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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띄는 제목을 발견했다.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 이수지 작가와 함께 2022 안데르센 상 최종 후보(Short List)에 올랐고, 볼로냐 라가치상 등 권위 있는 상을 여러 차례 받은 폴란드의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이다. 야누시 코르차크가 쓴 <마치우시 1세>를 재해석한 작품이란다. 우리에게 생소한 <마치우시 1세>는 폴란드의 국민도서와 같은 책으로,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버전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야누시 코르차크가 쓴 마치우시 1세를 재해석한 그림책
▲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 야누시 코르차크가 쓴 마치우시 1세를 재해석한 그림책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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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방정환, 폴란드엔 야누시 코르차크

1878년(또는 1879년) 태어난 야누시 코르차크는 스테파라는 여성과 함께 바르샤바에서 200명 규모의 유대인 고아의 집을 운영하며 교육에 헌신했던 폴란드 의사이자 아동 인권 운동가이다. 아동 교육 이론서를 썼고, 문학 작품도 남겼으며 나치의 탄압으로 어린이들이 수용소로 끌려갈 때 피신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들과 함께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당시 어른의 소유물, 어른에 비해 부족한 존재로 여겨졌던 어린이를 어른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고 주체성을 믿으며 실험적인 교육을 시행하였다.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금지하고, 모든 어린이들은 자기만의 비밀과 꿈을 가질 수 있고, 남자든 여자든 똑같은 권리를 지니고 같은 일을 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에 이러한 발상이라니. 이런 철학으로 어린이 교육을 실천한 코르차크는 시대를 앞서가는 교육자였다. 그는 어린이들이 사랑과 존중 및 성장과 발달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엄한 가르침도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아이들이 실패하거나 잘못을 저지를 권리도 있다고 했다.

7~14세의 어린이들은 '고아들의 집'에서 교육을 받으며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 각자 분담한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고 토요일마다 모여 중요한 결정과 알림을 실은 신문을 만들었다. 의회를 열어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정했으며, 문제가 있을 때는 선생님조차 법정에 서서 판결을 받았다.

어린이 법관들은 자신들의 판결로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기보다 자신들의 결정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 결과 말썽만 일으키던 거리의 어린이들이 청소와 같은 일상적인 일을 도맡으며 책임감과 자부심을 배우고, 자신의 일을 결정하고 책임지며 전과 달라지기 위해 노력하면서 성장해 갔다.

방정환 선생이 꿈은커녕 안전을 위협받고 생활 전선에 내몰리던 어린이를 위해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인권선언을 하는 등 어린이 존중에 애쓴 것에서 더 나아가 폴란드의 코르차크는 어린이를 미래의 어른이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 보았다. 1989년 유엔은 코르차크의 정신을 기려 '어린이 권리 협약'을 선포하고 권리 보장을 강조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재해석한 <마치우시 1세>
 
어른과 어린이의 정치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어린이의 왕'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어른과 어린이의 정치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어린이의 왕"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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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우시 1세'는 코르차크가 꿈꿨던 여러 가지 개혁을 시도한 '어린이 왕'이다.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나이에 왕이 된 그는 즉위하자마자 벌어진 세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어려움은 계속된다. 대신들의 틈에서 권력을 이해하려 애쓰며 좋은 왕이 되고자 민주주의를 도입한다.

어른과 어린이의 정치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어린이의 왕'이 되겠다고 선언한 뒤 밤 늦게까지 어린이들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하는 등 노력하지만 그의 이상과 달리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그는 권력을 다루는 것의 무게와 힘겨움을 차차 알아간다. 안타깝게도 민주주의를 위한 어린이 왕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다. 어린이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던 코르차크는 왜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일까?

이 궁금증을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이 풀어주었다. 앞표지 제목 아래,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바로 마치우시 1세다. 이 그림은 어린이 의회를 만든 후 혼란이 야기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왕의 권위는 찾아볼 수 없고 왕관이 눈을 가렸다. 마치 술래잡기의 술래처럼 보이지 않는 허공에 손을 뻗고 있는 그는 갈팡질팡 외롭고 힘겨워 보인다.

다른 그림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거인의 의자에 걸터앉은 것 같은 조그마한 마치우시 1세가 보인다. 의자는 왕관의 뾰족한 면에 위태롭게 서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아래로 넘어질 듯 조마조마함이 느껴진다. 책 속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왕관은 마치우시 1세가 직면하는 어려움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야누시 코르차크가 쓴 마치우시 1세를 재해석한 그림책
▲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 야누시 코르차크가 쓴 마치우시 1세를 재해석한 그림책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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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우시 1세의 개혁과 실패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신들(어른)의 눈이나 입,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드는 신문으로만 세상을 보고, 왕의 입장에서 명령을 내릴 뿐 진짜 세상을 알지 못하는 마치우시 1세. 그런 어린이의 왕을 보는 독자, 어린이들에게 어른과 동등한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린이도 실패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도 얼마든지 실패할 권리가 있고, 또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면서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힘을 믿으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패한 마치우시 1세를 통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올해 2022년은 어린이날이 제정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수많은 노력 끝에 어린이의 권리는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향상되었다. 지금 어린이들은 가족들 사이에서 왕처럼 대접받는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 개선과 복지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사회의 어린이들이 온전한 주체로 인정받고 있지 않은 듯하다. 자기 선택에 의해 충분히 실패하고 또 성장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받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양육자의 상황에 따라 목숨을 위협받는 학대의 위험에도 여전히 노출되어 있고, 소위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가족의 범주 내에서도 어른들이 옳다고 여기는 삶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어른들의 세계 속 미숙한 존재로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에 나오는 문장처럼,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일은 해보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체적인 자기 결정은 책임과 결과가 따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옳다고 믿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때 성장한다는 것을 안다.

어린이들이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그것이 더 좋은 내가 되고 세상을 만드는 당연한 과정이라 믿을 수 있게 지지해 주는 어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를 통해 어린이들이 스스로를 미완의 존재로 보지 않고,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은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더불어 어른들은 어린이에 대한 진정한 존중은 어떤 것일까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s://m.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

야누시 코르착 (지은이),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긴이), 사계절(2021)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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