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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동도서관마을 주민미디어 동아리 어울라디오는 <이웃의 발견, 골목인터뷰>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평범한 이웃들을 만나고 이웃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이번에 만난 이웃은 한국 남편과 결혼하면서 29년 째 한국생활을 하고 있는 사와이 구미꼬씨다. 인터뷰는 어울라디오에서 활동 중인 최순자씨가 진행했다.[편집자말]
한국생활 29년을 맞이하는 사와이 구미꼬 씨 (사진 : 정민구 기자)
 한국생활 29년을 맞이하는 사와이 구미꼬 씨 (사진 :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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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한국 생활에도 적응 안 되는 건..."

- 제가 얼마 전에 <은평시민신문>에 다문화가족에 관해 기고했는데 사와이 구미꼬 선생님이 직접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댓글에서 일본에서 오신 다문화가족이라고 하셔서 골목인터뷰에서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올해로 29년째 살고 있어요. 은평구에 산 지는 18년 되었고요. 현재 프리랜서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고, 작년부터 갈현2동 마을네트워크와 주민자치회에서 마을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29년 사는 동안 한국에 대해 많은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마음이 따뜻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편하고 음식도 처음부터 입에 잘 맞았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장이 약해서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데, 저는 김치나 매운 음식도 잘 먹을 수 있어서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남편이 7남매 중 막내입니다. 결혼했을 당시 시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안 계셨지만, 형제들이 잘 챙겨줘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제가 일본 사람이고 직장생활 하니까 형님들이 해마다 시골에서 맛있는 김장김치를 보내주셨고, 시댁에 놀러 가면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신촌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는데 친절하신 분이 파출소에 갖다주셔서 찾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물건과 현찰이  그대로라서 감동받았습니다.

버스 노선이 잘 되어 있어서 정말 편하고, 특히 IT기술이 발달되어 있어 길 찾기로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점이 최고입니다."

- 좋은 기억이 많으시네요, 그럼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29년 전에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투병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둘째인 저까지 외국에 간다고 하니까 많이 반대하셨던 것 같습니다. 

겨울 날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춥고 특히 영하 15까지 내려갈 때는 밖에서 바람이 불면 머리가 깨지듯이 추워서 3년 정도는 자주 감기에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난방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집안이 정말 따뜻해서 너무 좋아요. 

처음 버스 탔을 때 한국 분들은 손잡이를 잡고 잘 서 있는데, 저는 롤러코스터 타는 느낌이었어요. 일본 버스는 천천히 달리는데 한국 버스는 빨리 달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 29년이 지난 지금도 어려운 것이 있나요?

"한국어 발음입니다. 일본어에는 받침도 없고, 발음이 단순하고 ㅇ, ㄴ, 오, 어의 구별이 없어서 지금도 항상 헷갈립니다. 특히 당황했을 때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그런 어려움이 있으시군요.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이건 좀 쉽게 적응이 안 됐다' 하는 일 있으시면 소개해주세요.

"일본에서는 어린아이들과 부모 아니면 연인끼리 손잡고 다니는데, 한국에서는 어른들끼리도 손잡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동창 아저씨들, 할아버지들끼리 손잡고 다니는 모습에 문화충격을 입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다 큰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끼리 절대로 손잡고 다니지 않습니다.

처음에 정말 놀랐는데, 명절에 시댁에 갔을 때 형님이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서 제 손을 잡고 다니시고 맛있는 것을 사주신 적이 있어요. 지금까지 그 모습이 따뜻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언니가 한국에 놀러 왔을 때, 배낭가방 지퍼가 열려 있는 것을 보신 아주머니가 약간 화내듯 뭐라 하면서 가방 지퍼를 닫아주셨어요. 언니가 놀라면서 고마웠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이면 남의 일이니까 지나갈 수 있고, 알려주더라도 지퍼까지 닫아주진 않거든요."

