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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왼쪽)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25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상암 SBS 오라토리움에서 열린 제20대 대선 제2차 초청후보자토론회에서 악수를 나눈 후 이동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왼쪽)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25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상암 SBS 오라토리움에서 열린 제20대 대선 제2차 초청후보자토론회에서 악수를 나눈 후 이동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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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평화는 곧 '힘'이다. 윤 후보는 대북관계부터 우크라이나 사태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외교 현안을 단칼에 '힘의 우열'로 정리한다. 힘이 있었다면 6.25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우크라이나가 침략을 당한 이유도 협약서 하나 믿고 힘과 동맹을 갖추지 못한 탓으로 본다. 지난 2월 25일 TV토론 마무리 발언에서 "평화는 힘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라 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싸울 필요 없는 평화'를 주장하며 윤석열 후보와 각을 세운다. 윤 후보의 선제타격 발언이나 힘을 강조하는 태도가 불필요하게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외교와 협상의 영역에서 지도자의 역량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약하다'는 비판엔 문재인 정부가 역대 어떤 정부보다 군방예산을 많이 늘려왔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워 강력한 자주국방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대응한다.

거대양당 후보의 가치관에는 냉전과 반공주의에 기반한 한국 보수주의의 사고와 반식민주의·반독재를 사고의 뿌리로 둔 민주당계 정당의 사유체계가 각각 잘 반영돼 있다. 여러 영역에서 많은 정책적 차이가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뿌리박은 이념의 한계 탓에 서로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존재한다. 바로 강력한 군사력, 특히 무기수출에 대한 집착이다.

정권 가리지 않는 무기수출

디테일 차이를 빼면 두 후보의 국방공약은 더 많은, 더 강력한, 더 스마트한 무기와 군대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누가 집권하든 대한민국의 국방예산은 부풀어오를 것이고, 미사일의 사거리는 늘어날 것이며, 방산업체의 매출은 커질 것이고, 무기 세일즈를 하러 각국을 예방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무기수출 추이는 그런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기 '거상'이 됐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이 펴낸 '2021 세계방산시장연감'에 따르면, 2016~2020 5년간 한국의 무기수출은 세계 9위에 도달했다.

주목할 부분은 성장세다. UN comtrade database에 따르면 2008년 이래로 한국의 무기수출액은 332% 증가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가리지 않고 완연한 성장세가 눈에 띈다. 각 정권별 무기수출액 증가율은 이명박 정부(2008~2012) 10.0%, 박근혜 정부(2013~2016) 5.7%, 문재인 정부(2017~2020) 10.7%로 대동소이하다.
   
2008-2020 대한민국 무기수출 및 수입액 추이. 녹색 막대가 수출액을 뜻함. 단위는 백만달러.
 2008-2020 대한민국 무기수출 및 수입액 추이. 녹색 막대가 수출액을 뜻함. 단위는 백만달러.
ⓒ UN Comt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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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수출가액이 아닌 무기성능을 고려한 TIV(trend-indicator value) 단위로 측정한 무기수출규모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증가세는 한층 드라마틱하다.

한국의 무기수출규모는 2008년 109 TIV에서 2020년 827 TIV로 659% 증가했다. 그림에서 나타나듯, TIV 단위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무기수출 증가세가 돋보인다. 이명박 정부 15.5%, 박근혜 정부 8.2%, 문재인 정부 27.5%로 상대적으로 보다 높은 성능의 무기를 적극적으로 판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진보정권이 방산수출에 다소 소극적이라는 통념과는 완전히 반대임을 보여 준다.
 
2008-2020 대한민국 무기수출규모(TIV기준) 추이. 출처: SIPRI database
 2008-2020 대한민국 무기수출규모(TIV기준) 추이. 출처: SIPRI database
ⓒ 최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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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포트폴리오

서구 국가들이 분쟁국에 무기를 파는 것을 꺼리는 데 반해, 후발주자인 한국은 분쟁국이나 잠재적 분쟁국들에게 무기를 파는 데 적극적이다. 최근 아랍에미리트 연합국(UAE)과 이집트에 거액의 지대공미사일 판매를 성공한 데서 잘 나타나듯, 중동국가들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주요 고객'이다.
 
