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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시내 공원 등 녹지에서는 고양이 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이스탄불 공원의 고양이들 이스탄불 시내 공원 등 녹지에서는 고양이 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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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현생의 인연은 전생에서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터키, 고양이 그리고 나. 전생에 어떤 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고양이 집사'라는 명함까지 던져준 이스탄불(터키의 한 도시)의 고양이와 동물권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터키 땅을 처음 밟았던 날, 아파트 8층 높이 위에 올려진 거대한 아야소피아(대성당)의 크기에도 놀랐지만 푸른 잔디 위에 알록 달록 각기 다른 털 옷을 입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여기저기 고양이가 널부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공원, 도보 할 것 없이 곳곳에서 인기척에도 무심한 듯한 새초롬한 표정의 이스탄불의 고양이들. 처음엔 놀랐던 나는 금세 매료되었다.

이스탄불 동물관리청의 동물 복지 개선 노력
 
이스탄불 아야소피아(왼쪽) 인근 공원을 중심으로 상당수의 길고양이가 서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아야소피아와 고양이 이스탄불 아야소피아(왼쪽) 인근 공원을 중심으로 상당수의 길고양이가 서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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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시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월 기준으로 주인이 없는 길고양이는 약 12만 5천 마리, 등록된 집고양이는 7만 5천 마리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약 20만 마리 이상이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다. 이스탄불 시청 내 '동물관리청' (İstanbul Büyükşehir Beledieyesi Veteriner Hizmetleri Müdürlüğü)에서 집계한 수가 이 정도이니 등록되지 않거나 중성화 되지 않는 고양이 수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적지 않을 것이다.   

이스탄불 내 동물은 이스탄불 시청 동물관리청 주관으로 동물보호법 제 1599조에 따라 이스탄불 시내 순환 버스를 운영하는데, 주 1회 순환 지역에 방문하여 길 동물들 및 반려 동물을 관리하고 긴급 동물 구조 및 응급 서비스도 함께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예방 접종 및 각종 질병의 데이터화 작업, 동물 재활 서비스, 마이크로칩 등록 및 이스탄불 시청 주도의 길/가정 반려 동물 등록 작업, 동물의 불법거래 단속, 소유자가 없는 동물에 대한 보호 및 폭력 감시 역할을 위한 관리감독, 야생 동물 또는 육류 거래와 섭취와 이로인해 발생하는 피해자 사례 관리, 동물단체 및 동물법 전문 로펌과 제휴를 통한 동물권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모든 내용은 시/정부 단위 법률로 제정하여 법적 효력을 지닌다.

이스탄불 동물 대학살의 역사
 
이스탄불 시에서 운영 중인 동물보호센터로, 이스탄불 내 최대 녹지 지대인 케말부르가즈(Kemerburgaz)에 위치해 있다. (사진 출처: 이스탄불 시립 동물보호청)
▲ 이스탄불 케말부르가즈 구역 내 동물보호센터 이스탄불 시에서 운영 중인 동물보호센터로, 이스탄불 내 최대 녹지 지대인 케말부르가즈(Kemerburgaz)에 위치해 있다. (사진 출처: 이스탄불 시립 동물보호청)
ⓒ 이스탄불 시립 동물보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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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에미뇨뉴(Eminönü) 항구에서 약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나가면 '왕자들이 섬'이라 불리는 'Prins Adalar' (이하 '프린스 아다라르')라는 섬 지역에 닿는다.

약 7개의 섬이 나열되어 있는 지역으로 1개 섬은 개인 사유지이고, 나머지는 6개의 섬은 오스만 제국 시절까지 정교회 성직자들이 수행의 목적으로 방문하던 어촌 및 수도원이 있던 지역이다.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아름다운 마르마리스해를 바라보며 따스한 날씨와 풍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경치 덕분에 관광 시즌이 되면 국내외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섬을 둘러싼 바다에는 본래 물고기가 많으니 육식 동물인 고양이와 개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섬 지역에서는 관광객들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애교 부리는 고양이와 개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지만, 사실 이 지역은 동물 대학살이라는 참혹한 과거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산업화가 진행된 프랑스에서는 특히 향수, 화학 약품의 성능 확인을 위해 거리 위의 떠도는 개와 고양이를 대상으로 동물 실험을 진행, 이는 수많은 동물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에서는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에게 산업 기술을 이전하는 조건으로 떠도는 개와 고양이를 프랑스로 판매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반발한 이스탄불 시민들은 거리의 개와 고양이를 포획한 상자를 습격하였고, 시민들과 정부 간의 집없는 동물에 대한 갈등이 고조되면서 프랑스에서는 동물 이송 건을 잠정 보류하게 된다.