갈현2동마을네트워크는 마을 활성화 돕는 단체
 
한국생활 29년을 맞이하는 사와이 구미꼬씨(왼쪽), 인터뷰 진행을 맡은 최순자 씨. (사진 : 정민구 기자)
 한국생활 29년을 맞이하는 사와이 구미꼬씨(왼쪽), 인터뷰 진행을 맡은 최순자 씨. (사진 :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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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현2동에 거주하면서 마을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마을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2019년 '꽃사모'라는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을 계기로 마을네트워크에서 조금씩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선옥 주민자치위원님을 만나면서 주민자치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작년 추가 모집할 때 지원해 주민자치위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 갈현2동 주민자치회 자치회관 운영분과장이 되셨던데,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시나요?

"작년에는 청소년희망동아리를 운영해 갈현2동 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네일아트, 드론 등 4가지 동아리를 진행했습니다. 올해는 탄소중립에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갈현2동에 나무와 꽃을 심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등굣길에 나무나 꽃을 심을 예정입니다."

- 아름다운 꽃길을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아지네요

"주민센터 4층에 있는 마을도서관이 리모델링되어서 새롭게 개관될 예정입니다. 오픈하면 마을문고가 주민들이 즐겁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북콘서트와 같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니까 기대해주세요."

- 마을네트워크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어떤 단체인지 알려주세요.

"갈현2동마을네트워크는 마을공동체지원센와 주민들이 함께 소통하고 마을 활성화를 돕는 단체입니다. 마을 일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갈현2동은 주민자치위원님들도 많이 동참하고 있고, 1년 동안 탄소중립에 관한 활동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봄에 은평 16개 동에서 수세미 모종을 분양받아 집이나 밭에서 키웠습니다. 수세미가 넝쿨 식물이라서 그런지 엄청 키가 크게 자라 꽃도 예쁘게 피웠습니다.

나무나 키가 큰 식물은 더운 여름에 기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고, 가을에는 수세미 열매를 수확해 천연 수세미를 만들어서 나눠드리기도 했습니다. 올해도 이어서 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국에 죄송한 마음 가지고 있어"

- '은평그린대작전'이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환경문제와 연관이 있는 듯한데요. 

"은평그린대작전이라는 캠페인은 기후위기에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진행하고, 그 인증 사진을 단톡방에 올리고 공유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의식을 높이는 활동이에요. 올해도 계속 이어서 할 예정입니다.

삼배실로 설거지용 천연 수세미를 떠서 사용했고요. 은평구청 공원녹지과에서 진행한 자투리땅 찾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갈현2동에 나무나 꽃을 심을 수 있을 만한 숨은 땅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5군데를 후보지로 올렸는데 3군데가 선정돼 나무가 심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가지고 와 서로 교환하는 자원순환 활동도 했습니다. 올해는 주민센터 2층에 장소를 마련해서 좀 더 큰 규모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생태계분과에서도 봉사하게 되었는데, 역시 기후위기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되어서 의미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 다양하고 중요한 마을 일에 참여하고 계시네요, 많은 분에게 좋은 지역 활동을 소개해 주신 것 같아요. 그럼 이번에는 다문화가족으로서 살아가는 한국은 선생님께 어떤 느낌인지 듣고 싶어요.

"지금까지 크게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주로 고등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왔는데 일본 학생들과는 다른,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낍니다. 

한국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도 남편이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순수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독도도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일 간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저는 한국 편이기 때문에 항상 죄송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도움이 되는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기쁨입니다. 민간대사와 같은 입장으로 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은 반은 일본인지만, 반은 한국인이니까요.

다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역사를 배울 때 일본에 대한 증오감을 갖게 되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마음고생 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엄마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한국만큼 일본도 좋아합니다. 아들은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인이 돼서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으로서 군대도 다녀왔습니다."

- 현재 살고 계시는 갈현2동 자랑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갈현2동은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려는 주민자치위원들의 단합이 좋아서 즐겁게 봉사 활동할 수 있습니다.

골목도 복잡하지 않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뒤에는 앵봉산이 있어서 가볍게 등산할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인근에 응급병원이 세 군데나 있어서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동네라고 생각합니다.   

2022년은 직장과 마을활동을 병행하면서 만사에 감사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많은 주민에게 알릴 수 있도록 열심히 홍보하고, 탄소중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주민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4월 말에 아들의 결혼식이 있습니다. 며느리도 일본 사람이라 2대에 걸쳐서 한일 국제결혼을 하게 되는데,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박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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