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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다."

<전쟁일기>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을 펴낸 올가 그레벤니크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싸우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두 아이를 데리고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어머니와 헤어져 낯선 나라로 떠밀린 어머니다.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 
 
/ 올가 그레벤니크 글 그림 /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 값 12,000원
▲ 전쟁일기 / 올가 그레벤니크 글 그림 /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 값 12,000원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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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료품점에서는 현금만 받는다.

…모든 금융 인플루언서들이 말해왔던 나의 '비상자금'은 오늘 온라인 뱅킹 앱에 뜨는 가상 숫자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우리 도시는 텅 비었고 무너져버렸다. 개새끼들.

지하실에 임산부들이 있다. 처음에는 4명이었는데, 지금은 2명만 남고 2명은 떠났다. 곧 출산일이다.

전쟁 첫날부터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걷기조차 못하신다…

(중략)

전쟁 첫째 날 내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내 팔에도 적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이렇게 서른다섯 살의 이 어머니는 아홉 살 난 아들과 네 살배기 딸을 데리고 싸움터가 된 집을 떠나 난민이 되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들어와 콕콕 박힌다. 저이는 열차를 타고 이웃 나라 폴란드로 갈 수 있었다. 만약 북녘이 막혀 섬이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에 싸움이 터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떠날 수 있을까?

이 싸움으로 이 시간에도 적지 않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다치거나 숨을 거두고, 집을 잃거나 굶주림에 시달리고 사랑하는 식구들이나 동무들과 헤어지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는 왜 싸울까? 두 나라 대통령에게 물으면 모르긴 해도 다 나라를 지키려고 싸운다고 할 것이다. 나라를 지키려는 까닭은 나라 사람들을 보듬으려는 데 있다. 그런데 사람 목숨을 내놓고 싸우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에는 무슨 뜻이 담겼을까? 클 대, 거느릴 통, 거느릴 령이 모인 낱말이다. 거느린다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그늘인다는 말에서 왔단다. 그늘을 드리워 품는다는 뜻을 살려서 빚은 낱말일 테다. 대통령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다. 다스림은 다 살림에서 나온 말로 다 살림은 말 그대로 다 살리는 짓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하는 짓은 너른 그늘을 드리워 다 품어서 살리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간추리면 살림살이하는 이다. 죽음과 삶이 맞선 말이듯이 죽임에 맞선 말이 살림이다. 대통령은 살리는 사람이지 죽이는 사람, 그러니까 테러리스트나 살인자가 되어선 안 된다.

나라를 아우른다는 지도자가 전쟁하겠다고 나서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빼앗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몽실언니>와 <강아지 똥>을 쓴 권정생 선생은 <우리들의 하느님> '영원히 부끄러울 전쟁'이란 꼭지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혼란과 전쟁이 잇달아 일어나는 역사 앞에서, 더러는 영웅이 되고 뜻밖의 횡재를 얻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이 씻지 못할 상처를 안고 비극의 인생을 살다가 끝마친다. 수많은 고아가 생겨나고 과부가 생겨나고 신체적 정신적 장애자가 생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없이 개개인의 운명을 극과 극으로 바꿔놓고 만다.

…3개월 동안의 피난생활에서 30년을 살아도 겪지 못할 일들을 겪었다. 희한하게도 인간은 극한상황에 부딪치면 거의 무감각해지는지 도무지 곁에 총알이 날아오고 바로 건너편에 폭격을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잠을 못자고 먹지 못해 배고픈 것이었다.

…석 달 동안 피난을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 마을 모습은 별로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모두 변해 있었다. 서로 믿고 얘기를 나눌 이웃이 없어진 것이다. 형제끼리도 사촌끼리도 사돈간에도 입을 다물고 지냈다. 마을 남자들 중엔 모병으로 국군이 되기도 하고 공비가 되기도 했다. 그 어느 쪽도 본인 의사와는 다르게 서로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 한국인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빨리를 해서 외국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데, 이 빨리빨리의 조급성도 6·25가 가져다준 부산물일 것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신작로나 다리 같은 복구공사에 남자들이 부역으로 동원되면 미군병사가 뒤에 따라다니며 "빨리빨리!"하면서 닦달하고 있었다.

6·25의 비극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우크라이나라고 다를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 곳곳에 꼬마평화도서관을 열러 다니는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2020년 상반기 평화 책으로 가려 뽑은 책에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란 그림책이 있다.

애국자가 없는, 그래서 전쟁도 없는 세상 
 
/ 권정생 시 김규정 그림 / 개똥이 / 값 15,000원
▲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시 김규정 그림 / 개똥이 / 값 15,000원
ⓒ 개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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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시와 김규정 그림이 어우러진 이 책 소리 내어 읽는 목소리 연주를 하기에 앞서 모인 사람들에게 "애국자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물었다. 다들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린다. 어떤 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요?" 참으로 그런지 연주를 해나가며 알아보기로 했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놀라운 마무리에 연주를 마친 사람들은 한참을 입 다물고 있었다. 곱씹을수록 나라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람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슴에 와 박혔기 때문이다.

이 책 두 권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나라 살림꾼에게 드리고 싶다.

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은이), 정소은 (옮긴이), 이야기장수(2022)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지은이), 김규정 (그림), 개똥이(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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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바라지이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가”를 물으며 나라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 들어가는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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