결국 1910년 6월 30일, 오스만 제국에서는 포획한 수많은 개와 고양이 등 길거리 동물을, 이스탄불 인근 프린스 아다라르의 섬 중 'Sivri Ada'(이하 '시브리 아다') 지역으로 집중적인 강제 이주를 감행했다.
 
대부분이 개였고 소수의 고양이도 있었다. (출처: 터키동물권리협회 haytap)
▲ 당시 강제 이주된 동물들  대부분이 개였고 소수의 고양이도 있었다. (출처: 터키동물권리협회 haytap)
ⓒ 터키동물권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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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록에 따르면 시브리 아다가 있는 프린스 아다라르 지역에는 정교회 수도원 및 어촌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당시 강제 이주 당한 개와 고양이의 울음 소리가 아다라르 지역 내에서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강제 이주시킨 동물은 결국 집단 폐사하였고, 섬 지역내 거주민들까지 섬을 버리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결국 이 곳은 무인도처럼 폐허가 된다. 1912년 섬이 있는 마르마라해를 중심으로 이스탄불에서 지진이 발생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학살당한 동물들의 저주였다고 믿었다.  

안타깝게도 이스탄불에서는, 1949년부터 1956년 2월 22일까지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이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14만 1713마리 개와 1639마리 고양이가 학살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터키 사람들의 개-고양이 권리에 대한 반성, 노력
 
주정부 및 지방 행정 단위로 길고양이를 관리한다.
▲ 고고학 박물관 야외 공원 내 길고양이 주정부 및 지방 행정 단위로 길고양이를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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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이스탄불 시청과 터키 정부에서는 과거 학살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동물 권리와 발전에 대한 선언을 했다. 이후 시 및 주정부 단위로 동물관리청을 설치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지방 행정 단위로 동물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의 개선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중이다.

가령 아야소피아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는 아야소피아에서, 고고학 박물관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는 고고학 박물관에서 관리를 하는 등 각 소규모 구역마다 해당 영역내의 집 없는 고양이를 보살피고 있다. 개의 경우는 개의 귀에 표식을 부착하여 주기적으로 관리 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스탄불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자고 있는 개를 자세히 보면, 개마다 귀에 표식이 되어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배운 주인 없는 동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묘연(猫緣), 즉 고양이와의 인연으로 이어져 나 또한 지난 2017년,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박스 안에 버려진 어린 고양이를 구조하여 고양이 집사로 살아가는 중이다. 터키에서 보고 배운 것은 동물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었고, 이는 내가 터키를 사랑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의 주인 없는 개의 귀에 인식표를 부착, 시 또는 지방 단위로 관리한다. 터키는 시/도 단위의 행정 기관 주도로 동물에 대한 관리를 진행 중이며, 이스탄불에도 시립 동물관리청이 별도로 존재한다.
▲ 이스탄불에서 만난 개 이스탄불의 주인 없는 개의 귀에 인식표를 부착, 시 또는 지방 단위로 관리한다. 터키는 시/도 단위의 행정 기관 주도로 동물에 대한 관리를 진행 중이며, 이스탄불에도 시립 동물관리청이 별도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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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길고양이, #동물권, #터키, #이스탄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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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연방대학교 문화간 의사소통에서의 튀르크어족으로 문헌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는 동대학의 국제관계대학 박사과정에서 투르크민족과 언어관계, 러시아-튀르키예 국제관계를 연구하며 KBS 글로벌 통신원, 문화뉴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합니다. 틈틈이 튀르키예의 동물권리에 대해 기록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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