운 때나 오래도록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리베카 울리스,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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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환우에게 이런 존재가 있다면 좋겠지만 불건강한 관계만 피해도 다행인 경우도 많다. ADHD를 가진 경우 가스라이팅에 취약하다는 점이 자주 지적된다. 자기 기준을 세우기 어려운 만큼 상대방의 기대치에 쉽게 압도되기 때문이다.

나도 몇 년이나 그런 관계 속에 있었지만 그게 정서적 착취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스스로 내 감정과 의견이 큰 가치가 없다고 여겼고, 이렇게 부족한 나를 상대가 '참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제를 겪는 사람일수록 내가 이 관계에서 편안하고 만족스러운지 돌아봐야 한다. 죄책감이나 부채감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는 마음이 있다면 직시하고, 물리적, 정신적, 시간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결국 주변에서 정서적 돌봄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라면, 그만큼 내가 내 마음을 돌봐줄 수밖에 없다. 시작은 "으이구, 나 참 짠하다"라는 생각이라도 좋다. 자기치유의 첫 단계는 자기연민이다.

잠들기 전에 '약손' 의식을 하고 있다. 마음챙김 안내를 들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 보고 내 마음이 어땠는지 들여다본다. 중요한 건 그 후 두 손으로 내 머리와 팔을 쓰다듬는 거다. 어구, 그랬어? 오야오야, 잘했다. 오구오구, 애썼네. 오글거려도 해보라고 해서 해봤는데, 왜 권하는지 알겠다. 이 짧은 시간이 오늘의 감정소모를 내일로 이어가지 않게 해준다. 내 수고를 내가 알아주는 건 제일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된다.

오래 쌓인 감정은 매일 조금씩 체기를 풀어준다. 몸에서 감정이 걸려 있는 곳을 느껴보고 정성들여 쓰다듬는다. 들숨에 신선한 에너지가 들어온다고 상상하고, 날숨에 부정적 에너지가 빠져나간다고 상상하며 심호흡한다. 성격 같아선 속을 양말처럼 뒤집어서 털어내고 싶지만, 온도를 높여 녹여내야만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나를 바라봐주어야 주변과의 관계도 보인다. 일단 나를 둘로 나눠보자. 내가 나의 할매가 돼주는 마음으로 오늘밤 셀프쓰담. 슬프다고? 아니다. 착각이다.

너무 많은 '나'

내 상처는 특별하지 않다. 내가 겪은 고통들은 끈질겼지만 평범했고, 정작 고통이라고 내놓을 만한 물성이 없었다. 세상에 하찮은 고통은 없지만 우월한 고통도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이고 감정은 감정인지라, 자격지심과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이 환장 콜라보를 한다. 내 금지옥엽 같은 고통을 누가 가벼이 여기진 않을까 자주 날이 서고, 남의 호의도 순수하게 믿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속으로 이렇게 궁시렁대고 있다. 내가 만만해 보이나? 호구 잡힌 거 아냐?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슈퍼 을' 같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관계 권력이 없다고 느끼는 증거니까.

자기연민이 너무 견고해질 때는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고 했다. 내 마음 밑바닥엔 어떤 고집스러움이 있는데, 마치 비를 맞지 못해 딱딱해진 땅 같고, 내 문제가 우선이라고 소리 없이 악을 쓰는 것 같다. 상대를 위로하려고 시작한 대화마저 '기승전나'로 흘러버리곤 한다. 내 속엔 아직 내가 너무도 많고, 내 마음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걸로 나를 구박하진 않는다. 앓아온 시간에 비해 알아준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니까. 그런 것치고는 오히려 빠르게 나아지는 셈이다. 시간이 더 지나 충분히 비에 젖으면 갈라진 땅이 초록을 품게 될 거다. 그때까지 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숨만 붙어 있으렴." 애인과 내가 주고받는 농담이다. 건강해야 한다거나 행복하게 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아만 있으라는 말. 요구 중에 제일 마음 가벼운 요구다. 아닌 게 아니라 이토록 부주의하고 앞뒤 안 가리는 내가 40년 가까이 살아 있다는 거, 대단한 업적이지 않은가.

마음을 보내는 5분
 
남을 위하는 마음이 나를 치유하기도 한다. 이타적인 행동이 사람의 통증을 경감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타인의 행복을 위한 행동을 할 때 고통에 반응하는 전측 대상피질의 반응이 감소하고 부정적 반응을 제어하는 복내측 전두전야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 나를 위한 이타심 남을 위하는 마음이 나를 치유하기도 한다. 이타적인 행동이 사람의 통증을 경감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타인의 행복을 위한 행동을 할 때 고통에 반응하는 전측 대상피질의 반응이 감소하고 부정적 반응을 제어하는 복내측 전두전야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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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국에서 일할 때, 대학원 동기인 U님이 카톡을 보내왔다. '오늘 꽃다발을 싸게 샀어요! 어머니께 꽃을 드릴까요?'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내 어머니가 있는 곳에 가서 꽃을 전했다. '배달 완료!' 기념일도 아니었고 내가 U님께 어머니 걱정을 한 것도 아니고, 이유라면 내가 직접 꽃을 드릴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얼마 전, 선물 받은 꽃다발을 보다가 U님이 떠올랐다. 친한 사이이긴 해도, 어떻게 꽃을 보고 혼자 계신 우리 어머니를 떠올렸을까. 주변을 돌보는 마음이란 그런 걸까? 뜬금없이 U님에게 카톡을 썼다. 그때 고마웠다고.

문득 내 일상이 정말 나로만 가득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하루 5분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 잠자리 의식은 셀프쓰담 후에 하나가 더 있다.

마음에 걸리는 이들이 누워 있을 자리를 상상한다. 웅크리고 잠든, 또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일 모습. 마음으로 바란다. 어머니가 편안히 주무시기를, 연인의 마음이 평화롭기를, 친구의 병이 순조롭게 낫기를, 상을 당한 친구의 슬픔이 잘 흘러가 주기를. 

그들의 마음이 어떨까, 상상한다. 그러다 보면 전에 나눈 대화나 잊고 있던 약속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 어떻게 돕지 못해도, 타인에게 사랑을 보낼 힘을 가졌다는 느낌은 필요한 때 누군가를 위해 쓸 에너지가 된다.

누가 그랬다. 막힌 부분이 풀리고 내가 완전히 평화로워지면 너와 나의 경계가 없어진다고. 나에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그렇게 거창한 일은 아닐 것 같다. 꽃이 지기 전에 한 번 더 바라보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손에 닿는 것들에 감응하는 일이란.

덧붙이는 글 | * 참고 도서
- 돌봄 관련: 리베카 울리스,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서울의학서적.
- 가스라이팅 관련: 에이미 말로 맥코이, <그게, 가스라이팅이야>, 에디토리.
- 이타적인 행동과 통증의 관계: 홋타 슈고,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 서사원, 164쪽. / 주간조선 기사(2022.5.8.) 친절한 행동 때 몸에서 놀라운 변화가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8995

* 브런치에도 연재합니다.(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

* 다음 화는 'ADHD약과 함께 사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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