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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20대 대선이 끝난 이후, MBC·KBS·SBS·JTBC 4개 방송사에서 실시한 TV 개표방송과 대선 다음날(3월 10일) 진행된 특집방송을 중심으로 진행자와 패널 참여자의 성비를 조사했다. MBC와 KBS의 경우는 라디오 개표방송도 포함했다.

개표방송의 경우, 거의 10시간 이상 진행됐기 때문에 4개 방송 모두 몇 시간씩 나눠 1부(部), 2부 형식으로 진행됐고, 각 부마다 진행 부분과 패널 부분으로 나눠 성비를 조사했다. 예를 들어, 1부가 진행될 동안에 한 사람이 여러 번 나눠 출연한 경우에는 1명으로 계산했고, 1부에도 출연하고 2부에도 출연한 경우에는 2명으로 계산했다. 외부인이라도 패널 진행을 담당한 사람은 진행에 포함했고, 방송사 소속 기자라도 패널로 출연한 경우에는 패널에 포함해 계산했다. 진행 부분에서 현장 취재기자는 성비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다. 한편, 라디오의 경우(MBC와 KBS만 해당)는 진행자 중심으로 계산했다. 예를 들어, 한 명의 진행자가 1부터 3부까지 진행했다고 할 경우, 진행자는 1명으로 계산했고, 해당 진행자가 방송하는 동안 몇 명이 패널로 참석했는지를 계산했다. 그리고 TV와 라디오 방송 중 정규방송에 해당하는 방송은 성비 계산에 포함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고정되어 있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진행자 성비균형 이뤘으나 여전히 남성이 주도적 역할 수행

드루드 달러럽(Drude Dahlerup)은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2018 현암사)에서 여성의 수적 비율에 근거해 정치조직에서 남성이 장악하고 있는 정도를 구분했다. 여성비율이 10% 미만이면 '남성 독점(male monopoly)', 10-25% 사이면, '작은 소수의 여성(small minority)', 25-40% 사이면, '거대한 소수의 여성(big minority)', 40-60% 사이면, '성별균형(gender balance)'이라고 명명했다. 즉 여성비율이 40%를 넘지만 60%를 넘지 않으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대표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출처: 드루드 달러럽(2018, 53)
▲ 여성의 수적 대표성에 근거한 남성 장악의 정도 출처: 드루드 달러럽(2018, 53)
ⓒ (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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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영역뿐만 아니라 기업·언론·예술·스포츠 등 다수의 조직에서 의사결정 직위에서 여성이 성별균형을 이룬 곳은 거의 없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여성이 30-40%만 되어도 "여성이 장악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인식 자체가 그동안 의사결정 직위를 남성이 독점해왔다는 것이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남성이 과대대표되어 왔다는 지적은 방송계에서도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프로그램 출연진 성비에 대해 주기적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의 성비(<미디어오늘> 2022.03.09.), 시사토크 진행자의 성비(<PD저널> 2018.09.13.),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와 고정 출연자의 성비(<PD저널> 2017.03.03.) 등이 간헐적이지만 보고되어 왔고, 여성 출연진의 낮은 비율을 높이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이번 대선 개표방송에서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조사해본 결과, 4개 방송사 전체 진행자 중 여성 비율은 42.9%로 성별균형 상태를 보였다(<표 1> 참조). 그런데 방송사별로 살펴보면, 성별균형을 달성한 경우는 KBS(여성비율 56.9%)와 JTBC(여성비율 43.2%)뿐이고, MBC와 SBS는 30%대로 남성이 거대한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적 성비에 있어서는 진전을 보인 측면이 있지만 실제 방송 내용을 살펴보면, 메인 진행자가 여성과 남성 두 명이라고 하더라도 남성이 개표방송 전체를 이끌어가는, 즉 주도권을 잡고 진행하고, 여성은 이를 보조하는 역할 정도에 머무르는 경향이 여전히 나타났다. 이는 여성에게 더 많은 진행의 기회와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거를 논할 자격, 남성이 패널 독점

