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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8일 동아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지면(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2022년 4월 28일 동아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지면(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 동아,중앙,경향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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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과 관련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표현이 아무런 점검 없이 남용되고 있다. 제도권 신문과 공중파 텔레비전뿐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도 '검수완박'이란 말이 객관적인 용어처럼 마구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4월 28일 인터넷을 통해 각 신문의 관련 기사를 살펴보니, 보수-진보 매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제목에 '검수완박'이란 용어를 썼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는 1면 머리 기사 제목을 "검수완박 강행 vs 저지 ... 여야 총력전"으로, <동아일보>는 "민주, 검수완박 강행에... 윤 측 "국민투표""로, <조선일보>는 머리기사의 부제목에 검수완박 용어를 집어넣었다. 진보 성향의 <경향신문>도 "검수완박 법안 상정... 30일, 내달 3일 표결"로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달았다. <한겨레>는 1면에는 '수사권 분리'라는 표현을 썼으나, 3면에는 역시 '검수완박' 표현을 사용했다.

핍박 받는 검찰?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관계자가 들어가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관계자가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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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형태를 빌린 '검수완박' 용어는 매력적인 면이 있다. 우선, 전형적인 사자 성어처럼 복잡한 내용을 네 글자로 압축함해 언어의 경제 효과를 제공한다. 이 경제효과는 기사나 보도의 제목으로 활용하는 데 편리하다. 또 복잡한 것을 간략하게 기호화함으로써 신비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검수완박'이란 용어 안엔 '독'이 숨어 있다. 그것이 '검수완박'이란 말을 개발해 퍼뜨리는 사람들의 의도라고 본다. 그 독의 실체는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가 '정의의 사도인 검찰의 손을 묶어 놓기 위한 정치권의 술수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검수완박'이란 용어를 쓰면서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는 법안의 취지는 사라지고, 핍박 받는 검찰이라는 인상만 강해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프레이밍 효과'라는 것이 있다. 질문이나 문제 제시 방법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나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여론조작에 능한 사람들은 이런 효과를 이용해, 여론을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끌고 가려고 하곤 한다.

국제관계에서도 프레이밍 효과가 종종 활용된다. 대표적인 예가 한일관계에서 일본 쪽이 잘 쓰는 '골대 이동론'이다. 일본 쪽은 한국 쪽이 일본군 군대위안부, 강제동원 노동자 위자료 지급 판결 등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면 '1965년 한일협정으로 다 끝난 문제를 골대를 옮겨 다시 내놓는다'고 비난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플레이밍을 한국의 언론도 그대로 받아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의도에 상관 없이 한국은 '경기의 규칙도 지키지 않고 골대를 멋대로 움직이는 무법 국가'라는 인상이 커지게 된다.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검수완박'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26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검수완박 입법폭주 중단하라'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26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검수완박 입법폭주 중단하라"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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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수완박'이라는 용어가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재조정하려는 세력을 폄하하려는 데 쓰이는 대표적 '프레이밍 공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용어를 덥썩 받아쓰면 안 된다고 본다.

'검수완박' 표현이 대중에 크게 회자되기 시작한 배경을 살펴봐도 이 용어가 검찰의 이익 지키기와 직결돼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참고로 '검수완박'이라는 용어는 2021년 1월께 검찰수사권 폐지 서약서 등을 민주당 의원에 돌린 파란장미시민행동이 처음 썼다). 

윤석열 당선인은 검찰총장을 사퇴하기 전날인 2021년 3월 3일 대구고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검수완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면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는) 헌법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으로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져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금 검찰과 국민의힘의 검찰 수사-기소 분리의 반대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시민들에게 영향력이 큰 미디어는 더욱 이 표현의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의도에 관계 없이 검찰의 편을 드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검수완박'이라는 용어를 쓰려면 상대 쪽이 주장하는 '검찰 수사권 남용 방지(검수남방)'이나 '검찰 수사권 전횡 방지(검수전방)'과 같은 용어를 공평하게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의 세력이 의도적으로 만든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쓰는 것은 결국 그들의 의도에 말려들거나, 그들의 의도를 알면서도 객관성을 가장해 그들을 편드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미디어 관계자들이 '검수완박'이란 표현을 최소한 중립적인 용어처럼 쓰지 말길 바란다. 쓰더라도 한 진영의 의도된 용어임을 밝히는 데만 써야 한다고 본다.

태그:#검찰 기소권, #검찰 수사권,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프레이밍, #여론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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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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