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 지역대학이 처한 어려움을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대로라면 남쪽부터 지역대학은 사라진다. 지역대학 입장에서 벚꽃은 화신(花信)이 아니라 사신(死神)인 셈이다. 차라리 벚꽃이 피지 않기를 고대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지역대학들 사이에 '지역혁신사업(RIS, Regional Innovation System)'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다음 달 들어서는 새 정부가 지향하는 지역균형발전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인수위 해산 후에도 지역균형특별위원회는 상시 기구로 전환하고 부총리급으로 격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만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RIS사업은 지자체와 대학이 협력해 지역혁신 체계를 구축하고 지역혁신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한다. 새 정부가 추구하는 지역균형발전 정책대로라면 RIS사업은 전국에 고르게 지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역혁신 역량 강화사업이 특정 지역에 편중된다면 균형발전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

하지만 교육부와 예산을 틀어 쥔 기획재정부는 현행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RIS사업은 2020년부터 추진 중이다. 지난해까지 광주·전남(480억), 울산·경남(480억), 충북(300억), 대전·세종·충남(480억) 등 4개 권역을 선정했다. 여기에는 67개 지역대학과 206개 지역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700억 원을 확보해 2개 권역을 신규 지정할 예정이다. 전북, 강원, 부산, 대구·경북, 제주 등 미선정 지역이 대상이다. 이와 관련 5개 광역단체와 거점국립대학은 나머지 지역을 모두 선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역격차 완화와 지역균형발전이란 RIS사업 취지를 감안할 때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전국 국가거점국립대학총장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김동원 전북대 총장은 "RIS사업은 지역대학 위기와 맞물려 균형발전 차원에서 모든 지역이 수행해야 하는 사업이다"며 권역 확대를 강조했다. 국회 교육상임위 또한 이 같은 입장에 공감하며 선정 방식에 의문을 나타냈다.

국회는 대학혁신과 지역혁신을 위해 모든 권역에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 그럼에도 기재부와 교육부는 기존 방식을 고집,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2개 권역을 선정하기 위한 평가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사업 내용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2개 권역만 선정할 경우 탈락한 지역을 중심으로 반발이 우려된다.

선정된 지역에만 투자가 집중 될 경우 지역 간 불균형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에서 5개 권역 모두 선정하거나, 3~4개 권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경우 디지털 대전환 기조에 맞춰 사업을 재정비할 수도 있다.

만일 2개 권역만 선정한다면 적지 않은 문제가 예상된다. 첫째, 지역인재 유출 가속화다. 이미 선정된 지역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지면 미선정지역 인재 유출은 불가피하다. 둘째, 탈락 지역 경쟁력 약화다. 선정된 지역에서 특화산업을 선점함에 따라 미선정지역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셋째, 융·복합인재 육성 차질이다. 지역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해야 하지만 탈락한 지역은 겉돌 수밖에 없다.

지난달 30일 국가거점국립대학총장협의회는 '고등교육정책' 포럼을 열고 활로를 모색했다. 이 자리에는 김병준 인수위 국가균형발전특위 위원장과 정운천 부위원장이 나란히 참석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대학의 미래-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연구중심대학'이란 발제에서 "독일 드레스덴과 미국 실리콘 밸리는 지역대학들이 발전을 견인했다"면서 "지역별로 특성화된 연구중심대학 육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지역거점 연구중심 대학을 육성하는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 방안을 지역균형발전특위에 건의했다. 연구중심대학 육성 필요성에 공감한 김병준 위원장은 "새 정부에서는 지역인재 할당제를 뛰어 넘어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만들겠다"면서 "기업과 지방정부, 지역대학이 협업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주지하다시피 저 출산 여파로 지역대학은 존폐위기에 직면해 있다.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하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뿌리 없는 나무가 생존할 수 없듯 지역 없는 국가발전은 공허하다. 새 정부는 지역거점국립대학들이 몸부림치고 있는 절박한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

관성적인 정책과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 획기적인 발상 전환과 정책지원이 뒤따라야한다. 연구중심대학은 좋은 대안이다. RIS사업 확대 선정과 함께 국가균형발전과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지역대학을 중심에 세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새 정부마저 외면한다면 왜 정권을 교체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지역혁신사업(RIS), #지역혁신 역량, #지역인재 유출, #고등교육정책포럼, #실리콘밸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