반면, 4개 방송사의 개표방송에 참여한 패널 참여자들 중 여성비율은 17.3%로 여성은 '작은 소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1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19.0%)보다도 낮은 수치이다. 패널의 여성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MBC로 54명의 패널 참여자 중 여성은 단 2명(3.7%)이었고, KBS 또한 41명의 패널 참여자 중 여성은 단 4명(9.8%)으로 '남성 독점' 상황이었다. 한편, SBS와 JTBC의 여성 패널 참여자는 30%대 수준으로 임계량(critical mass) 수준을 넘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20대 대선이 끝난 이후, MBC·KBS·SBS·JTBC 4개 방송사에서 실시한 TV 개표방송과 대선 다음날(3월 10일) 진행된 특집방송을 중심으로 진행자와 패널 참여자의 성비를 조사했다.
▲ 4개 방송사 TV와 라디오 대선 개표와 특집 방송 성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20대 대선이 끝난 이후, MBC·KBS·SBS·JTBC 4개 방송사에서 실시한 TV 개표방송과 대선 다음날(3월 10일) 진행된 특집방송을 중심으로 진행자와 패널 참여자의 성비를 조사했다.
ⓒ (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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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세부별로 살펴보면, 패널 참여자의 성비 불균형은 상당히 심각하다. MBC 라디오 개표방송의 경우, 4명의 진행자(표창원, 이진우·서경석, 허일후)가 모두 남성일뿐만 아니라 16명의 패널이 모두 남성이었다. MBC 대선 개표방송과 관련해 여성 패널 참가자는 사실상 이언주 전 의원 한 명뿐이었다. 이언주 전 의원은 개표방송 직전에 진행된 <MBC 뉴스외전>에 출연했고, 3월 10일 <MBC 특집 100분 토론>에 참여했다. KBS의 경우, TV 개표방송과 특별방송에 출연한 패널 중 여성 참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진행자와 패널 모두 남성으로 이루어진 선거 방송
 진행자와 패널 모두 남성으로 이루어진 선거 방송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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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가 여성과 남성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패널은 모두 남성이다.
 진행자가 여성과 남성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패널은 모두 남성이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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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남성 패널, 중복 출연

특정 남성 패널이 4개 방송사 TV와 라디오 대선 개표와 특집 방송에 장시간 출연하는 모습도 확인했다. 특히 MBC와 KBS의 경우가 심각했다.

MBC TV 개표방송의 경우, 전원남성으로 구성된 MBC 라디오 <정치인싸>팀인 김준우(변호사), 장성철(대구카톨릭대 특임교수), 천하람(변호사), 현근택(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을 그대로 섭외하여 4부부터 6부까지 진행하도록 했다. 또한 MBC 라디오 개표방송에서도 <정치인싸>팀은 11부부터 13부를 진행했다.

KBS TV 개표방송의 경우, 'K큐브' 코너로 KBS 방영 프로그램인 <정치합시다2>의 패널 유시민(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전원책(변호사), 박성민(정치컨설턴트), 정한울(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을 섭외하여 1부부터 4부까지의 개표방송을 진행했다. 박성민은 3월 10일 KBS 대선 특집방송 출연, 전원책은 SBS 라디오 개표방송에도 출연했다.

이는 기존 시사프로그램과 라디오 진행자의 남성 편중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송사는 다양한 관점을 견지한 이들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고 새로운 전문가를 발굴하려는 노력 대신 기존의 남성 스피커를 섭외하여 진행했다.

 
총 31명 정치인 중 여성은 고작 5명

4개 방송사의 TV와 라디오 대선 개표와 특집 방송에 출연한 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성비도 살펴봤다. 총 31명의 출연자 중 여성 정치인은 김은혜(국민의힘), 박영선(더불어민주당), 이언주(국민의힘), 이혜훈(국민의힘) 장혜영(정의당)으로 5명, 16.1%에 불과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지난 2월 15일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등 8개 정당에 각 캠프 운영 실태를 젠더 관점에서 평가하기 위한 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한겨레> 2022.03.04). 당시 선거캠프 내 최고위 직책(선대위원장, 본부장 등)에서 남성 비율은 몇 %인지 묻는 질문에 더불어민주당은 80%라고 답한 바 있다. 한국 정치의 성별화된 특징, 여성이 정치에서 주변화되어 있는 현상이 미디어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네 개 방송사 선거방송에 출연한 여성 정치인 5인 중 2명(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이혜훈)이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장면이 출연진이 성별균형을 이룬 몇 안 되는 장면이나 나머지 프로그램에서 여성 정치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네 개 방송사 선거방송에 출연한 여성 정치인 5인 중 2명(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이혜훈)이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장면이 출연진이 성별균형을 이룬 몇 안 되는 장면이나 나머지 프로그램에서 여성 정치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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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규정하고 해석하는 여성을 거부한다