2008-2020 대한민국 무기수출액 상위 13개국. 단위는 백만불. 출처: UN Comtrade
 2008-2020 대한민국 무기수출액 상위 13개국. 단위는 백만불. 출처: UN Comtrade
ⓒ UN Comt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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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comtrade 기준 지난 13년간(2008~2020) 한국 무기수출액 수위권에 3위 터키, 4위 사우디아라비아, 5위 UAE, 7위 이라크, 8위 레바논, 13위 이스라엘, 14위 오만 등 중동 국가들이 포진해 있다. 모두 주변국과 크고 작은 분쟁이 있는 나라들이다. 사우디, UAE는 예멘 내전에 참전하는 국가들이고 이라크와 레바논은 말할 나위 없이 주변 정세나 내부 정세가 매우 불안정한 국가다. 터키는 쿠르드, 키프로스, 그리스 등과 상시적 분쟁 중이다.

특히 문제적인 것은 2008, 2012, 2014년, 그리고 지난해 팔레스타인에 침공전쟁을 감행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이다. 상시적 분쟁지역은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등의 법률에 의해 무기수출이 통제돼야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우방국이라는 이유로 2007년 이래 1000건 이상의 전략물자 수출허가를 내줬다.

중동 국가 이외에도 역시 상시적 분쟁 중인 파키스탄과 인도 양쪽에도 상당한 액수의 무기를 팔았다. 동남아시아의 군비경쟁 흐름을 타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말레이시아에 대한 수출액도 순위권이다. 특히 2019년에는 2018년 로힝야 학살을 자행한 미얀마 군부에게 군함을 민간용도로 '꼼수 수출'하는 걸 허가하기도 했는데, 현재 이 배는 미얀마 해군의 기함으로 쓰이고 있다.

한국의 이런 무기수출 포트폴리오는 유별나다. 심지어 최근 들어 '세계의 악당'으로 간주되고 있는 중국마저도 같은 기간 무기수출 대부분은 북미와 유럽국가로 향하는 것으로 확인된다(UN comtrade database).

한국과 유사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주요 무기수출국이 하나 있는데, 며칠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다. 같은 기간 인도, 알제리, 이집트, 이라크, 이란 등 정세가 불안한 아시아 및 중동 국가들에게 자국 무기를 다수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국가들의 무기산업 육성도 좋게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적어도 분쟁지역에 무기를 적극적으로 팔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시장확대가 1순위고, 그외엔 고려 사항이 아니다. 한국 방산은 정부와 긴밀한 협력 하에 신냉전 시대의 무기시장 틈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군비경쟁이 초래한 갈등에 올라타 계속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기업은 돈은 벌고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이 판매한 무기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 소유주들의 평화를 지키고 있는가?  
 
2011년 10월 '웨스트 파푸아 민중 의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화의 바라쿠다 장갑차가 동원되었다.
 2011년 10월 "웨스트 파푸아 민중 의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화의 바라쿠다 장갑차가 동원되었다.
ⓒ Papua Merdeka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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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요구해야 평화가 온다

양당제의 폐해는 단지 그 제도 하에서 특정 정치세력들이 권력을 독점한다는 불공정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사이에 이견과 갈등이 없는 문제라면 아무런 토론과 견제 없이 수십 년 이해관계의 생태계를 형성하도록 방치된다. 종국에는 그들 자신의 거대함이 그들을 지켜주는 이데올로기가 돼버리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한국 방위산업이 수출한 무기가 살상의 도구로 이용되고 군사적 긴장을 제아무리 높이더라도, 이해가 걸린 협력업체들과 창원과 울산의 수천 수만의 노동자 문제가 나오는 순간 침묵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침묵을 강요하는 힘은 강해진다.

평화란 압도적인 힘이나 공포균형으로부터 산출된 결과값일 뿐이라는 보수주의 세계관과 다시는 누군가의 식민지가 돼선 안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반제국주의자들 사이에서, 군축을 요구하고 부적절한 무기 수출 확대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길을 잃은 채 방위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같이 총을 내려놓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우리부터 총을 들자고 선동하는 목소리만 높을 뿐이다.

우리 헌법은 우리에게 '세계 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의무'를 부여했지, 세계 최고의 강군을 육성하고 무기 거상으로 자리매김하라고 명하지 않는다. 분쟁지역에 무기를 팔면서 말하는 평화는 메피스토펠레스(악마)의 속삭임이다. 우리 역시 아이언돔과 F-35와 경항모를 어찌됐든 갖춰야 한다는, 앞으로도 형형색색의 신무기로 끝없이 이어질 꾀임에 넋이 나가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세상의 이치가 다 힘이고 현실이라지만, 이상 한 조각 남지 않은 현실은 황량하다. 평화를 요구해야 평화가 온다. 전쟁을 준비하면, 결국 전쟁을 하게 된다.

태그:#무기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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