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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우리집 열 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는 걸 무척 힘들어한다. 깨우려고 방에 불을 켜면 아이는 인상을 잔뜩 쓰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I hate Monday(나는 월요일이 싫어)!"를 외친다. 그리고는 까치집 머리를 흔들면서 화장실로 쿵쾅거리며 간다.

그런데 축구 학원 가는 날이 되면 아이는 달라진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축구 유니폼을 혼자 다 입고 허옇고 번들번들한 얼굴로 나를 깨운다. 평소 잔소리를 해야 겨우 바르던 로션과 자외선 차단제까지 덕지덕지 바른 상태로 말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는 축구 학원 가는 요일을 몹시 기다린다. 사실 그건 아이만 그런 게 아니다. 나 또한 그렇다. 아이가 학원에 가는 시간은 내 퇴근 시간 이후다. 그래서 아이가 학원에 가면 나에게 자유시간이 생기는 셈이다. 2시간 30분씩 일주일에 두 번. 직장에서 퇴근하면 곧바로 집(제2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는 워킹맘에게 그야말로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다.​

아이가 축구 하는 시간, 엄마는 
 
스터디카페
 스터디카페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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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일단 집 밖으로 나와야 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조용하고 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개수대에 쌓여 있는 설거짓거리,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책과 잡동사니, 꽉 차 있는 빨래 바구니, 며칠째 건조대에 걸려 있는 옷, 게다가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도 언제나 제자리인 요리까지. 이것들을 모른 척하기 힘들다. 그게 아니면 피곤하고 귀찮아서 침대에 드러누워 핸드폰만 볼 것 같았다. ​

나는 아이가 학원에 갈 때 같이 집을 나섰다. 읽고 싶은 책과 노트북을 넣은 커다란 에코백을 메고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카페에 가니 사람은 많고 시끄러웠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떡하지?'​

나는 코로나에 민감한 편이다. 내 직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우리 반을 맡아줄 임시 교사를 구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대체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교내 선생님들이 매 시간 돌아가며 보결을 들어올 수밖에 없다. 아이들에게도,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은 확진자 수가 많아져 좀 덜 해졌지만 교사가 확진이 되면 많은 비난과 질타를 받는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조심하지 않고 얼마나 돌아다녔길래 감염이 되었냐', '선생님이 감염되면 우리 아이는 어쩌냐' 건강은 둘째치고 공공의 적이 되는 게 두려워 코로나에 걸리고 싶지 않았다. ​

결국 나는 카페에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자니 아쉽고 갈 데는 마땅치 않아 망설이고 있는데 카페 위층에 '스터디카페'가 있는 게 보였다. 요즘은 건물마다 스터디카페가 하나씩은 꼭 있다. 전에는 스터디카페가 중고등학생이나 수험생만 이용하는 곳이라고 여겨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문득 오디오클립에서 장강명 작가가 스터디카페에 가서 소설을 집필한다고 얘기했던 게 생각났다. ​

'나도 한 번 가볼까?'​

스터디카페 문 앞에 부착된 가격안내표를 보니 이용료가 2시간에 3000원으로 부담 없는 금액이었다. 스터디카페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내릴 일도 없고 조용히 공부만 하니 내가 시간을 보내기에 안전한 장소일 것 같았다. 나는 바로 키오스크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결제를 마친 뒤 안으로 들어갔다. ​

이곳은 밝고 환한 분위기에 천장도 높고 책상 종류와 좌석 타입도 다양하다. 내가 학창 시절 이용했던 어두컴컴하고 칸막이 책상이 빼곡하게 놓여 있던 독서실과는 많이 다르다.

여러 자리 중 고민 끝에 좌식 자리를 골랐다. 작은 다락방 같은 반 평 남짓한 공간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낮은 책상 앞에 앉았다. 입구 쪽 블라인드를 쭉 내리니 외부와 차단된 나만의 방이 되었다. 마치 우주에 내 자리 하나가 생긴 기분이었다.​ 사람이 거의 없고 공기청정기 소리만 미세하게 들릴 뿐 고요했다.

힐링 그 자체의 공간
 
아이가 학원에 가는 시간 책과 노트북을 챙겨 스터디카페로 갑니다.
 아이가 학원에 가는 시간 책과 노트북을 챙겨 스터디카페로 갑니다.
ⓒ 진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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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내 근무지는 아이들이 가득한 교실이다. 스물다섯 명의 생기 넘치는 아이들이 떠들고 뛰어다니는 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혼이 쏙 빠져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를 묻게 될 때가 많다. 그러니 스터디카페의 적막은 나에게 힐링 그 자체일 수밖에. 

좀처럼 잘 읽히지 않아 중고서점에 팔아야 하나를 고민하며 일주일 내내 붙들고 있던 책이 있었다. 그 책을 스터디카페에서 읽자 책장이 잘 넘어갔다. 인덱스 플래그를 스무 개도 넘게 붙이며 이 책을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는 글도 꽤 잘 써진다. 집에서 글 좀 써 보려고 하면 '엄마, 뭐 먹을 거 없어요?', '여보, 손소독제 어디 있어요?' 소리가 수시로 들려온다. 그런데 스터디카페에서는 오직 나와 노트북만 있다. 평소 글 한 편을 쓰려면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며 썼는데 이곳에서는 자판을 제법 경쾌하게 두드리며 쓴다. ​

무엇보다 여기는 아이, 남편, 우리반 아이들이 아닌 나에게 관심을 두고 집중하는 곳이다. 아무것도 없고 조용한 이곳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를 들여다본다.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는 머릿속을 비우고 '나'를 채운다. 신기하게도 이 작은 공간에 있으면 '나는 누구?'라는 질문에 조금씩 답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일주일에 두 번 스터디카페를 찾는다. ​

어느새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자유시간은 끝났다. 후다닥 짐을 싸서 스터디카페에서 나온다. 집에 가기 전 동네 파스타 가게에 들러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포장해간다. 나는 아이에게 깨끗해진 집과 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음식 대신 가볍고 선명해진 내 마음과 나다워진 엄마를 보여줄 것이다. ​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태그:#스터디카페, #워킹맘,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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