그동안 정치에서 여성 유권자의 표심은 남성 유권자의 것보다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제대로 해석되지 못했다. 특히나 이번 대선은 남성 기득권 정치가 20대 여성 유권자를 없는 취급한, 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의 정치가 난무한 선거였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며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조항 신설을 약속했고, 여성혐오(misogyny)를 일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유세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이러한 배제와 소외 속에서도 투표를 통해 존재를 증명했다.

하지만 개표방송에서 20대 여성 유권자의 존재와 투표행태를 규정하고 해석하는 것은 중년 남성들이었다. 선거라는 공간에서 남성 기득권 정치에 의해 끊임없이 지워졌던 이들을 대신하여 말하는 이들 또한 기득권 남성 전문가라는 점에서 이는 문제적이다.

이번 개표방송들의 제목들은 '선택 2022', '우리의 선택', '국민의 선택', '비전 어게인'이었다. 개표방송에 등장한 기존 시사프로그램 제목 또한 '정치인싸'와 '정치합시다'였다. 누구의 선택이었고, 누구의 비전이고, 누가 하는 정치이고, 누구와 정치를 하자는 것인가. 남성들만의 선택이고, 남성들만의 비전이고, 남성들끼리 정치하자는 것은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선택에 왜 여성은 없는지, 여성 진행자와 패널을 섭외하고 그 풀(pool)을 넓히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우리’의 선택에 왜 여성은 없는지, 여성 진행자와 패널을 섭외하고 그 풀(pool)을 넓히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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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도 정치도 다양해져야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정치는 남성의 것이며 여성은 정치에 어울리지 않거나 남성보다 능력과 실력이 못하다는 사실상 '근거 없는' 편견(믿음)이 존재한다. 할당제 도입으로 오히려 전체 의원의 능력, 특히 남성의원의 능력이 향상됐다는 연구결과가 있고(Besley et al. 2017), 여성의 당선 경쟁력이 남성과 차이가 없거나 남성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어도(권수현·황아란 2017) 이러한 사실은 공유되지도 인정되지도 않는다. 더욱이 성차별적인 편견(믿음)이 사실로 둔갑하면서 구조적 성차별의 현실이 부정되고 정당화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구조적 문제로서 성차별이 젠더갈등 문제로 왜곡되는 데 있어 언론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디어가 중년 남성들만 모아놓고 정치를 논하고 평하는 이미지를 계속 보여줄수록 사람들은 정치를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디어가 정치를 어떻게 재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 저널리즘의 역할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대하는 것이라면, 미디어가 특정 집단이나 영역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공고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편견과 차별을 깨는 방향과 내용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50대 고학력자 남성이 독점한 한국정치는 대다수 시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향후 미디어는 정치를 재현하는 데 있어 성별균형과 다양성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 개표방송에서 각 방송사들은 시청자에게 쉽고 재밌게 다가가는 선거방송을 위해 3D스캔 등을 도입하고, 롯데월드타워와 코엑스 대형 전광판 등을 활용하여 AR(증강현실)존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선거과정과 개표결과를 논평하는 자리의 인적 구성에서는 그러한 노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양한 볼거리에 대해 고민하는 노력의 반의 반이라도 정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다양성과 성비에 대해서는 왜 고민하지 못하는 것일까.

약 두 달 후에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가 있다. 지방선거에서는 남성이 과대대표되는 개표방송이 아니라 유권자의 성비를 반영하는 동시에 다양성을 포함한 개표방송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대선, #개표방송, #선거방송, #성평등,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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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치적 역량과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서의 성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여세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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