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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년 싸움을 마칩니다"... 김진숙, 퇴직하다 대한민국 최장기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영도조선소로 복직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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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장기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영도조선소로 복직했다. 그의 해고기간은 37년, 일제강점기 35년보다 긴 시간이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동안 회사의 사명은 대한조선공사에서 한진중공업을 거쳐 현재 이름까지 세 번이나 바뀌었다.

한평생을 다른 '소금꽃나무'를 위한 싸움을 해왔던 그는 지난 2020년 6월에야 본격적으로 복직투쟁에 돌입했다. 해고없이 일을 했다면 그해 12월이 정년이었다. 암 투병 상황에서 매일같이 출근선전을 펼치고,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에 나섰다. 그러나 회사는 계속 복직 요구를 거부했다.

그렇게 600여 일의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노사는 지난 23일 마침내 김 지도위원 해고에 마침표를 찍었다. 25일 명예 복직을 하고 바로 퇴직하되, 이와 관련한 모든 사항은 노사협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합의에 대해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어두운 과거와 결별하는 의미 있는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그렇게도 그리던 영도조선소 단결의 광장을 밟은 김 지도위원은 "열사들이 입었던 작업복은 자신이 가져가겠다"라며 남은 이들에게 "미래로 가 달라"고 당부했다. 복직하자마자 퇴직하는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모든 현장마다 외치던 "끝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이었다.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키던 그는 이제야 "37년의 싸움을 마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지도위원의 발언 전문이다. (관련기사: "37년간의 싸움을 마칩니다"… 김진숙, 퇴직하다 http://omn.kr/1xiqb)
 
''소금꽃나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해고된 지 37년 만인 2022년 2월 25일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으로 명예 복직했다. 그는 영도조선소 단결의 광장에서 열린 금속노조의 복직행사에 참여한 뒤 이날 바로 퇴직했다.
 ""소금꽃나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해고된 지 37년 만인 2022년 2월 25일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으로 명예 복직했다. 그는 영도조선소 단결의 광장에서 열린 금속노조의 복직행사에 참여한 뒤 이날 바로 퇴직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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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이 오늘 열렸습니다. 정문 앞에서 단식을 해도 안 되고 애원을 해도 안 되고 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오늘에야 열렸습니다.

37년입니다. 검은 보자기 덮인 채 어딘지도 모른 채로 끌려간 날로부터 37년.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 수백 명에게 아침마다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앞 도로를 질질 끌려다니던, 살 떨리던 날들로부터 37년입니다.

경찰들이 집을 봉쇄하고, 영도로 돌아오는 시내버스를 불심검문하고, 공장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닭장차에 군홧발로 짓이겨 넣던 그 억장 무너지는 날로부터 37년입니다. 훈련소 폐건물에 감금해놓고 돌아가며 감시를 하던 그날로부터 37년입니다. 그렇게 생이별을 당한 아저씨들이 보고 싶어 눈물방울마다 아저씨들이 맺혀 오르던 그 사무치던 날들로부터 37년이 흘렀습니다.

그중 가장 보고 싶었던 허씨 아저씨가 작년에 암으로 돌아가고, 그 아드님으로부터 오늘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한 글자라도 아저씨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퇴직금과 채용 저축으로 유인물을 만들고, 산복도로 골목골목 집집마다 "조합원 여러분" 제목의 유인물을 놓고 돌아섰던 북받치는 날들로부터 37년 만에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오늘 하루가 저에겐 37년입니다. 저의 첫 노조이자 생의 마지막 노조인 금속노조 한진 지회 조합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들의 동지였음이 제 생에 가장 빛나는 명예이고 가장 큰 자랑입니다. 심진호 집행부와 여러분들의 힘으로 굳게 닫힌 문을 마침내 열어주셨습니다.

이 낡은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박창수 위원장이 입고 끌려갔던 옷,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마지막까지 입었던 작업복, 재규 형이 도크 바닥에 뛰어내릴 때 입고 갔던 그 작업복, 최강서의 시신에 입혀줬던 그 작업복.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이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이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다시 꽉 차는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노조위원장마다 감옥으로 끌려가거나 해고되거나 죽었던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이후 그토록 복직을 기다리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복수노조를 만들어 34살 최강서를 죽였던 한진중공업 새로운 경영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단 한 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 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

신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굴종할 수 없어 끝내 버텼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이념이 굳세서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같은 꿈을 꾸었던 동지들의 상여를 메고 영도 바다가 넘실거리도록 울었던 그 눈물들을 배반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기억해주십시오.

정치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루 6명의 노동자를 죽인 기업주의 목소리가 아니라 유족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어제 동료가 죽은 현장에 오늘 일하러 들어가는 노동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차별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들 그들이 목숨 걸고 하는 말을 들어야 차별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동일방직, 청계피복, YH 수많은 70~80년대 해고노동자들 삼화고무를 비롯한 부산지역 수많은 신발공장 노동자들이 30~40년을 해고자로, 위장취업자로 빛도 이름도 없이 사라진 그 억울한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맺힌 한을 풀어주십시오. 아사히, 아시아나케이오, 건보공단, 도로공사 비정규직들, 수많은 노동자의 눈물을 씻어주십시오.

이제 이 공장에는 11년 전 고철로 팔려나간 85호 크레인이 곧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희망버스로부터 11년,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희망버스 승객여러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특히 우리 지부 동지 여러분.

엄동설한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하고 절을 하고 글쓰기 강좌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셨던 여러분. 드라이브 스루에 함께 하시고 청와대까지 함께 걸었던 여러분.

문정현 신부님, 그리고 오늘 사진으로 오신 백기완 선생님, 여러분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칩니다. 먼 길 포기하지 않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긴 세월 쓰러지지 않게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정리해고의 위기 앞에 선 대우버스 동지 여러분들 힘내십시오. 끝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태그:#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 #복직,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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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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